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발달과정에서 감정영혼(감정혼)이 형성되는 동안 아스트랄체에서 변형이 일어나며, 지성영혼(오성혼)의 형성은 에테르체의 형성에서, 의식영혼(의식혼)의 형성은 물질체의 변형에서 나타난다(비밀학 개요, 2024, 429)."
인간을 크게 보아 육체와 정신으로 본다면, 육체는 보이는 부분으로 물질의 속성에 따른다. 반면 정신은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의 속성에 따른다고 볼 수가 있다. 인간의 정신을 구성하는 요소를 슈타이너는 정신과학적 요소라고 명명하고,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그리고 자아로 나누었다. 물론 여기서 육체를 포함시킨 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육체 역시 다른 보이지 않는 정신의 요소 부분이 있어서 서로 교류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정신이 발달, 진화하는 것이다. 어떻게 발달, 진화하는가가 질문이다.
먼저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들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육체는 물질의 속성을 따른다. 거기에 맞춰서 발달이 이루어지면 된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인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에테르체는 식물, 동물, 인간이 지니고 있으며, 이들의 생명을 움직이는 힘, 에너지이다. 인간과 동물은 아스트랄체도 가지고 있어서 에테르체만의 속성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에테르체만을 가지고 있는 식물을 생각하면, 에테르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식물을 가만히 보면 뿌리에서 잎까지 물이 올라간다. 이 힘이 우주 에너지로, 삼라만상이 이 힘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힘은 누군가(우주)의 에너지이지, 스스로 이 힘을 거부하거나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도 같다) 결과 식물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또 어떤 감정도 없다. 이것이 에테르체의 속성이다. 조야하게 말하면 수동적으로,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야 꽃을 피운다. 요컨대 발달한다. 이때 조력자가 아스트랄체이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영혼의 바탕체이다. 인간과 동물이 같이 가지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그 역할로 보아서 감정영혼, 오성영혼, 의식영혼으로 나누는데, 아스트랄체가 이 영혼들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즉 내가 가진 아스트랄체의 속성이 어떠냐에 따라서 각각의 영혼이 활성화되기도 하고 반대의 경우도 된다. 아스트랄체가 영혼의 바탕이므로, 만약 나의 영혼이 성장, 발달하게 되면 아스트랄체 역시 발달된다. 그렇다면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먼저 그럴려면 영혼이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영혼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스트랄체의 성향에 달려 있다. 에컨대 아스트랄체가 부지런하다거나 긍정적이어야 한다. 이 모두를 포함하는 감정이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이 중요한데, 여기서의 사랑은 현실에서의 사랑이 아니고, 무의식에서의 사랑이다. 둘 차이는 확실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감정이 무의식에 영향을 주므로 현실에서 사랑의 감정을 가지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즉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관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마지막 자아이다. 인간의 '나', 자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다른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이 '나'라는 단어를 쓸 수가 있다. 인간이 현실에서 만나는 자아는 언제나 상속에 들어있는 자아이다. 현 인류에게 있어서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인데, 슈타이너에 따르면 먼 미래 인간이 진화하면 자아는 더 이상 상속에 있지 않는다고 한다. 자아는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를 통합해서 이끈다. 배로 말하면 선장의 역할이다. 이런 자아가 상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다음은 그렇게 하는 방법이다. 첫째 현실에서 우리는 상속의 자아라도 만나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다. 먼저 자아를 관찰하면, 자아가 있는 듯은 한데, 또 내가 만날려고 하면은 만나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없는가 하면은 그건 또 아니다. 한 마디로 오리무중이다. 먼저 말하면 이런 자아를 만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먼저 자아의 속성을 파악해야 한다. 자아가 현실에서 상속에 들어가는 이유는 인간이 태어날 때 에테르체가 생명체계를 완성하면서 자아에게 이를 비추기 때문이다. 무의식에 내재한 자아에게 거울처럼 비추므로, 자아는 어쩔 수 없이 에테르체가 비추는대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테르체가) 비추는 상을 이해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에테르체는 식물과 같이 스스로 무엇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추는 상은 내가 생각한대로 비춘다고 볼 수가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럴 경우 나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나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존재가 나의 영혼이다. 그러므로 나의 이상을 실현하는 행동, 사고, 감정을 가져야 하고, 가지는 존재가 영혼인 것이다. 영혼이 이렇게 할려면 아스트랄체가 그 바탕이 되어주어야 한다.
에테르체가 그렇게 비추도록, 아스트랄체가 그 바탕이 되어 주는, 이렇게 각자의 역할을 하도록 이끄는 존재가 자아이다. 문제는 자아가 상속에 내재하므로 '바깥의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내가 가진 감정이 어떠한지를 늘 살펴보는 것이다.
에테르체의 상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에테르체가 우주 에테르이기 떄문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 그 순간의 우주 에테르를 편취헤서 평생 지니고 산다. 우주 에테르에는 우주의 지혜가 담겨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의 우주 에테르를 평생 지니므로, 편취할 때의 우주 지혜가 현생에서 죽을 때까지 반영된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이 지혜가 전생에서의 삶이 반영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카르마로, 인간은 그 카르마를 평생 지니고 산다. 이 카르마가 현생에서 에테르체에 의해서 반영되므로 에테르체가 비추는 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요컨대 끊임없이 에테르체의 상을 관찰해서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나아가 정신과학적 요소가 진화하도록 나는 해야 한다. 먼저 아스트랄체가 발달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예컨대 피아노를 친다면 피아노의 정서, 사고, 의지가 나의 아스트랄체에 각인, 이렇게 되는 것이 아스트랄체의 변형이다. 변형이 된 아스트랄체를 정신자아라고 한다. 그리고 이 변형이 에테르체에까지 미치면 생명정신이 된다. 아스트랄체의 능력이 습관까지 나아가는 것이, 에테르체의 변형으로 생명정신이다. 즉 정신자아의 능력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생명정신이 더 나아가면 물질체의 변형에까지 이른다. 이것이 정신인간이다. 예컨대 매일 걷는 것이 습관이 되면 몸의 변화가 온다. 이것은 정신의 변화가 몸에 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을 구분하면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 그리고 정신자아, 생명정신, 정신인간이다. 여기에서 정신의 요소는 정신자아, 생명정신, 정신인간이다. 내가 어느 정도 정신이 발달했는지 살펴볼려면 이 세 부분의 정신을 살펴보면 된다. 우리는 대부분 정신자아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생명정신까지 나아가야 한다. 더 나아가 물질인 육체까지 변하는 정신인간이 되어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여담으로 우연히 유튜브에서 마약에 중독되어서 재생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중독자들이 마약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하는데, 그 계기가 아주 단순했다. 현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 호기심, 친구의 권유 등등인데, 그 인터뷰를 들으면 '바보아닌가' 마약의 중독성을 듣거나 보았을 텐데 '왜 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누구나 접해서 중독으로 빠질 수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힘들다고 해서 모두가 마약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힘든 것을 이겨내서 더 큰 보람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이것이 '정신'이라는 말이다. 정신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 필자가 파악하기에는 대부분 '의지'가 약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없거나 약하기 때문에 손쉽게 마약으로 빠진 것이다. 물론 마약이 구하기가 어려웠다면 덜 빠졌겠지만, 문제는 스스로 이겨내어야 한다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약에 빠지면 더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만약 육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 자아 중에서 하나라도 온전하게 발달했다면, 그런 유혹은 이겨 낸다. 그러므로 정신의 발달단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0-7세까지는 육체가, 7-14세까지는 에테르체가, 14세 즈음 아스트랄체가 탄생, 그리고 14-21세 까지 자아가 발달한다. 이 시기 발달이 이루어지도록 주위에서 아이들을 반드시 돌봐야 한다. 그리고 정신은 전달되므로 이 시기 아이들을 기르는 양육자가 굉장히 중요하다. 양육자의 의지가 약하다면, 아이들도 의지가 약하게 된다. 더불어 정신이 보이지 않으므로 나의 정신이 어떤지 알기도 어렵다. 나의 정신을 모르면 이런 어려움, 자신의 어려움을 약물에 의존하게 되고, 그런 유혹에 쉽게 빠진다.
또 정신을 파악하고자 해도 하루 아침에 파악하지 못한다. 불가에 따르면 100일 수련을 하면 자신의 꼴을 조금 파악하고, 1000일 수련을 하면 자신의 문제를 조금 교정한다고 한다. 물론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렇게 해야 그나마 자신의 카르마대로 살지 않는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지만, 정신은 노력하면 그나마 현상 유지라도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더 큰 수렁에 빠진다는 것이다.
결론은 자신의 삶은 자신이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도 질 것이고, 후회도 하지 않는다. 그 근간이 정신이고, 자신의 정신을 파악해야 그렇게 살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