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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봤어요 스크랩 창녀촌 광고했던 에베소 사람들 (터키여행 6회)
부싯돌 추천 0 조회 227 14.04.21 09:5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5회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껌정고무신이 국민 대표 신발이었던 시절.

대한민국 사람들은 참 고난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흰고무신은 때가 잘 타 꺼려할 만큼 아끼고 또 아끼던 것이 미덕일 때,

창녀촌을 찾아 객기?를 부린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습니다.

 

그런데 2천년 전(BC 7-6세기) 지금의 터키 땅에 살던

에베소 사람들은 그리스 신전 만큼이나 아름다운 도서관을 짓고

뜨신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목욕탕에-

공중 화장실까지 지어 놓고 현대인 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배부르고

등 따신 남정네들이 생각해 내는 게 바로 -기집질^^인데

그 옛날 에베소에서도 마찬가지 였나 봅니다.

이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 냈기 때문입니다.

 

근데 성(性)을 팔고 사는 일은 대개 은밀하게 진행되는데

에베소 사람들은 대담하게도 성(性)을 상품화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광고까지 했다는 겁니다.

아마 대중에게 어필한 최초의 창녀촌 광고 일듯 싶어집니다.

(일부 가이드는 유럽 최초의 상업광고?라고도 소개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폼페이 유적지서 발견된 것도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광고를 했을까요.

팔등신 미녀의 나신(裸身) 그림이나 신체 사이즈,

가령 가슴둘레와 엉덩이 등을 상징으로 내 세웠을까요.

 

 

 

이 역시도 우리의 상상은 에베소 사람들을 ?아 가지 못합니다.

홍등가(紅燈街) 그러니까 성을 파는 장소를 알리고

또 출입자격을 규정하기 위해 이들이 만들어 낸 광고는

하트♥? 문양과 한 개의 발자욱 모양으로 돼 있습니다.

 

색다른 것을 상상???했다면-

-그게 어찌 광고가 되느냐며 역정을 낼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민망함을 감추기에는 역정만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대로 변 한 귀퉁이에는 상처 투성인 하트 모양의 그림과

발바닥을 본 뜬 모양이 돌 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오랜 시간 연구 끝에 학자들이 내 놓은 결론은 바로

‘마음이 공허한, 혹은 위로 받고 싶은 이들은 이곳으로 오시오’(상처난 하트 모양)

라는 뜻이고 발자욱은 그곳에 자신의 발을 대 봐서 그것이 본인 발 보다 크면

아직 미성년자인 까닭에 출입하지 마시오라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겁니다.

 

- 그럼 어른이 돼서도 기형적으로 발이 작은 사람은 어떡허나.

답은 간단합니다.

어른이니까 집에서 마누라하고 놀면?되지요^^

에베소 사람들은 수시로 공중 목욕탕을 찾고

원형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고 이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더러 홍등가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베소 사람들은 놀기만 좋아 한 것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이들이 건립한 셀수스 도서관의 규모를 보면 입이 벌어 질 정도입니다.

이 도서관은 AD100-110년경 원로원 의원인 셀수스(Celsus)에게 헌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관된 장서만 1만 2천 여권에 이르렀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파괴된 모습으로 남아 있지만 아직도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해

그 모습이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도서관 유적입니다.

 

잘 놀면서 공부?도 제대로 할 줄 알았던 에베소 사람들의 정신세계,

그것이 바로 세계를 지배할 만큼의 부와 권력을 갖게 한 요인이었습니다.

요즘 학생들이 가장 얄미운 놈으로 손꼽는

‘얼굴도 이쁜게 공부도 잘하는- 녀석’이 바로 에베소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내 별명이었는데- 이쁜게 공부도 잘하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하기로 홍등가 광고까지 대로(大路)에다

버젓이 새겨 놓은 것은 좀 그렇습니다.

-에베소가 어떤 곳입니까.

바로 성경에 나오는 유명 인사 바울이 이곳에서 사목을 했고

더불어 초기 교회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성지이기 때문입니다.

성(聖)스러운 곳이 성(性)스럽기도 했다니-

믿어지지 않는 대목입니다.

 

에배소는 요한계시록의 무대가 되었고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노년을 보냈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사도 요한의 교회 터가 있습니다.

또 에베소는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무대이기도 합니다.

많은 한국 기독교 성도들이 이 지역을 찾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성지순례라는 이름으로 말입니다.

 

에베소 유적중 또 하나의 걸작은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입니다.

지금은 복원도 잘 돼 있어 바로 공연을 해도 될 만큼 완벽에 가까운 상태입니다.

이밖에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모든 황제들의 신전도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에베소가 이 처럼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곳이 당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였었고

더불어 육지의 모든 도로는 에베소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지중해로 진출하는 아시아의 관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에베소를 일컬어 ‘아시아의 빛’이라 불렀습니다.

지금은 폐허의 도시로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말입니다.

 

에베소의 흥망성쇠(興亡盛衰)-

그것이 후세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교훈은 다양할 겁니다.

나 처럼 창녀촌 광고물에 발을 맞춰 보며

그곳 출입 여부나 가늠해 보는 소인배도 있지만

옛것을 반추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이들도 적지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신혼이거나 아이없는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

에베소(애? 배소서)라고 우기는 이들도 있는 것 처럼

에베소 지역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흥미를 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과거의 타임캡술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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