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문학》을 받으면 먼저 '계절에세이'를 읽고 나서 책장을 넘기며 제목에 따라 마음이 끌리면 읽기 시작한다. 대체로.
그렇지만 등단작품과 '젊은 작가 클릭클릭', '에세이 광장'은 빼놓지 않고 읽으려 한다,
완료추천 될 만큼 등단작품들은 모두 수작이다. 그런데 앳된 젊은이의 사진이 먼저 눈에 띄는 작품 <연필>이 궁금했다.
<연필>은 보령제약 주최 의학도수필공모전 대상 작품이다.
몇 년 전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하는 의학도 수필공모전 수상식에 두어 번 참석했다. 신선한 경험이었다. 젊은 그들의 작품은 소재도 전개도 사유도 기성작가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작품을 받아 우리 카페에도 올린 적이 있지만 반응은 기대 이하. 세대 차이였을까, 내게는 신선했던 느낌이 다른 독자에게는 별다른 감동을 준 것 같지 않았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사용하던 샤프를 버리고 연필을 다시 쥐었다.'
그렇게 시작된 글은 시종 연필을 쓰다가 샤프를 썼고 다시 연필을 쓰게 된 이야기로 이어져 나간다.
그 서사의 행간에는 작가의 생생한 생각이나 느낌이 하나의 깨달음으로 드러난다.
화자는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익혀 자신의 서체가 반듯하다고 자부한다. 그 연장선을 이끄는 것이 연필이었다. 이미 샤프라는 편리한 필기도구가 나왔지만 아랑곳없었다.
‘연필의 흑심이 종이와 맞닿을 때 느껴지는 그 촉감과 미세한 진동, 동시에 만년필 마니아들이 들으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는 그 아날로그 감성의 마찰음, 무엇보다 쓸수록 짧아지는 연필의 길이와 손에 묻어 있는 흑연 자국은 어린 내게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다는 성취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연필 사랑을 고교 진학 후, 멈춰야 했다. 고교 시절은 곧 대학과 미래와 직결될 수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 소모품인 연필은 이미 효율 면에서 떨어졌고 ‘샤프는 마치 아이스링크 위를 지나는 스케이트 날처럼 춤추듯 선을 그어 나갔다’
그렇게 글자 하나마저 빨리 쓰는데 급급했던 고교시절 글씨가 많이 망가졌다. 자랑이었던 반듯한 글씨가 춤을 추었고 파도치듯 위아래로 요동쳤다. 연필을 쓸 때 생겼던 중지의 굳은살도 사라졌을 때 그는 연필을 생각했다.
연필을 꺼내 조각하듯 깎으면서 연필과 샤프를 쓰며 느꼈던 속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한다. 수행평가의 일환으로 찾은 유자효 시인의 시 <속도>는 당시에 받았던 감상과 사뭇 다르다.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느림의 미학은 갈 길이 바쁜 자신의 입장과는 상반되어 공감하지 못했다.
그 접점에서 작가는 느림도 빠름도 다 그것만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런 관점을 갖자 작가는 모든 자연과 대상을 바라볼 때의 속도에 따라 저마다 아름다움이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다는 것에 정답도 오답도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연필과 샤프로 보낸 학창시절에서 삶의 전반적인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내 일을 해내기 위해, 효율성을 위해 나의 글씨체를 희생한 것이고 그 당시 삶의 속도에 맞추기 위한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항상 기회비용이 발생하기 마련…….’
‘연필을 쥐고 지난 시간을 떠올려본다. 기차를 타고 있으면 곧게 앞으로만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뒤로 남겨진 철로를 보면 굽어져 있듯이 과거를 보는 것은 언제나 낯선 깨달음을 준다. 난 끊임없이 내 속도를 정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연필과 샤프를 사용하면서 삶과 인생의 대비를 끌어내 통찰하고 자연스럽게 다가온 사유를 정연한 논리로 풀어낸 이 글을 읽으면서 이 굳어버린 머리에 반란의 소용돌이가 인다.
수필은 점점 젊어지고 나는 점점 소실점에 다가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글을 읽으면 속없이 불씨 한 번 살려보고 싶어진다. 좋은 수필을 보면 그렇게 꺼진 불씨가 발갛게 피어오른다.
첫댓글 흑백 논리에 치우치지 않는 사유가 신선했어요.
연필이라는,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소재를 가지고 의외의 전개를 하며 사유를 끌어가는 솜씨가 놀랍더군요.
젊은이답기도, 젊은이답지 않기도 한 사고가 문학의 가능성을 엿보게 했어요.
'The 수필' 2021 1분기에 선정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