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61) 시 쓰기 상상 테마 1 - ① 기억해야 할 시 쓰기 3단계 2-2/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1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miagood/ 필사.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① 기억해야 할 시 쓰기 3단계 2-2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시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한 가지가 이미지이다.
이미지가 있어야 독자들의 마음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실감과 공감을 쉽게 얻는다.
이미지는 단적으로 사물이나 현상이다.
그래서 사물과 현상을 소재나 모티브 또는 객관적 상관물(현상)로 잡아야 한다.
그 사물과 모티브가 대부분 비유의 보조관념으로써(정서 상태를 대변해 주는 대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나만의 보조관념으로 사물과 현상을 활용할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1단계에서 나만의 간절한 시적 지점을 잡았다면 그 간절한 시적 지점을 대변할 사물과 현상을 찾는 것이
2단계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수행할 때 작고 단순한데 시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사물, 현상, 속성을 찾아야 한다.
크고 총체적이고 복잡한 것은 누구나 인식할 수 있는 소재나 모티브이기 때문에
나만의 객관적 상관물(현상)이 되지 못한다.
작고 단순한데 시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찾아서
그 객관적 상관물(현상) 위주로 시를 써야 한다.
위의 예문에 나온 필자의 「트럭」의 경우, 단순한 객관적 상관물은 트럭이다.
‘가난한 자가 겪게 되는 극단적인 이탈 심리’가 나만의 간절한 지점으로 잡힌 상태에서
그 지점을 가장 잘 대변할 상관물로 트럭을 설정했던 것이다.
트럭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단순하다.
크고 거칠고 묵직한 이미지를 가진 운송수단이다.
만약 그 트럭이 끝없는 질주를 한다면? 무섭거나 공포스러운 이미지도 포함한다.
「트럭」은 그렇게 트럭이 갖는 단순한 속성에 움직임 현상까지 활용하여 나만의 시를 창작하게 되었다.
객관적 상관물을 활용할 때 지독하리만큼 정밀한 관찰을 해야 한다.
한발 물러나서 관찰하는 상태가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모든 것을 알고 깨닫고 있는 듯한 상태가 아니라
정말 그 대상과 하나가 된 밀착된 상태에서 남들이 안 보는 눈으로 정밀하게,
세밀하게 객관적 상관물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 나만의 발견과 나만의 직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한 기법을 필자는 『시클』에서 ‘현미경 기법’과 ‘내시경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현미경 기법’은 자신만의 정밀한 눈으로 시적 대상의 외적 요소를 관찰하고 읽어내는 기법이고,
‘내시경 기법’은 자신만의 섬세한 직관으로 대상의 안쪽이나 너머를 깊이 있게 읽어내는 기법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시를 잘 쓰려면 체험을 진실되게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시적 진정성 때문이다.
그래서 체험은 시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체험이 진정성의 절대적 조건은 아니다.
진정성은 시인의 진실한 체험에서 비롯되기보다는 시 속 화자의 진실한 태도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시인이 시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시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만 깨닫는다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체험은 모두 소용없는 것인가? 아니다.
화자의 체험은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이 스며들어서 나타난다.
간이역에서 이별한 적도 없는 시인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별하는 화자의 상황을 시로 쓴다고 치자.
그럴 때 기차역에 대한 시인의 간접적인 경험이 하나도 없다면
간이역을 배경으로 하는 진정성 있는 이별시는 탄생할 수 없게 된다.
시인이 적어도 기차역을 가보거나 간접적으로 다른 매체를 통해 간이역을 경험해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화자가 상상적 체험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시인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확장되고 재조립되어야만 화자의 경험으로 재탄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시인의 체험이 이렇게 중요한 데도 시인의 체험만 가지고 쓰지 말라는 것은 시인의 이성과 가치관,
윤리 등이 화자의 체험을 확장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화자의 입장에서만 정황과 정서가 철저하게 펼쳐지고 뻗어 나가야 하는데,
시인이 그 화자를 간섭하는 그림자로 따라붙는다면 시 세계는 한정되고 제재도 금방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
마지막 단계는 그런 상상적 체험을 극단까지 끌고 가서 실감 나게 하는 것이다.
하나의 대상이 가진 존재적인 의미를 탐구할 때도 대상이 처한 상황을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다양한 환경적 조건과 정서적 조건을 부여해서 가장 잘 존재성을 발현할 수 있는
체험적 상황을 설정해야 한다.
기존에 있던 익숙한 체험적 상황에서 최대한 벗어나고,
벗어날 수 없다면 전혀 다른 경험적 발상을 적용해야 한다.
상상적 체험은 시인의 주관성을 버리고 화자 입장에서 아주 깊이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때 시간적 체험, 공간적 체험, 사건적 체험 등을 내밀하게 펼치면 된다.
다시 한번 간이역에서의 이별을 시로 쓴다고 치자.
시간적 체험으로 ‘노을 낀 저녁’ ‘비 내리는 새벽’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얼음이 녹기 시작한 3월’
‘억새가 산등성이를 물들이는 가을’ ‘어둠의 숨소리마저 차가운 겨울’ 등 다양한 시간과 계절을 떠올려야 한다.
같은 상황이어도 봄의 이별과 가을의 이별은 같을 수 없고
막차 시간 때의 이별과 첫차 시간 때의 이별 또한 같을 수 없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매표소 앞의 이별과 플랫폼 안의 이별과 역 광장에서의 이별은 다르다.
바닷가 앞 간이역과 들판 앞 간이역은 또 다르다.
상황도 다양하게 체험해야 한다.
헤어진 존재가 기찻길로 뛰어드는 상황,
화자와 헤어진 이가 서로 반대편행 기차를 타고 가는 상황,
승차가 아니라 하차하면서 이별하는 상황,
헤어지고 나면 죽은 후에야 만날 수 있는 상황 등 다양한 상상적 체험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상상적 체험을 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바로 1단계에서 설정한 나만의 시적 지점이다.
무작정 상상적 체험을 하지 말고 나만의 시적 지점을 머릿속에 품은 상태에서 체험을 극적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엄마에 대한 오묘한 연민 의식’을 나만의 지점으로 설정하고 시를 쓴다면
그 메시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체험을 펼쳐야 한다.
‘오묘함’이 제대로 발현될 수 있도록 이런 식으로 상상을 펼치면 좋겠다.
친엄마는 일찍 자신을 버렸는데, 새엄마는 귀찮아하면서도 끝까지 화자를 돌보는 상황,
그 상황을 바탕으로 솔직 담백하게 새엄마의 심리와 화자의 심리를 동시에 반영하면
‘오묘함’이 확보될 것이다.
지나치게 착한 새엄마로 상상을 하거나 지나치게 나쁜 새엄마로 상상을 해서 쓰게 되면
전자는 ‘작위적이다.’ 후자는 ‘너무 뻔하다.’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연민의 경우 추가로 이런 상상까지 하게 되면 더욱 좋다.
친아빠마저 죽고 병든 새엄마만 남겨진 상황,
그럴 때 병든 새엄마에 대한 심리 상태는 묘한 연민 의식이 될 것이다.
‘자신에게 엄청 잘 해준 적은 없지만 끝까지 버리지 않고 키워준 것에 대한
고마움+친엄마의 자리를 차지하고 혈연처럼 잘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나마저 버리면 새엄마가 비참하게 죽게 될 것 같은 상황에 대한 미안함’ 등이
합쳐져서 묘한 연민 의식이 자리하게 된다.
또 하나 주의할 점은 누구나 가능한 있을 수 있는 상황을 체험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만의 상상적 체험을 하라고 하니까 특수하게 있을 수 있는
(1000명이면 한두 명 경험할 수 있는) 상황으로 체험을 해서 새로운 시인양 쓰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시가 억지스럽다’ ‘시를 머리로 썼네’ ‘시를 동화처럼 썼네’하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정리한 시 쓰기 준비 3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앞으로 상상 테마로 시 쓰기를 할 때 여기에서 제시한 시 쓰기 3단계를 모두 거친 다음 쓰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 나만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기회를 매번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귀찮더라도 3단계까지 준비를 한 다음 꼭 시를 쓰길 바란다.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 8.2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61) 시 쓰기 상상 테마 1 - ① 기억해야 할 시 쓰기 3단계 2-2/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