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J7gBHSZLXnQ
평화가 있기를~ 요한복음 20장 19절
감사드립니다. 60이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데 그 60평생을 사시면서 인생의 파란 만장한 일을 다 겪으셨습니다. 존재의 뿌리셨던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내야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고 아무리 나이들어도 아빠에게 아빠가 필요한데 존재의 뿌리셨던 부모님을 보내야하는 일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쉬운 일들이 아닙니다. 갑작스런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맞이하셨던 분도 있고 하루아침에 빚더니에 앉아 벌주대낮에 거리에 내몰리셨던 분도 계십니다. 황망하고 허탈하고 막막하고 절망스러웠던 삶의 시간들을 오롯이 버뎌내시고 온몸으로 살아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모든 순간들을 잘 이겨내시고 이렇게 사랑하는 이들과 더불어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서 함께 축하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드립니다. 키워주신 부모님, 살아오면서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주고 배움을 주고 가르침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 그리고 생명들 모든 온 우주의 기운에 감사드리고 싶은 날입니다. 잘 살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삶의 과정속에서도 우리를 살리시고 인도하시고 복되게 하시고 찬란한 생의 순간을 살게 하신 모든 분들과 하나님께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오늘입니다.
육십갑자 한바퀴를 돌았다는 것은 음양으로 이루어진 오행의 기운이 12지간의 모든 생명과 통하면서 한바퀴 돌았다는 것입니다. 음양으로 이루어진 오행은 동서남북중앙 사방으로 퍼지는 음양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나무 불 물 쇠 흙에 퍼지있는 모든 음양의 생명의 기운을 의미합니다. 형형색색 5방색 물결로 퍼져있는 음양의 우주의 기운을 의미합니다. 이 기운이 12지간 열두동물들 즉 이땅의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순환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라고 하는 우주안에서 유일한 존재가 천지간의 음양의 기운을 가지고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연결되고 교류하고 순환하고 한해씩 온전하게 통해서 한바퀴 돌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육십갑자 한바퀴 도신 분들은 우주의 모든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우주의 몸이 된 겁니다. 그래서 공자가 60이 이순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귀가 순해지는 때입니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듣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말을 해도 인성과 경륜이 쌓이고 사려와 판단이 성숙해서 세상의 어떤 존재가 말을 걸어와도 내안에 다 소화를 해서 그 말의 껍데기가 아니라 본 뜻을 알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더불어 능히 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남은 인생은 비로소 우주의 모든 생명과 통한 우주의 몸에 대한 자의식을 살아가시는 멋진 동녘인이 되시길 소망해 봅니다.
우주의 몸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분은 “나라고 하는 존재의 나됨이 모든 존재” 덕분임을 알기에 고마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서정홍 시인의 고백처럼 누군가 나 대신 들녘에서 밭을 갈고 있고 누군가 나 대신 옷을 만들고 누군가 나대신 집을 짓고 누군가 나대신 차를 만들고 좋은 책을 쓰고 아파트를 짓고 길을 닦고 쓰레기를 치워주고 재활용품을 수거해가고 누군가 나 대신 숨쉬며 살 수 있는 산소를 품어 주고 더러워진 물을 정화시키고 태양의 자외선을 차단해 주고 지구의 온도를 순환시켜주고 먹이가 되어주고 양식이 되어주고...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생명의 연결그물망 덕분임을 알기에 그래서 삶이 고맙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고맙고 걸을 수 있는 것도 고맙고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것도 고맙고 봄날에 공원에 돋아나는 새순을 보는 것도 고맙고 연노랑 곱게 꽃을 피우는 산수유 꽃을 보는 것도 고맙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도 고맙고 오늘 여기에 이렇게 살아서 함께 축제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고맙고, 그냥 삶의 모든 것들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한 에너지를 생명을 돌보는 일에 씁니다. 민수기 8장에 보면 레위 사람들이 회막 일을 할 때 50이 넘으면 회막의 직무를 다루는 일인 현직에서 물러나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그만두라고 하지 않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나지만 회막에서 회막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일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연륜과 경륜이 깊어진 사람의 자리입니다. 우주의 몸을 가지고 생명의 모든 그물망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를 살리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의 자리입니다.
여기서의 돕는 일은 보조역할과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보조역할은 그냥 시키는 걸 하는 겁니다. 어제 남선교회에서 음식을 준비하는데 누군가가 지휘봉을 잡고 요리를 하는데 요리를 하다가 재료가 떨어지면 재료를 사다줄 사람이 필요하고 잡채를 하려면 시금치를 다듬어주고 마늘을 빠주고 파를 다듬어 주고 하는 보조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돕는 역할은 일종의 이런 겁니다. 나이 들었으니까 뒤로 빠져서 시키는 일만 보조해라 그런 게 아니라 여기서는 전을 부치고 저기서는 잡채를 만들기 위해 당면을 끓이고 저기에서는 보쌈무김치를 만들고 있어요. 원활하게 잘 돌아가면 괜찮은데 어딘가에서 조금씩 부족하거나 구멍이 나는 일이 있는 거예요. 전을 부치고 있는데 온도가 너무 높고 당면을 끓이는데 너무 오래 끓이고 보쌈무김치를 버무리는 데 도대체가 맛이 안나는 거예요. 그럼 조용히 가서 불의 온도를 낮춰주고 다 된거 같은데 하면서 당면의 불을 꺼주고 보쌈무를 하나 먹어보고는 “아 액젓이 부족한 거같애”하면서 액젓을 조금 부어주는 거죠. 이런 역할을 아무나 못합니다. 초보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음식 보조가 절대할 수 없습니다. 음식 요리에 대한 많은 노하우와 경륜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평생 현직에서 일을 했다면 그 노하우를 가지고 새는 틈을 막아주고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고 구멍난 것을 메꾸어 주고 그래서 전체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순환되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구석구석에서 돕는 이가 되라는 것입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집니다. 잘 보시면 공동체 안에도 사람 사는 공동체이다 보니 갈등도 생기고 내맘 같지가 않고 본의 아니게 가시가 돋아나기도 하고 그래서 그 가시가 자기도 찌르고 남도 찌르고 그럴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공동체에서 생기는 일은 어느 공동체에든 다 생깁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감나라 배추나라 간섭하고 말만하는 사람만 생기면 그 공동체는 망합니다. 갈기갈기 찢어지고 상처받고 허물어집니다. 그런데 말없는 몸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모난 것 따뜻하게 다듬어주고 가시가 상처가 아닌 또다른 예술작품이 될 수있게 메워주고 채워주고 다듬어주고 풀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합니다. 그런 어른이 많은 공동체는 되는 공동체입니까 망하는 공동체입니까?
그래서 우주의 몸에 대한 자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고마운 마음으로 자신의 귀한 에너지를 구석구석에서 말없이 평생의 노하우를 가지고 이렇듯 생명을 돌보는 일에 힘씁니다. 골짜기가 메워지고 상처가 회복되고 모난 것이 부드럽게 되고 깊은 절망감을 딛고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 때 그들 덕에 우리가 또 살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마더테레사는 마지막 떠날 때 흰색 사리복과 낡은 가방 그리고 그 안에 묵주와 성경만 남겼다고 합니다. 아낌없이 다 주고 떠나셨다는 겁니다. 옛날 인디언들은 증여와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순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통해 생명을 살리는 뭔가의 에너지가 순환된다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귀한 직분을 맡을수록 연륜이 깊어질수록 증여의 사이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한다고 합니다.
그게 반드시 손에 만져지는 선물만이 아니라 그것이 따뜻한 시선일 수도 잇고 따뜻한 말일 수도 있고 편지 한 장일수도 있고 하나의 노래일 수도 있고 따뜻한 밥 한공기일 수도 있습니다. 나와 함께 인연을 맺었던 소중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우주의 몸을 살려가는 것 이것이 인생의 황혼길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충만한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려움과 낯선 시간들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 모두를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물과 소통을 이룬 우주의 몸으로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사랑하는 님들의 삶을 축복하며 인생의 황혼길에서 조차도 풍성한 고마움과 생명에 대한 돌봄과 아낌없는 주는 사랑으로 인생의 가장 충만한 삶의 시간들을 가꾸시길 빕니다. 때때로 두려움과 낯선 시간들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저와 여러분 모두를 지켜주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