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nus Dei, Samuel Barber-내가 아는 한 노동운동가에게
진은영
밤이여, 너의 긴 팔에 몇 개의 못 구멍을 내라
뿔피리처럼 맑은 눈을 떠라
당신이 집을 떠나 공장에서 썼던 일기의 첫 줄은 명랑했을 거라
상상합니다
진보라니, 언제나 그 말은 아득하게 들립니다
꿈속에서 누군가와 알몸으로
사랑을 하고 빵을 나누는 일처럼
자면서 벌어진 입술로 새어나오는 잠꼬대 같은 진실들
그런 걸, 믿으라는 말인가
나는 오랫동안 묻곤 했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을 지우면서
당신은 스스로 답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러나 결코 욕심 부리지는 않았죠
한낮이 아니라
별들이 아니라
용접기 불꽃이 만든
한 개의 반짝이는 구리 반지를
벽보 속에, 슬픔 속에, 한 노동자의 얼굴 속에 넣어뒀을 뿐)
당신은 확신했습니다
나는 세상의 소금이다
나는 약간의 소금, 나를 넣어주세요
(그렇다고 역사의 바다가 더 짜지지는 않을 테지만)
모든 것은 둥둥 떠오를 것입니다
거짓은 생각만큼 무겁지 않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염도의 합법칙성이 아니라 소금 한 알
흰 깃털의 어둠 속에서
얼굴을 씻는 나무들
어쩌면, 높은 데서 딴 열매는
빛의 밤송이 같은 것, 배가 고프고 따갑습니다
때때로 빈속에 삼킨 정직은 우리의 창자를 찢으며 내려갑니다
나는 완벽한 사실의 평면, 혹은 고통이라고 믿는 벽에 뚫린
아주 작은, 단 하나의 구멍
나는 그것을 통과해서 나갈 거니까
앞으로
앞으로
마지막 순간에 당신은 중얼거렸습니다
……
……
나는
그 순간에 덧붙일 정치철학적 논평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질문으로
다시 질문을 지우며
당신과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신념으로
어제까지 신이 머물렀다 막 떠난 도시처럼
이곳이 아직 따듯한 것이라고
조용히, 당신처럼, 비유로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