식당에 딸린 방 한 칸/김중식 시창고
식당에 딸린 방 한 칸 / 김중식
밤늦게 귀가 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하루 열 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의 육체와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온 내 피로의 끝을 보게된다
돈 한푼 없어 대낮에 귀가 할 때면 큰 길이 뚫려 있어도 사방은 막다른 골목 같다.
옐로우 하우스 빨간 벽돌 건물이 집 앞에 있는 데
거기로 들어가는 사내들보다 우리집으로 들어가는 사내가 더 허기져 보이고
거기 진열된 여자보다 우리집의 여자들이 더 지친 표정을 짓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머니 대신 내가 영계백숙 음식을 배달 갔을 때
나 보고는 나보다도 수줍음을 타는 아가씨,
붉은 등 유리 방 속에 한복 입고 앉은 모습이 마네킹 같고 불란서 인형 같아서
내 색시 해도 괜찮겠다 싶더니만 반바지 입고 나설 때 보니까 이건 순 어린애다.
그 남자친군지 팔짱을 끼며 유곽 골목을 나서는 발걸음을 보면
밖에 나가서 연애할 때 우린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에 사는 가난뱅이라고
경쾌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가 더 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공장 노조원들이다
내가 말을 걸어본지 몇 년째 되는 우리 아버지에게 아버님들이라 부르고
용돈 탈 때만 말을 거는 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는 놈들은
나보다도 우리 가정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하루는 놈들이 일부러 들으라는 목소리로 일부러,
부모님이 고생해서 대학이나 보내 놨더니 놀고먹는 다고,
기생충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상처를 준적이 있는 잔인한 놈들.
지네들 고장에서 날아온 검은 가루 때문에 우리집 빨래가 햇빛한번 못 쬐고
방구석 선풍기 바람에 말려진다는 걸 모르고,
놀고먹기 때문에 내 살이 바짝바짝 마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내심 투덜거렸지만 할 말은 어떤 식으로든 다하고 싸울 일은 투쟁하는 그들에 비하면
그저 세상에 주눅들어 굽은 어깨, 세상에 대한 욕을 독백으로 처리하는 내가 더 끝이다.
절정은 아니면서 없는 적을 만들어 칼을 들고 달겨들어야만 긴장이 유지되는
내가 더 고단한 삶의 끝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여동생의 연애를 얼마나 짜증나게 했는지,
집에까지 바래다 주겠다는 연인의 호의를 어떻게 거절했는지,
그래서 그 친구와 어떻게 멀어지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눈물을 꾹 참으며 아버지와 오빠의 등뒤에서 스타킹을 걷어 올려야 하고
이불 속에서 뒤척이며 속옷을 갈아 입어야하는 하는 여동생들을 생각하게 된다.
보름 전쯤 식구들의 가슴위로 쥐가 돌아다녔고
모두 깨어 장롱을 들어내고 벽지를 찢으며 쥐를 잡을 때,
밖에 나가서 울고 들어온 막내의 울분에 대해,
울음으로써 세상을 견뎌내고야 마는 여자들의 인내에 대해,
단칸방에 살면서도 근친상간 한번 없는 순흥 안가의 저력에 대해,
아침녘 밥손님들이 들어 닥치기 전에
제 각기 직장으로 학교로 공원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탈출의 나날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귀가할 때 혹시 지인이라도 방문해 있으면
난 막다른 골목을 넘어 넘고넘어 멀리까지 귀향을 떠난다.
큰 도로로 나가면 철로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기차가 있다.
가끔씩 철로의 끝에서 다른 끝까지 처연하게 걸어다니는 데
철로의 양끝은 흙 속에 묻혀있다.
길의 무덤을 나는 사랑한다.
항구에서 창구까지 이어진 짧은 길의 운명을 나는 사랑하는 것이며
뛰는 사람보다 더디게 걷는 기차를 나는 사랑한다.
나를 닮아 있는 힘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
철로의 무덤 넘어엔 서해가 있고
더 멀리 가면 중국이 있고 더더 멀리가면 인도와 태평양과 속초가 있어
더더더 멀리가면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세상의 끝에 있는 집,
내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되는 눈물겨운
우리집.
김중식 시인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나 1990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1월 《문학사상》으로 등단했으며
이후 ‘직장 없이 사는 게 꿈’이기도 해서 자의반타의반으로 2년여 동안 무직자로 생존했다.
간간히 출판사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모아 인도 등지를 배낭여행하고 절이나 선배의 집에서 기생하기도 했다.
1992년 “은행원이 돈 세듯 책을 읽을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해 격주간 출판전문지인 《출판저널》에 취직했지만
석 달 만에 “은행원이 돈 센다고 그 돈이 은행원 돈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1995년 《경향신문》에 입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휴간일(休刊日)이 휴간일(休肝日)’인 생활을 하였으므로
서울의 밤에 관해서라면 따로이 취재를 하지 않고도 쓸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서울의 밤문화』를 집필하게 됐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1993)가 있다.
[출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김중식 |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