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하고자 한 일,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
인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이끌리는 것보다는 분명하고 검증되는 것을 신뢰하고, 선택하였다. 이는 보이지 않는 것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기 떄문이겠지만, 반면 그에 따른 문제도 많이 생겼다. 어떤 문제가 생겼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질문이다. 보이는 것은 드러나기 전에 먼저 보이지 않는 것의 작용이 있고, 그 결과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의 작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보이는 것을 이끌 수가 있기 떄문이다.
여담으로 이것을 파악한 필자의 경험이다. 먼저 말하면 필자의 삶을 이끈 것은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어떤 느낌이었다. 항상 무엇을 할려고 하면 무의식에서 어떤 느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있었다. 느낌이 긍정적이면 그 일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거나 지속되었지만, 반면 부정적이면 흥미를 잃어서 저절로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느낌이 필자의 삶을 이끌었다고 해도 된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느낌인지도 몰랐다. 그러니 그냥 그 느낌에 이끌려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살 것이라고 생각된다.
슈타이너의 주장으로 말하면, 이 느낌이 전생의 카르마일 수도 있고, 이번 생의 목적일 수도 있다. 전생에서 이루어진 영혼 작업이 신경체계에 저장되어서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의 머리에서 반사된다고 한다. 즉 끊임없이 전생의 카르마가 머리에서 반사되어 이번 생에 드러나, 이번 생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또 인간이 태어날 때 스스로 이번 생의 목적을 정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번 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의식에서 어떤 느낌이 올라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사항은 보이지 않는 세계, 정신이라서 증명하지는 못한다. 당연히 현 인류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을 보면 어릴 때 피아노를 쳤다고 해도 1시간씩 연주되는 곡을 모두 외워서 친다. 소질이 있다고 말하거나 천재라고도 말하지만, 그 말로는 부족하다. 전생의 능력이 정신에 저장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을 한다. 또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도 그렇다. 보통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기에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어떤 느낌이다. 이 느낌이 강렬하기 때문에, 즉 인간이 거스를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더불어 이 느낌이 무의식에서 올라오므로 의식상태의 인간이 파악하지 못해서 그 느낌에 이끌리고도 마는 것이다. 그 폐해가 크기에 인류가 이를 부정하고 배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인간은 그 느낌에 이끌려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어디에서나 시공간을 초월, 존재해서 물질을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느낌을 스스로 파악해야 하고, 만약 파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성으로 현실에서 문제가 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종교에서 주장하는 십계명이나 불가의 5계이다. 짐작하기에 인류도 이렇게 하고자 정신을 배제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성인들이 정한 마지노선을 지키면서 사는 것, 이것은 최소한의 삶이고, 나아가 스스로 자신의 정신을 이끌어야 한다.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느낌이 사실은 자신의 정신이다. 다음은 그 이유이다.
인간의 정신은 무의식에 내재해서 현실의 사고로는 파악하지 못한다. 이런 무의식의 정신과 소통을 하는 것이 꿈꾸는 의식의 느낌이다. 이는 현실의 느낌과는 차이가 있다.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은 상속의 자아가 느끼는 감정으로, 자아가 상속에서 하는 사고, 생각이고, 현실에서의 꿈꾸는 의식이 드러나는 것이 감정인데, 느낌은 감정이지만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감정이다. 무의식에 내재한 자아는 마음으로만 우리가 만날 수가 있다. 마음은 실체가 없어서 현실에서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가 현실에서 마음을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하는 생각에 집중할 경우 자칫 그 생각에 사로잡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그렇게 사로잡히는 것은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느낌에 저절로 끌리기 때문이다. 이 느낌이 무의식에서 올라오므로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고, 사로잡혀서 행동을 하고 만다. 또한 우리가 겪는 많은 어려움이 현실에서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제까지 말한 것은 느낌, 생각(사고), 마음이다. 느낌은 꿈꾸는 의식의 작업이고, 생각은 깨어있는 의식의 작업, 그리고 마음은 잠자는 의식의 움직임이다. 되풀이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무의식에 접근하지 못한다. 유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꿈꾸는 의식의 느낌(감정)이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자신의 삶을 이끌고 싶다면 무의식과 소통하는 꿈꾸는 의식의 느낌을 파악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는 이 감정이 꿈꾸는 의식의 감정으로 무의식에서 올라온 느낌인지가 궁금하다. 파악해야 무의식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정신의 속성이 등장한다. 정신의 근본 전제는 모든 존재가 하나, 다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사랑, 신적인 사랑이다. 이런 사랑이 현실세계에서 하는 사랑은 아니지만 도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에서 사랑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 즉 꿈꾸는 의식의 감정이 무의식의 사랑이라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필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연이다. 필자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왜 그런 끔찍한 일을 했을까'하는 안타까움이다. 이 생각이 간절해서 그런 뉴스를 접하면 관심을 갖고 보았더니 알게 된 것이다. 이 느낌이 무의식에서 올라온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정신세계를 움직이는 힘, 연민이라는 것도. 연민은 무의식의 자아에게 전달되어서 직관, 그 답을 자아가 가지고 온다. 이것이 정신, 인간의 자아를 움직이는 힘이다. 요컨대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물음이다. 즉 사랑이 바탕이 된 물음이 정신세계를 움직이는 힘, 연민이라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필자가 관심을 갖다보니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의 '느낌'을 느꼈고, 그 느낌이 필자의 느낌과 같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그리고 이 느낌이 필자의 삶을 이끌어온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느낌이 살인을 하는 사람의 온 몸을 감싸고 있어서 인간이 하는 생각의 힘으로는 벗어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느낌이 아스트랄체라는 것을 파악한 것이다. 아스트랄체는 인간의 몸을 들락날락하면서 구름처럼 감싸고 있다. 아스트랄체는 감정체로 내가 가진 감정(생각, 행동)에 따라서 형성되어 인간을 감싸므로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결국은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인간의 정신이 발달하면 자아는 정신자아가 되고, 에테르체가 발달하면 생명정신이 된다. 그리고 육체 역시 발달해서 정신인간이 된다. 이렇게 발달해서 나아가는 바탕이 아스트랄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감정의 중요함을 깊이 느껴야 한다. 아스트랄체에 그런 감정이 쌓이면 인간의 힘으로는 헤어나올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 자신의 생각을, 감정, 그리고 의지까지 얼마나 다스려야 하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인류는 이런 정신을 배제해서 인간의 깨어있는 의식의 사고를 발전시키고자 하였지만, 인간의 사고로 물질을 이끌 수가 없다는 사실만 알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 우리는 인간의 정신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끌리고 있다. 만약 살인을 한 사람에게 살인을 하지말라고 현실세계의 의식인 생각으로 이야기를 해줘도 그 행동을 되돌릴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그 사람의 아스트랄체가 오랜 시간 그렇게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일은 정신세계의 속성을 파악해서 자신의 정신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뿐이다. 자신이 하는 현재 생각, 느낌, 의지가 오랜 시간 쌓여서 자신의 정신이 그렇게 형성, 그 정신으로 현재 자신의 삶을 산다는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정신의 속성에 맞게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할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