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을 사랑한 사람들과 리먼컬렉션
1839년 다게레오타이프(daguerréotype) 사진술의 발명은 회화의 정체성을 뒤흔들었다.
렌즈는 사람의 눈을 뛰어넘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으로는 렌즈와 경쟁이 되지 않았다.
회화는 '보는 시각'으로 방향을 틀었다.
1841년엔 미국의 화가 존 랜드가 튜브(주석합금) 물감을 발명했다.
돼지 오줌보, 유리병에 물감을 넣어서 가지고 다니던 불편이 사라졌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가 편리해졌다.
산업혁명을 통해 기차, 철도가 발달하면서 화가들은 교외로 나갔다.
프랑스에서 발명된 접어서 어깨에 맬 수 있는 이젤, 튜브 물감을 가지고 기차를 타고 야외로 나갔다.
자연 속에서 빛이 변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1874년 4월 15일 젊은 예술가들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 전시회를 열었다.
자연의 빛과 색을 반영한 풍경화들을 전시했다.
당시 비평가 루이 르로이는 이 새로운 방식을 비판하면서 '인상주의'라 칭했다.
폴 세잔,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등으로부터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유행이 시작됐다.
이들은 파리와 일대, 센 강변과 노르망디 해안까지 다양한 지역으로 향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말년에 머문 오베르-쉬르-우아즈, 클로드 모네가 살며 정원을 가꾼 지베르니와 성당 연작의 무대가 된 루앙, 모네가 부댕을 만난 르아브르, 부댕의 고향 옹플뢰르, 화가들이 몰려든 에트르타까지 인상파의 자취는 노르망디에 촘촘히 남아 있다.
2016년 8월~2017년 7월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초청연구원으로 있을 때 오르셰, 오랑주리, 파리 서쪽 볼로뉴 숲 인근에 있는 마르모탕 미술관을 자주 찾았다.
주말엔 오베르-쉬르-우아즈, 지베르니, 옹플뢰르, 르아브르, 바르비종 등 파리 근교를 다녔다.
남프랑스 아를르, 니스에서는 고흐, 샤갈 등 화가들의 흔적을 따라갔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이가 잘 따라다녀 값이 싼 새벽 기차, 새벽 비행기를 활용할 수 있었다.
김밥, 물, 커피, 과일, 가이드북을 챙겨 등에 메고 다녔다.
파리 초등학교는 매주 한번(주로 수요일)은 박물관, 미술관 수업이 있다.
파리에서의 1년 동안 유럽의 미술관, 박물관을 70곳 넘게 다녔다.
루브르와 오르셰, 로댕 미술관, 케브랑리 박물관 등은 수시로 찾았다.
당시 나는 유럽의 미술관, 박물관 출입이 무료였기에 더 마음껏 다녔다.
파리에서 골목골목을 걷고, 거리나 지하철역의 유래를 찾아보고, 한국문화원에서 책을 빌려와 읽었다.
지금, 시간이 나는 날 2시간가량 주제를 정해 걷고, 박물관을 다니고, 책을 읽는 것은 파리에서의 경험을 살린 것이다.
국립박물관, 고궁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민속박물관 등 서울엔 무료로 개방돼 있는 곳이 많다.
폭염에는 시원하고, 한파에는 따뜻하다.
무료로 들을 수 있는 해설 수업도 많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등의 입장료는 1000원~3000원이다.
서울시청 등 도심 한복판은 물론, 각 동 주민센터에도 도서관이 있다.
현재 루브르와 오르셰의 입장료는 각각 32유로(약 4만8000원), 16유로(약 2만4000원)이다.
베르사유 입장료는 32유로(약 4만8000원)이다.
단순 비교를 할 수 없지만, 서울 시내 박물관, 고궁을 다닐 때마다 문화의 생활 문턱이 낮다는데 행복을 느낀다.
일요일인 어제(2월 8일) 아침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의 로버트 리먼 컬렉션 특별전을 관람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 빈센트 반 고흐 <꽃 피는 과수원> 등 인상파의 작품이 81점이나 왔다.
카미유 피사로의 <겨울 아침의 몽마르트르 대로>도 왔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겨울 아침, 눈 덮인 거리에 마차들이 지나가고 상점 간판들이 희미한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한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작품들이 왔다.
명실상부 문화강국이다.
리먼 컬렉션은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브러더스'를 이끈 필립 리먼(1861∼1947)과 그의 아들 로버트 리먼(1891∼1969)이 수집한 미술품을 뜻한다.
1969년 아들 리먼 사망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2600점이 기증됐다고 한다.
'리먼 브라더스'는 모기지 사태로 붕괴했지만, 리먼이라는 이름, 리먼의 안목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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