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에 이 세상에 태어나 현생에 적응할 때는 정신적 -영적 세계에서 했던 활동을 실제로 계속합니다(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술, 2023, 230)."
필자가 슈타이너 공부를 지금까지 계속한 것은 현실에서 만나는 의문(수수께끼)을 풀고자 했기 떄문이다. 지금은 누구라도 이런 의문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는 어디에서도 이런 의문들에 대한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혼자 씨름을 했는데, 정신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므로 혼자 의문을 풀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이제는 이해한다. 특히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의문을 가졌는데, 이를 해결하고자 수소문 하다가 슈타이너를 만났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먼저 말하면 슈타이너를 공부하면서 필자가 가진 모든 의문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정신'이라는 결론까지 내리게 되었다. 정신이 물질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뿐, 그 물질을 이끄는 것은 정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동안의 의문은 정신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2학년)에 독일어 선생님을 만났는데, 아이들이 이 선생님 시간만 되면 수업을 하지 않고 떠들고, 심지어는 선생님 앞에서 선생님을 대놓고 놀렸다. 선생님은 연세(50 대 중반)가 있으신 듯 보이는데, 아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살짝 보였지만 모른 척, 겉으로 거의 내색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에게 닥아갈려고 독일어 노래, <소나무>를 원어로 불러주시기도 했다. 당시 불러주시는 선생님 모습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짠한 마음이 여지껏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도 아이들이 그러는 이유를 몰랐을 듯하다. 오히려 자신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이 아니라는 자책을 하였을 것이다.
추측하기에 당시 제2 외국어를 해야하는 학교 방침에 따라 전공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이 맡으신듯 하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감이 없으셨을 테고, 한참 발랄한 고등학교 여학생들 앞에서 우물쭈물하셨을 것이다. 이것을 학생들이 간파한 것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학생들의 아스트랄체는 이런 사실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책을 보고 그냥 읽는 수준인지 파악해서 수업시간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있는 것은 첫째 교사의 권위이다. 당연히 교사는 권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 경우 교사가 권위를 가질려면 가르치는 과목의 지식이 교사의 자아에 내재되어야 한다.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의 지식을 암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아가 변형되어 진화되어야 아이들이 받아들인다. 이것이 교사의 자아가 정신자아로의 진화이고, 교사의 자아가 정신자아로 진화되어야 교사의 권위가 인정된다. 교사의 자아를 정신자아로 변형, 진화시키는 것이 아스트랄체이다. 따라서 아스트랄체의 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은 교사의 권위는 교사의 자아가 정신자아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를 정확히 파악한다는 사실이다. 아스트랄체가 보이지 않으므로 교사나 아이들은 그 이유를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필자도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고, 듣고, 겪었다. 겉으로 보기에 교사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아이들이 대놓고 교사를 무시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는 아이들의 아스트랄체가 '이를' 간파하였다고 봐야 한다. 특히 50대 중반 이후의 교사들에게 고학년을 배정할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왜 50대 중반 이후 교사들인가를 살펴보면, 먼저 이 나이대 교사들의 아스트랄체를 생각해 봐야 한다. 50대 중반이후가 되면 현실의 삶에 대한 문제가 많이 차지해서 학습에 대한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가르치는 교재를 그냥 읽거나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어렵다. 그 나이대의 교사들의 아스트랄체에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과목에 대한 호기심도, 지식에 대한 관심도 없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은 50대 이후가 아니라 모든 교사들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것은 필자의 경험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가르치는 것은 똑같은데 어느 해, 아이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떠들었다. 이유를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실험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고 첫째 수업시간에는 아이들만 생각하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둘째, 온전하게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중심으로 수업을 해 나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교사에게 집중하고, 또 교사가 하는 말을 잘 들어주었다. 당시는 무척 신기하였지만, 역시 이유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런 마음 상태를 계속 유지하였더니, 아이들이 잘 따라와 주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리고 슈타이너로 부터 들은 아스트랄체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둘째, 교사가 마음만 바꾸어서는 이렇게 되지 않는다. 효과는 물론 있다. 하지만 교사가 가르치는 과묙에 대한 지식이 내재해야만 가능하다. 필자는 당시 도덕교육에 대한 박사 학위중이라서 도덕교육에 대한 질문과 지식이 필자의 아스트랄체에 내재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라도 필자의 자아가 정신자아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생각해 보니 먼저 필자가 아이들에게 집중하자, 아이들이 필자의 말을 들었다. 즉 필자의 아스트랄체의 성향으로 아이들은 집중을 하였고, 집중을 하자 교사의 정신자아가 아이들을 이끈 것이다. 만약 필자의 자아에 도덕 교육에 대한 지식이 내재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이 집중했다고 해도 아이들을 이끌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셋째, 필자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아이들은 필자가 가르치는 음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음악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떠들어서 수업이 되지 않았다. 이 역시 궁금해서 실험을 해 보았다. 결과 필자의 자아가 정신자아가 되지 못한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요컨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초등 수준 음악 이론은 어렵지 않아서 누구나 이해하므로 필자도 음악 이론에 대한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음악은 이론이 중심이 아니고 음악 수업이어야 한다. 음악수업이란 아이들이 노래나 악기(리코더)를 통해서 음악을 받아들여서 어떤 기쁨(?)을 느껴야 한다. 이것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필자의 자아가 이를 충족시키주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충족시켜 줄 수가 있을까? 인간의 자아가 정신자아가 된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자아가 그 일(정신)을 한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음악의 정신이 필자의 자아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신자아로 나아가는데, 이는 음악을 꾸즌히 해야만 가능하다. 이렇게 자아가 받아들이는 정도가 정신자아의 수준이고, 아이들이 그 정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근래 인터넷에 올라온 음악 수업시간을 보았다. 바이올린을 전공한 선생님이 올리셨는데,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보면은 아이들의 반응이 굉장히 뜨겁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예컨대 아이들이 비발디의 사계를 들려달라고 하면, 선생님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정신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선생님의 아스트랄체가 진화되어서 정신자아가 되었을 것이고, 아이들의 아스트트랄체가 이를 파악, 음악에 대한 감성을 느끼고 기뻐하는 것이다. 즉 아이들의 아스트랄체가 기뻐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아이들의 정신이 전달받아서 저절로 그렇게 된다. 인간의 육체, 정신이 예술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인데,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교사의 권위란 오랜 시간 공부해서 교사의 아스트랄체가 정신자아로 진화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야 아이들의 아스트랄체가 받아들인다. 옛날에는 이런 교사가 중심지역(좋은 학군)에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 강의를 통해서도 만날 수가 있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능하지만, 같은 학군의 아이들로 부터 받는 정신적인 자극은 없을 것이다. 이는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요소이다. 하지만 모든 수업을 인터넷 강의로만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교사로 부터 이런 정신적인 자극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정신을 성장, 발달시키므로 교사의 권위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존경하는 선생님 때문에 전공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가 있다. 그 선생님의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학생의 아스트랄체가 감동을 받았고, 결과 학생의 정신이 성장,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신이 학생을 이끈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이렇게 자신의 자아를 정신자아로 진화시킬려고 노력해야 한다. 현재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도 그렇다. 학부모들이 교사의 권위를 인정하면 좋겠지만, 그러기에는 인류가 정신을 인정하지 않은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으므로, 스스로 자신의 정신자아를 진화시키는 방법외에는 없는 것이다.
결론이다. 필자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공부하게 되었을까? 돌이켜 보면 필자는 태어나면서 부터 이것을,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있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했다. 그리고 계속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제 겨우 정신이란 사실을 파악했다. 파악하고 보니, '왜 이것을 궁금해 했을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아마 지난 생에 이것을 파악하고자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짐작하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위 문장처럼 지난 생에 궁금해 했던 것을 현생에 적용시켜서 실제로 계속한 것이다.
슈타이너의 주장을 보면 때로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필자가 공부한 결론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것은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 즉 자신의 정신의 수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 수준이 된다면, 모든 부분이 진리이다. 단 하나도 틀리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다음 생에는 어떤 활동을 해야하냐란 질문을 요즈음 한다. 물론 정신에 대해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더 공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