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관노가면극(江陵官奴假面劇)은 타지방의 가면극과는 달리 연희자가 관노들이었다는 특징으로 인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강릉 탈춤’, '강릉 탈놀이'의 특이성이며 통칭이 되었다. 그리고 강릉관노가면극은 한국의 가면극 중 유일한 무언극(無言劇)으로 대사 이전에 춤과 몸짓으로 연희(演戱)가 구성되어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의 토착적인 기원을 찾아보면 하회별신굿놀이나 동해안별신굿(巫굿)과도 상호 관계 내지는 근접성을 가진다. 또한 마을 축제 단오제(端午祭)에서 연희되고 있기에 제의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 또한 강릉관노가면극은 서낭제에서 연희되므로 토속적인 농경의례와 무속 서낭제와 긴밀하다.
말하자면 당초은 인간과 자연의 갈등을 주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굿이었으나 점차 인간과 인간들의 갈등을 예술적으로 전환하면서 탈놀이가 성립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이 마을 축제인 농경의식(農耕儀式)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은 강릉의 고대 지역인 예국(濊國)의 무천의식(舞天儀式)에서 유래한다고 할 수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부락제(部落祭)에서 연희(演戱)되어 왔음이 여러 문헌을 통해알 수 있는 기록들이 있다.
고려사(高麗史 918~1392)에 고려 태조 왕건(918~943)때 강릉 사람 왕순식이 대관령에서 제사하였다는 기록에서 시원를 찾을 수 있으며,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3)의「추강냉화(秋江冷話)」에도 영동지역 사람들은 음력 4월~5월에 택일(擇日)하여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고 사흘동안 음주가무(飮酒歌舞)를 즐겼다고 했다. 그리고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문집에도 대관령산신찬병서라는 글이 있는데 계묘년(癸卯年-1603) 5월에 잡희(雜戱)를 베풀어 신(神)을 즐겁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릉의 향토지인 임영지(臨瀛誌)에 무당과 굿과 창우(倡優)들에 의하여 놀이가 계속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관노가면극의 긴 역사를 알 수 있다.
강릉관노가면극은 1909년에 폐지되었던 것을 김동하(金東夏), 차형원(車亨元)의 고증으로 1967년 1월 16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김동하,차형원옹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후 강릉여고, 강릉교육대학, 관동대학(교)에서 이어오다가 1985년 강릉시 유천동 주민들에 의하여 70년만에 옛 본래의 모습인 민간전승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으며, 1993년 8월 2일 권영하(權寧夏)님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7월 22일 김종군(金種群)님이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강릉관노가면극에 대한 학계 및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강릉관노가면극보존회를 중심으로 초등학교(경포,포남), 중학교(율곡,관동), 고등학교(강릉농공), 대학교(관동대,강릉대), 일반(강릉문화원 임영회, 주문진 여성회관, 강릉시 여성회관)등에서도 착실히 계승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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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급 가면극을 선사해 주셨네요..재미있게 잘 봤답니다.
강릉관노가면극을 보는 순간 뭔가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장기자랑의 수준을 열 단계 업 시키는, 아주 보기 힘든 가면극을 보았습니다. 심사하시는 교수님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정말 놀랐습니다.. 학술제에 참가하기 참 잘했습니다. ^^
도우미 하느라 장기자랑을 다 보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자세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올려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도 내년엔 수준 높은 공연을 보여 드립시다. 인천지역대학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