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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속한 집단의 가치보다는 개인의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는 자세를 일컬어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국가나 공동체의 가치를 앞세웠던 탓에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주의를 마치 이기주의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와는 명백히 다르다. 개인주의자들은 비록 개인의 삶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지만, 그것을 위해서 공동체와 다른 사람의 삶을 무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스스로 개인주의자로 자처하는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나 자신도 개인주의자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하다면 내 개인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대의에 공감하며 행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판사 문유석의 일상 유감’이란 부제에서 보듯이, 저자는 판사라는 직업과 개인의 삶을 조화롭게 영위하기 위해서 나름의 철학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저자는 프롤로그를 통해서 자신이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 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도 되어야 하는’ 현실을 일찍부터 체득하고, 간혹 ‘타인들이 원하는 연기를 잠시 해주면 내 자유가 더 확보된다는’ 것을 진즉 깨우친 결과라고 설명한다. 실상 오늘도 언론매체에서 떠들어대는 각종 논란에 휩쓸리면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생각과 가치인양 떠들어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거창한 ‘대의’에 대한 울분만 가득 차 있지, 자신의 주체적인 관점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히려 철저히 개인주의자가 되어 자신의 관점을 정립한 후에, 우리 사회의 폐해를 고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따지고 행동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 역시 자신이 철저한 개인주의자이기 때문에 ‘나와 아무 상관없어도 타인들이 고통을 당하는 옆에서 나 혼자 행복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이 얼마나 죄스럽고 마음 무거운 일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나라는 개인의 삶과 가치가 중요하듯 다른 이들 한 사람마다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공동체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들의 처지는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공동체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논리가 횡행하기도 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자의 시선으로 볼 때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의 가치를 존중할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관점이 확립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일상을 영위하면서 느꼈던 바를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놓은 이 책은 모두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는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세상은 완고하고 인간은 제각기 어리석’기 때문에, ‘의미를 따지지 말고 자기만족이든 뭐든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러한 개인의 자유로움이 타인의 삶을 방해하거나 피해를 까치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이라는 것도 결국 ‘수직적 가치관의 사회에서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있으면 그걸 이용해 상ㄷ에 대한 자신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작태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이것인 ‘타인에 대한 관용 부족으로 이어져 약자 혐오와 위악적인 공격성’을 야기하고, 나아가 ‘약자는 자기보다 더 약자를 찾아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하여 그 결과로 결국 ‘갑질의 재생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타인의 발견’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개인주의자로 살아오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 ‘공정’이라는 문제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주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과정의 ‘공정’만 문제를 삼고 있지 애초 개인이 발딛고 있는 출발선의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어린 시절부터 과도한 입시 경재, 취업 경쟁에 내몰려야 했던 젊은이들이 노력의 결과가 정당한 평가를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그것인 결국 ‘배타주의 성향’으로 발현되어 결과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찾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으며, 우리 주위의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타인과의 비교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하는 현실에 위안을 표명하기도 한다.
저자에게 7년 전의 ‘세월호’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송두리째 흔들리게 했던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이해된다. 나 역시 그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기성세대의 말을 따르며 희생되었던 이들로 인해서, 공동체의 대의보다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애정을 쏟으면서 개인주의적 가치의 소중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욱이 선실에 갇혀 이유도 노른채 죽어갓던 이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이유라도 알려고 투쟁했던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고, 당시 정권에서는 공권력을 이용하여 갖은 방법으로 사찰과 미행을 진행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분노를 표하고 나아가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들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해되었다.
마지막 3부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라는 제목으로, ‘정답 없는 세상’에서 획일적인 정답 찾기에 혈안이 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다.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티눈만을 비난’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따끔한 질책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우연히 들렀던 ‘단원고등학교 2학년 4반 18번 빈하용 전시회’를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림을 좋아했던 친구가 ‘수학여행을 떠나 더 이상 이 세상에서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된 현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시절 딱 그 이이들만한 나이의 아들이 있었기에, ‘세월호’ 유족들에게 가했던 당시 정권의 폭력과 그에 부화뇌동했던 이들의 만행을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하나하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자기 아이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하며 그것이 바로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개인주의자는 결코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와는 다르며, 오히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가면서 주위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통해서 개인주의의 개념을 곱씹어 볼 수 있었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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