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51) 시 합평의 실제 1 - ⑥ 이세진의 ‘스나이퍼/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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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이세진의 ‘스나이퍼
< 원작 >
스나이퍼/ 이세진
― 영화 「1941 : 세바스토폴 상륙작전」
산기슭 위로 뛰어가던 독일군이 바위 뒤로 숨는다
잠시 후 소총 위 망원경에 얼굴이 나타난다
방아쇠를 당기자 얼굴이 뒤로 젖혀지며 쓰러진다
소총 뒤 망원경 십자선에 상대 스나이퍼가 나타났다
얼굴 찍힌 사진을 들고 참호와 위장막을 바꾸어 다닌
며칠 동안의 피말리는 순간들을 마감하는 총성이 울렸다
흙먼지와 연기 줄기가 비행기 기관총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넓는 평원 여기저기 피어오른다
정신없이 뛰는 병사들 위로 포탄이 떨어지고
파블리첸코는 흙더미 속에 묻혔다
박격포탄으로 부상당한 파블리첸코는
전선을 떠나고 소련 영웅 금성 훈장을 받는다
모스크바 시장 거리
아이들이 파블리첸코의 뒤를 따라간다
언니, 총 쏘는 거 가르쳐 줘요
응, 나중에
< 합평작 >
스나이퍼/ 이세진
― 영화 「1941 : 세바스토폴 상륙작전
산기슭 위로 뛰어가던 독일군이 바위 뒤로 숨는다
잠시 후 소총 위 망원경에 얼굴이 나타난다
방아쇠를 당기자 얼굴이 뒤로 젖혀지며 쓰러진다
소총 위 망원경 십자선에 상대 스나이퍼가 나타났다
얼굴 찍힌 사진을 들고 참호와 위장막을 바꾸어 다니며
피 말리던 순간들을 마감하는 총성이 울렸다
비행기 기관총 소리와 함께
평원 여기저기서 흙먼지와 연기가 피어오른다
뛰는 병사들 위로 포탄이 떨어지고
파블리첸코는 흘더미 속에 묻혔다
부상당한 파블리첸코는
전선을 떠나 소련 영웅 금성훈장을 받는다
모스크바 시장 거리
아이들이 파블리첸코의 뒤를 따라간다
언니, 총 쏘는 거 가르쳐줘요
< 시작노트 >
스나이퍼는 저격수를 가리킵니다.
루드밀라 파블리첸코는
역사상 최고의 여성 저격수였습니다.
소련에서 1916년에 태어나
1941년 보병으로 자원입대하여
1942년 박격포탄을 맞아 전선을 떠날 때까지
309명을 저격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중 36명이 적의 저격병이었다는 것입니다.
197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의 숙녀(Lady Death)’라고 불린 그는
아군에겐 상대 저격병을 사살해준
구원의 천사였습니다.
< 합평노트 >
시를 읽어 내려가자 영화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군요.
한 편의 영화가 재미있는 시로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시의 소재는 사방에 널려 있는데, 영화도 시를 탄생하게 만드는 주요 매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나 영화, 사진, 그림, 연극, 무용, 노래 등의 시청각 예술은 특히
민감하게 인간 내면의 현(絃)을 자극합니다.
감성의 현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려올 때 시인은 펜을 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제4연의 “박격포탄으로 부상당한 파블리첸코”라는 구절에서 “박격포탄으로”라는 어휘를 삭제합니다.
굳이 무기에 의해 부상당했는가를 강조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연의 “언니, 총 쏘는 거 가르쳐줘요/ 응, 나중에”라는 두 행을 별도의 연으로 분리하면서
“응, 나중에”라는 표현은 삭제합니다.
나중이든 지금이든 그 대답은 부연설명에 불과하며 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니, 총 쏘는 거 가르쳐줘요”라는 형상화로 시를 마무리했을 때,
독자는 나름대로 대답을 찾을 것이고,
여백의 긴장감이 생성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 8. 9.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51) 시 합평의 실제 1 - ⑥ 이세진의 ‘스나이퍼/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