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딸 / 백기완 시창고
첫딸 / 백기완
굳이 시큼한 사과만 먹고 싶다는데 어쩌랴
당구장에서 눈깔을 모로 떠 챙긴 버스값으로
사과 한 톨을 사들고
명동에서 원효로4가 수돗물도 없는 땀방울을 달려
그냥 달려
전승보처럼 엥겨주던 아내가 첫딸을 낳았다
할아버진 어비
나는 어야라고 어를수록 물쑥물쑥 크던 갸가
국민학교 가던 날, 관학이한테 얻은 시계로
빨간 아래위를 사 입혔더니
분꽃처럼 활짝 벌어지던 우리 첫딸
그첫딸의중학진학은내당대최고의학력이라
당대 최고의 요리 짜장면을 먹이며
나는 우두커니 눈물나고
신이 난 아내는 월부 피아노를 사주고
그걸 다시 팔아 통일운동에 바치며
피아노가 다 무언가 지금은
잠든 결레의 가슴을 칠 때라고 속으로 울면
뒷길로 고개 숙여 학교 가던 우리 첫딸
그 첫딸이 대학선생이 되자 마루가 꺼지게
들썩이던 아내의 깨끼춤도 잠깐
어머니가 바라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거라며
노동현장에서
일년에 한두 번 고추장이나 훔쳐가더니
동해바다 외로운 술집 벽보에 갸는 수배자
나는 도망자로 만났을 때
그 명단을 찢어 거센 동해바다에 던지며
아 나는 못난 애비됨을 얼마나 울었던가
그 첫딸이 첫딸을 낳았다
이름을 뭐라고 지을 건가
그때마다 장막은 더 내리쳐 저 멀리 산비탈
어야네 불빛은 변덕변덕
한사코 이 밤을 사르고 있는데
갸는 그저 에미 노릇만 할 건가
[출처] 첫딸 / 백기완|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