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56) 시 합평의 실제 1 - ⑪ 윤성관의 ‘게’/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1
Daum카페 http://cafe.daum.net/seonju1984/ 비봉산 정기 합평회( 사진임당)
⑪ 윤성관의 ‘게’
< 원작 >
게/ 윤성관
물 빠진 뻘에 게 한 마리가 돌아다닙니다
기는 데는 이골이 난 그
어쩌다 천적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방방 뜨는 일 없이 손과 발은 바닥에 바짝 붙이고
눈물마른 두 눈은 높이 세워 쉼 없이 굴리며
기어갑니다.
노골적인 뒷걸음질은 비겁해 보여 싫지만
앞으로 나가며 정면으로 맞서기엔 오금이 저려
그는 언제나, 옆으로만
기어갑니다
그와 나는,
날마다
노을의 열기가 온몸에 번질 때면
퇴화된 집게발 허공에 삿대질하며 내일은
기필코 앞으로 나아가리라 거품 물지만
어김없이 물은 다시 들어오고
그와 나는,
집싸게 어깨동무하며
굽이굽이 깊게 파놓은 땅굴로
숨어들어갑니다
< 합평작 >
게/ 윤성관
뻘에 게 한 마리가 돌아다닙니다
기는 데는 이골이 난 그, 천적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방방 뜨는 일 없이 손과 발은 바닥에 바짝 붙이고
눈물 마른 두 눈은 높이 세워 쉼 없이 굴리며 기어갑니다
뒷걸음질은 비겁해보여 싫지만 정면으로 맞서기엔 오금이 저려
언제나 옆으로만 기어갑니다
노을의 열기가 온몸에 번질 때면
퇴화된 집게발 허공에 삿대질하며
내일은 기필코 앞으로 나아가리라 거품을 물지만
어김없이 물은 다시 들어오고
그와 나는 잽싸게 어깨동무하며
굽이굽이 파놓은 땅굴로
숨어들어갑니다
< 시작노트 >
다음 주 수업에서 평가받을 시 보냅니다.
지난 주 평가해주신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보내주신 합평작을 보면서
역시 시인은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6개월 동안 여러 시론서를 읽으며
흉내 내고 고쳐보며 끄적이고 있는데
수십 년은 써보거나 아니면 정식으로 이 분야 공부를 하고,
또 몇 년을 써봐야 알 듯 말 듯한 것이 시인 듯합니다.
이렇게 해도 상상력과 표현력이 부족하다면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면 어떻습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를 즐기다가
스트레스 받아가며 쓰고 또 씁니다.
좋은 가르침 주시기 바랍니다.
시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겠습니다.
< 합평노트 >
띄어쓰기가 틀린 부분이 많지만, 습작을 많이 해본 솜씨입니다.
전체적으로 “물 빠진”, “어쩌다”, “노골적인”, “그는”, “그와 나는 / 날마다”, “깊게”, “기어갑니다” 등의
군더더기 표현을 삭제하면서 마지막 연을 두 연으로 가릅니다.
옆으로 기는 게의 생래적 특성에 자아의 모습을 투사했군요. 아주 신선한 발상입니다.
정면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잘 형상화되었습니다.
결국은 땅굴로 숨어버릴 수밖에 없는, 비겁한 자아가 솔직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연의 “그와 나는,/ 잽싸게 어깨동무하며/ 굽이굽이 파놓은 땅굴로/ 숨어들어갑니다”라는 구절에서,
‘잽싸게 어깨동무했다“는 것은 게와 자아가 동일한 행동양식을 지니고 있는 것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큰소리치지만, 한편으로는 나약하고 한계를 지닌 인갈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냉철한 비판력으로 형상화한 시입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 8.1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56) 시 합평의 실제 1 - ⑪ 윤성관의 ‘게’/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