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44)
# 나룻배 전복사고
온가족과 나룻배 타고가던 ‘강탁’
강 복판서 배가 뒤집혀 가족 잃어
사흘 후 고을 이방 칼에 찔려 죽고
두달 후 이백오십리 밖 마을 색줏집에 있던 졸부 뱃사공에
칼 들이대는 자객 나타났는데......
장인어른 회갑잔치에 가는 강탁은 네살배기 아들 손을 잡고
장옷을 덮어써 불러오는 배를 감춘 채 두 눈만 빠끔히 내놓고
뒤따르는 아내, 그리고 고리짝을 지고 마지막에 따라오는
행랑아범과 골포나루터에서 배를 탔다.
황포돛대를 단 긴 나룻배는 닻줄을 풀고 조금 뒤에 다가올
참상도 모른 채 조용히 강물 위로 미끄러졌다.
강 복판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나룻배 바닥에서 물이
용솟음쳐 오르고 황포돛대가 기울기 시작했다.
강탁은 뱃전을 잡고 말미 쪽으로 가며 아들과 아내를 불렀다.
배는 아수라장이 됐다.
강가에 쓰러진 강탁이 정신을 차렸을 땐 하늘에 흰 구름만
흘러갔다.
도선객이 서른다섯 명이라느니 서른일곱이라느니 혼란스럽더니
살아나온 사람도 여섯이니 일곱이니 오락가락했다.
고을 이방이 사고수습을 한다고 골포나루터에 조그만
차양막을 쳤다.
놀라운 사실은 이 고을 사또가 평복차림으로 배에 탔다가
십리 아래에서 익사체로 떠올랐고 다른 도선객들도 강
아래에서 불귀의 객으로 띄엄띄엄 발견됐다.
익사체도 못 찾고 행방불명된 도선객이 뱃사공을 위시해
열다섯이 넘었다.
참극이 일어난 지 사흘째, 골포 뒷산 팽나무 아래 상엿집에서
이방이 칼에 찔린 시체로 발견됐다.
골포나루는 밤이면 물귀신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둥
뒤숭숭해져 해가 지면 사람들은 문밖 출입을 삼갔다.
두 달이 지나자 나룻배 전복사고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지고 한숨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골포에서 이백오십리나 떨어진 산촌 혁곡에 졸부가 나타나
돈을 물쓰듯하고 다녀 색줏집마다 반반한 색시 모셔다 놓기
경쟁을 벌였다. 그날 밤도 옥색 비단 두루마기에 갓을 눌러쓴
졸부가 색줏집 하나를 독점, 술을 실컷 마시고 어린 기생을
품고 시시덕거리다가 곯아떨어졌다.
오싹해서 일어나보니 목에 시퍼런 칼날이 바짝 다가섰다.
“누 누 누구냐, 이 밤중에….”
자객의 주먹 한 방에 졸부는 기절했다.
자객은 어린 색시를 이불에 둘둘 말아 다락 속에 처박고
기절한 졸부의 두 손을 치마끈으로 묶은 후 술상에서 술을
따라 졸부의 얼굴에 뿌렸다. 졸부가 깨어났다.
“다 다 당신은 누 누 누구요?”
벌거벗은 채 손발이 묶인 졸부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다.
“임신한 나의 처와 네살배기 아들을 골포나루터 강물에 잃은 사람이다.
한평생 뱃사공을 한 놈이 물에 빠져 죽을 리는 없지.”
“배가 가라앉은 건 내 탓이 아니외다.”
“입 닥쳐 이놈아, 사또가 백성들로부터 수탈한 돈을
금으로 바꿔 허리 속에 겹겹이 띠 두르고 한양 윤 대감에게
인사청탁을 하러 간다는 정보를 이방이 네놈에게 알려줬지.”
강탁은 숨을 가다듬었다.
“네놈은 나룻배 바닥판자를 뜯어 약하게 덮어두고 노끈을
매어뒀다가 강 한복판에 서 노끈을 당겨 배를 침몰시키고,
물속에서 물고기 같은 네놈이 허우적 거리는 사또를 익사
시키고, 허리에 찬 금괴를 훔쳐 달아났지.
반씩 나누기로 한 이방과 상엿집에서 만나
금괴를 독차지하고, 입을 막으려고 그를 죽였어.”
“제발 살려주시오. 남은 금괴를 모두 드리리다.”
뱃사공 졸부가 애원하며 물었다.
“그런데 소인이 이 먼 곳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소이까?”
“그 옛날 혼자 배를 탄 처녀를 네놈이 겁탈, 일년이나 데리고 살다가
네놈 의 천박하고 잔인한 성격에 진절머리난 그 여자가
친정으로 도망친 곳이 바로 여기지. 네가 술만 취하면
‘떼돈 벌어 찾아가 떠난걸 후회하게 만들겠다’고 떠들었잖아.”
사흘 후, 달 밝은 골포나루터에 강탁이 보자기를 풀어
뱃사공의 머리를 풍덩 강물에 던지며 외쳤다.
“원혼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죽고 행방불명된 사람들 집에는 금괴 하나씩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