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페북에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님이 올리신 글입니다. 기후위기에 관심있는 분이시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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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마지막 서평 <#기획회의>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강연을 한다. 2021년에는 좀 힘들었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주제가 갑자기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온갖 곳에서 요구하는 주제가 ‘기후위기’ 하나로 모아지고 있다. 2021년 4월 이후에는 90%가 기후위기를 요구하고 특히 공무원 조직에서는 100% 기후위기만을 원한다. 다들 심각하게 느끼긴 느끼나 보다. 몇 년 전만 해도 강연 후엔 꼭 “이산화탄소 농도는 원래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아닌가요?”라며 따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후위기 회의론자들이 괜히 삐딱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무조건 믿는 게 아니라 의심하고 질문하는 과학적인 태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권위 있는 근거마저 있다. 그분들은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지구온난화라는 거대한 사기극(The Great Global Warming Swindle)’을 거론한다. 그런데 정작 BBC 방송국에서는 “이젠 기회변화를 부정하는 기사는 더 이상 싣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렸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다르지 않을까? 이들은 무엇이든 의심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과학자들마저도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환경에 관해서는 가장 독보적인 논문지인 ERL(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은 기후변화 논란에 대해 종결을 선언했다. “작금의 기후변화가 인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반박하는 논문은 투고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그런 논의로 시간과 정열을 낭비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변화를 감지하고 대처하는 데 가장 느려터진 곳은 정부다. 그런 각국의 정부마저 대개 2050년에는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100% 재생에너지만을 이용해서 생산한 제품만 팔 수 있다는 RE100 제도가 코앞에 와있다. 우리나라처럼 경제의 80%를 무역에 의존하는 나라로서는 심각한 생존의 문제인 것이다.
과학, 언론, 정부 할 것 없이 모두 인류에 의한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와중에 그 어디서도 통용되지 않는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는 책이 잘 팔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책들의 공통점이 있다. 잘 썼고 번역도 좋다. 머리에 쏙쏙 들어온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비외론 롬보르, 에코리브르, 2003)와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프레드 싱거 등, 동아시아, 2009)가 대표적이(었)다.
기후위기 회의론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요즘 폭발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2021)이다. 저자 마이클 셀런버거는 (내가 보기에) 천재다. 천재적인 로비스트다. 그는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인터뷰와 연구 결과를 따온다. 숫자를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한다. 코끼리 코, 기린의 목, 오리의 발, 공룡의 발톱, 뱀의 몸통, 염소의 꼬리를 합쳐놓은 것 같다. 전형적인 체리 따먹기(Cherry Picking)이다.
마이클 셸런버거의 세상은 잘 통제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후발국들은 석탄발전소를 세우고 선진국들은 얼른 얼른 원자력발전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면서 총생산을 늘리다보면 지구 환경은 저절로 지켜질 수 있다, 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전 세계에서 만난 가장 힘들고 고통 받는 이들의 입을 통해서 증언한다. 셸런버거의 주장은 과학논문지에도 실릴 수 없고 BBC에서도 다뤄주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꼭 읽어야 하는 독자도 있다. 『6도의 멸종』(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세종서적, 2014)에 크게 감명 받은 분들이다. 이 책도 어마무시하게 많이 팔린 것으로 알고 있다. 참 재밌게 쓰였고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는 책이지만 과장이 심하다. 그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에서 인용한 “앞으로 100년간 지구 기온이 6℃까지 상승할 것”이라는 경고로 책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는 “지금보타 석탄을 4배 많이 쓸 경우”라는 전제조건을 못 본 척했다. 마크 라이너스도 마이클 셸런버거와 비슷하게 체리 따먹기에 능한 것이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이니 충격적인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려는 『6도의 멸종』이나 그런 생각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나 모두 너무 잘 써서 문제다. 이럴 땐 중심을 잡아주는 ‘재밌는(!)’ 책이 필요하다. 중심만 잡아주면 안 되고 재밌어야 한다. 술술 읽히고 무릎을 칠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거론한 두 양끝의 책만큼 재밌지는 않지만 과학적인 중심을 잡으면서도 그래도 독자를 끝까지 끌고 가는 국내 작가 책이 몇 권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읽고 심지어 진중문고에 들어있어서 군인들도 읽고 있는 『파란하늘 빨간지구』(조천호 지음, 동아시아, 2019), 『우리는 결국 지구를 위한 답을 찾을 것이다』(김백민, 블랙피쉬, 2021) 그리고 『기후의 힘』(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이 그것이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저널리스트가 아니라 전문가라는 것이다. 조천호와 김백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후학자이고 박정재는 생물지리학자다.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진 후 기후와 관련한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 세 책처럼 전문성을 보이는 책은 보지 못했다. (외국 출판사들은 이 책들을 다 놓치고 있다. 그들의 저작권 담당자들은 더 부지런해야 한다.)
만약 내가 교사인데 학생들에게 기후위기를 가르쳐야 한다면 어떤 순서로 읽으면 좋을지 생각해 봤다. 어차피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니 가장 쉬운 책부터 올라가야 한다. 초등학교 수준부터 시작하자. 한 권을 읽어도 된다. 『선생님, 기후 위기가 뭐예요?』(최원현 지음, 철수와영희, 2020)가 가장 독보적이다. 다음 순서는 중고생을 위한 책이다. 두 권이 필요하다. 『기후변화 쫌 아는 10대』(이지유 지음, 풀빛, 2020)와 『단번에 개념잡는 기후변화』(신나는 과학을 만드는 사람들 등, 다른, 2021)가 그것이다. 그 다음에는 한국 전문가 세 명의 책을 읽으면 될 것 같다. 하지만 교사라면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과 『6도의 멸종』도 읽기 바란다. 그래야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