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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잊은 듯이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초등학교 동기생 모임에 참석하여 2차 회식 중에 술잔 사건으로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만나고 어쩌다 스쳐 지나가는 얼굴로 봐온 만남 외는 한 동안은 둘은 그의 만난 적이 없었다. 서로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 방학 때 일이다. 여름 장마 비가 지겹도록 내린다. 온 천지가 물로 가득 차고 물러터질 듯 습기가 마음마저 휘감아 아주 기분 나쁜 날들이 계속되었다. 옛 어른 들은 장마보다 가뭄이 낫다 고들 하셨다.
“칠 년 가뭄에는 살아남아도 석 달 장마에는 못 산다”
는 말이 전해지는 것만 보아도 알만하다. 요즘음도 장마에는 물러터진 곡식이나 과일이 상품가치를 잃어버려 내다 버리는 일도 있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은 운반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밭에다 두고 갈아엎어버리는 경우도 가끔 본다. 가뭄에는 그래도 물을 퍼주고 잘 관리하면 당도도 높고 상품가치가 있는 과일을 만들 수 있으니 당연 장마보다 가뭄이 낫다는 말이 맞는 말이다. 어떻든 자연은 모든 것이 다 적당히 비가 내려주고 햇빛이 비춰주고 해야 사는 사람들은 살맛이 나는 것이다. 그렇게 온종일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이었다. 설이 면소재지 아버지가 병원을 하는 친구 집에 갔다. 병원 입구에서 우연찮게 목발을 집고 쩔뚝거리며 나오는 성웅을 만났다.
설은 성웅을 보면서 깜짝 놀란다. 그 사이 앎은 척도 안 했던 일들은 까맣게 잊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더욱 병원 앞에서 작지를 집고 나오는 성웅을 보고는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반가운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에서 동시 다발로 묻는다.
“니(너) 많이 다쳤나? “우애된 일이고?”
한꺼번에 묻는다.
그 사이 둘은 이웃에 살면서도 소식이 없었다. 성웅이 다쳤다는 것을 몰랐던 것도 미안한 일이고 하여 정말 걱정하는 마음으로 물은 것이다.
성웅은 설의 이 물음에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보면 울음 섞인 것 같은 물음(설은 단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을 것인지도 모르지만 )이 여운이 되어 자기 가슴을 촉촉이 적신다.
야가 디기(많이) 놀라며 묻는 것을 보니 성웅은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미친다. 한편 설은 성웅을 보니 야(성웅)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더니 목소리도 변하고 턱에 까뭇까뭇 수염도 자라고 이젠 여자에 대해 무엇인가 아는 눈치다. 성웅이 엉덩이를 앞으로 한껏 내밀며 철없이 휘저으며 내 갈겼던 능금나무 아래서의 시원했던 오줌발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짚불의 연기처럼 먼지가 일어나던 일들이 퍼떡 스쳐 지나간다. 얼굴이 붉어진다. 성웅도 같은 생각을 할 일은 만무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뒷머리로 손을 가져가며 긁적이는 미안한 모습에서 지난날의 아련했던 추억들을 만지작거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니 설도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진다. 얘가 나를 잊지 않고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성웅이 입을 연다.
“몰랐나? 내 교통사고 안 났나?”
설이 그 말을 받아 다시 묻는다.
“그래 우야다가 사고 났는데?”
다시 말을 받아
“급한 일 있어 택시를 타려다가 너무 급한 김에 여는 문에 부딪쳐 넘어졌다.”
다시 설이 묻는다.
“그래 지금 괜찮나?”
성웅은 다시
“너머(넘어) 지면서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깁스 안 했나.
설은 허리를 굽혀 성웅의 깁스 한 다리를 만지면서
“안 아프나?
“다른 데는 다친데 없고 뼈만 뿌라 붓나(부러졌나)?”
사건 인적 이렇다. 성웅이 말하는 급한 일이란 어떤 깡패가 성웅에게 돈을 갈취하려는지? 앞을 막으면서 다섯 손가락을 아래로 오므리면서
“야 임나 너 이러 좀 온 나(오너라).”하므로 겁도 나고 해서 도망간다고 오는 택시를 세워 급히 타다 문에 부딪치며 인도에 넘어졌다. 운이 나빠서 그러한지 별일도 아닌데 다리가 부러 졌다. 택시 기사가 놀라 내려오고 하는 통에 깡패 녀석은 어디로 도망 가버리고 바로 그 택시를 타고 가까운 병원에 갔다. 다리가 부러졌어 깁스를 했다.
방학 중이라 고모 집에 계속 있는 것도 불편스러워 시골로 내려온 것이다.
성웅은 이왕 만난 김에 어디 가서 이야기도 할 겸 몸에 별 이상이 없다는 표현을 한다.
“의사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낫는다. 하셨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어쩐 일인지 다리가 저려 혹시 하고 오늘 병원에 안 와 봤나.”
이 말에 설이 다시 묻는다.
“의사 선생님 머라카시 더노? (뭐라 말씀하셨어)”
성웅은
“괜찮다. 캤다.” 그러고 나서는 묻지도 않는데
“여름방학 동안 이렇게 하고 어디 가겠나? 집에 죽치고 있어야겠다.”
다시 설이
“치료 다했나?”
성웅이
“그래 다했다, 아니 치료할 것 없다 캤다.”
“이렇게 하고 있으며 낫는다. 캤다.”
성웅은 머뭇한다. 설을 보면서 어디가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데
말을 마치자 어디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더니 성웅이 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신다.
설은 성웅을 보고
“저기 니거 아버지 아이가? 아마 니 데리려 오신 모양인가 보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성웅이 아버지 오토바이에서 내리시며 설을 보고 추궁하듯 물으신다.
성웅의 아버지는
“니거(너희들) 우애 만났노 (만났느냐)?”
하시면서 설을 빤히 처다 보신다.
설이 보고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만났는지가 더 궁급하신 모양이다. 그 물음 속에는 무언중에 니 (설이)가 알랑 방귀를 쳤어 성웅을 꼬셔내 만나기라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말씀으로 들린다.
성웅의 아버지는 설이 못 마땅하다. 자기 아들보다 공부 잘하는 것도 그렇고 키가 큰 것도 그렇고 하얀 피부며 심지어는 눈까지 커다랗다. 검은 눈동자에 황소 눈 같이 껌뻑거리는 것도 싫다. 지금도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다. 아들이 작지를 집고 편지 못한 허리 탓에 꾸부정하게 서 있으니 더 왜소해 보인다. 아들 앞에 서 있는 설이 아들보다 큰 키 훤칠한 그 모습에 울화통이 치미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히 말이 부드러워질 수 가없고 말에 가시가 박혀 퉁명스럽고 툭툭 손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꾸벅 머리를 숙이는 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아들을 보고
“타라 ”하면서 아들이 타기를 재촉한다.
성웅은 설이 보기가 민망하다. 아버지에게 한마디 한다.
“아버지는 참 설이 인사 안 합니까? 인사는 받아 야지지요?”
성웅의 아버지는 시큰둥하다. 힐금 설을 보면서 퉁명스럽게 한마디 툭 던지신다.
“그래 왔나” 한마디 하고는 뒤에 아들이 앉는 것을 보고는
“야 그만 가자” 하시면서
설이 고개를 숙이며
“안녕히 가세요.”인사도 끝나기 전에 부릉 시동을 걸며 약간의 먼지를 일으키며 집을 향해 떠난다.
둘은 서로 인사도 하지 못하고 해어졌다. 둘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성웅은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설이와 더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살아가는 중간중간에 생각지도 않은 만남은 서로에게 내가 여기 있다면서 서로 일깨움을 주는 것은 아닐까?
또 중학교를 졸업할 때 일이었다. 이웃에 살며 시장에 이나 공판장에 간다든지 하면서 자연히 서로 가족들을 만났다. 애들이 어느 고등학교에 보내려는지 어른들은 궁금하기도 하였다. 서로 물어보기도 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대구에서는“여자”란 두 글자만 들어갈 뿐 학교명이 같은 K고등학교 즉 가장 이름이 난 일류고등학교를 가야 한다고 진작부터 서로 경쟁이나 하듯 말하였다.
고등학교 시험을 얼마 두지 않은 어느 날 오빠가 동생 설에게 물었다.
“야야 성웅이 아버지를 오늘 만났는데 아들이 이번에 K고등학교 시험 친다 안 카나”
“그 학교 갈라 카면 공부 디기 (아주) 잘해야 하는데 가(성웅이) 공부 잘했나?”
오빠는 과거 국민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느냐 물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중학생인 지금 공부를 잘하느냐? 물으시는 것인지 설은 헷갈렸다.
그래서 설이 대답이
“성웅이 말 입니꺼? (말씀 입니까?)
가요(성웅이) 국민하교 때는 별로니더 (별로입니다).”
“그라고요 중학교 가서는 모르겠심더 (모르겠습니다.)
“가 친구들 말로는 잘은 모르겠심더만 (모르겠습니다만)
중학교 가서는 열심히 공부한다. 카데애 (들었습니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는 다른 반이었지만 4 학년 때부터는
한 반이었다. 성웅이 보다 설이가 공부를 더 잘했다. 같은 반이라 설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설은 초등학교 6년 동안 우등상을 놓친 적 없는데 반해 성웅은 다른 반에서도 또 같은 반에서도 한 번도 우등상을 받은 적 없다.
성웅의 집에서는 설은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여학생이 학년 올라갈 때마다 우등상을 받아오는데 명색이 남자인 아들이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우등상을 받아 온 적이 없었다.
성웅의 아버지는 무슨 일이 인지 모르지만 밖에서 화가 나서 술을 한 잔 자시고 들어 오셨어 아들 녀석에게 분풀이라도 하시려는 듯 설이와 비교하면서 아들 녀석을 심히 꾸짖었다.
“사내자식이 그 깐 계집애도 받아오는 상 한 번도 받아오지 못하고 차고 있는 부랄 띠 가 마당 있는 개 던져 뿌라 (버려라) 묵구로 (먹도록)”
“보기 싫다. 어디 나가 디저 뿌리든지(죽어 버리든지)?”
하시며 역정이 대단하셨다.
옛 날 우리 어른들은 많은 분들이 자식의 장래를 생각하고 하시는 말씀이 어떤 말씀을 하셔야 되는지도 모르셨다. 아니 알려하지 않으셨다. 대대로 농사만 지으시고 배운 것 없는 아버지로서 한계이기도 하셨지만 조금만 지혜로워 섰으면 어떤 말이 자식에게 도움이 되는 말인지 가려했을 것이다. 지식은 부족하셨다 해도 여러 곳에 출입을 하시어 조금만 여러 가지 세상일들을 살펴보시고 지혜를 얻어 섰다면 아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가 디져부 (죽어 버려)라는 말은 여사로 써는 말씨였다.
아들에게 한 이 말씀이 아버지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으며 자식으로서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 것이지만 이런 말씀도 한두 번이 아니니까 마음 안에 멍울로 싸이는 것이다.
이놈 어디 나가 뒤젔뿌라(죽어버려라) 하시면서 심지어는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하시면서 어떤 날은 술의 힘을 빌려서 인지 지게작대기를 마구 휘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닦달하고 윽박지르고 심지어는 신체적 가학도 서슴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식을 기르는 방식이 짐승 대하듯 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두들겨 패는 것이 목수가 연장으로 집수리하듯 맞추고 두드리고 다루고 뀌어 맞추면 사람도 그렇게 되는 줄로 믿는 모양이다.
해방 후 그리고 6.25 한국전쟁 혼란기에는 외국의 구호물자로 연명해 갈 정도로 그때는 모두가 가난했다. 없는 집 자식으로 태어나서 못 먹고 못 입고 자랐다. 옛날에는 어쩐 일인지 가난한 집일수록 자식들이 많았다. 아닌 이야기로 돈이 없으니 취미 생활이라든지 다른 어떤 즐길 놀이가 없거나 있어도 돈이 더는 일이라면 할 수 없으니 오직 아이 만드는 일이 가장 즐거운 놀이라며 그러니 자식이 많을 수밖에 없지 않으냐 라는 우스갯소리도 없지 않았다. 실증론으로 얘기하면 일본 강점기에는 성웅의 집도 가난했다. 그러니 형제가 많았다. 자랄 때에도 형제간에 경쟁하면서 아니 싸우면서 컸다. 먹을 것 하나라도 우물 주룰 하다가는 차래를 놓치기 다반사다. 그러니 먼저 먹으려 하다 보면 아귀다툼은 좀 과한 말이지만 서로 다투었다. 형제끼리 경쟁하듯 싸우며 자란다는 말은 성웅이 집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줄줄이 6 남매에 성웅이 아버지가 맡이고 보니 아버지의 기대 유난하였으니 결코 나무랄 일은 아닌듯하다.
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 형제 그러니까 삼촌이나 고모들이 좁은 집에 우글거렸다. 조금이라도 식구들의 입을 들기 위하여 일찍 일본인 과수원에 일꾼으로 들어갔다. 삯도 없이 수년간 일을 하였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이 물러가고 나서 자연히 과수원을 차지하게 되었다.
많은 과수원 주인들은 일제 강점기시 일본 과수원에서 일꾼으로 일을 하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들이 귀국을 하고 나서 임자 없는 소위 적산(敵産) 재산인 과수원을 차지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일본인 과수 주인에게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천성이 어질게 태어나 잠시도 쉬지 않은 성품이 현재의 성웅의 아버지를 만들었다 해야 할 것이다.
아들에 대한 열정이 꾸지람으로 나타났으며 간섭하고 채찍질하며 닦달함으로써 자기의 자식이 잘될 것으로 믿으며 이것이 자식 사랑의 한 방법으로 철썩 같이 믿는 것이다.
그 후 중학교 입학 결과는 설은 1차 시험에 합격하여 애초에 희망했던 학교에 갈 수 있었으나 성웅은 1차 시험에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어쩔 수 없이 그만 못한 세칭 이류 중학교에 가야만 했다. 성웅의 부모님은 마음이 몹시 상 하셨다. 자기 자식은 아들이고 더욱 아버지도 없는 설은 보기 좋게 1차 떡하니 합격했었는데 자기 자식은 보기 싫게 미끄러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성웅은 아버지의 상하신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설을 비교해서 설이 보다 못해 하시는 아버지의 상하는 마음보다 설이와 같은 레벨에서 밀려나 앞으로 설이와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더 아파왔다. 레일 위의 두 바퀴 같이 언제나 함께 달리면서 많은 시간을 이야기하며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생각이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또 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던 스스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열등감이 생겨 거리감은 어쩔 수 없이 더 버러질 수밖에 없었다. 만남은 더욱 뜸해지고 세월은 흘러갔다.
중학교 들어갈 때 그랬던 것처럼 고등학교 들어갈 때도 어쩌면 그렇게도 판박일까? 비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웅의 집에서는 어쩌면 계집에 하나도 이기지 못하나 하는 마음 없지 않았을 것이다.
둘 다 쑥쑥 몸도 자라고 앎도 많아지고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학생 본래의 의무인 공부도 열심이었지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왔어 어디로 가는 걸까? 젊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한 번쯤은 생각하는 인간 본연의 대한 의문에까지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그림도 그려가며 또 한 편으로는 서로를 잊은 듯 마음 저편에 남겨두고 새로운 얼굴들과 사귀며 새로운 경험을 얻고 서로가 잊은 듯 생활하게 되었지만 가족들로 인하여 소문을 듣고 전하고 입에 오르내리면서 간접적인 만남은 언제나 잊을 만하면 다시 뇌리에 각인시키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인가 딱 부러지게 네가 좋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다른 사람 입으로 무언가 나쁜 소리를 들을 때 에는 쌍심지를 켜고 귀를 쫑긋해 듣기도 하고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낭패스러울 정도로 물고 늘어진다든지 아니면 자기가 가족인 양 장황하게 변명을 한다든지 상대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난처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어느 날 성웅이나 설이 둘 다 잊은 듯 마음 뒤편의 일들을 끄집어내야만 일들이 생겼다. 생각지도 못했든 일이 둘에게는 지난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