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빠진 국민연금 논의
문병로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옵투스자산운용 대표
신규 회원의 납입금으로 기존 회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는 비즈니스를 폰지 시스템이라 부른다. 20세기 초 이런 비즈니스로 징역형을 받은 미국의 찰스 폰지 이름에서 유래했다. 신규 가입자가 점점 빠른 속도로 증가하지 않으면 수리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불법이다. 뒤에 들어오는 회원들이 덤터기를 쓸 수밖에 없다. 손보지 않으면 우리 연금이 이런 수리적 구조를 닮아가게 된다.
국민연금이 이대로 가면 33년 후에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 39년 후에는 적립금이 완전히 고갈된다. 지금의 20대 중반이 연금을 타기 시작할 시점이고, 30대 중반은 연금 수령 기간의 반을 넘지 못한 시점이다. 60년 후의 국민연금 예상 납입액은 337조원, 지급액은 1115조원이라 한다. 적립금이 없으니까 모자라는 778조원을 경제활동인구가 감당해야 한다. 세금과 자신을 위한 연금 이외의 추가 부담이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결국 경제활동인구에게 부담이 간다. 도대체 이게 어느 정도의 크기인가?
60년 후의 778조원은 정부 재정위원회에서 가정한 물가상승률 2%로 환산하면 현재 가치로 237조원이다. 올해 우리에게 237조원이 모자란 삶은 어떤 모양일까? 이것은 올해 정부 예산 429조원의 55%에 해당하고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14%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가 2800만명이니 1인당 850만원이다. 경제활동인구의 상당수가 세금을 안 내는 수준이니 벌이가 좀 있는 사람들은 이보다 꽤 큰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양도소득세를 제외한 작년 우리나라 소득세 총액 45조원의 5.3배나 된다. 재앙 같은 수치다. 앞으로 우리가 물가상승률보다 가파른 속도로 형편이 나아진다면 부담은 좀 줄어든다. 위원회에서 잡은 명목 경제성장률은 3.12%다. 이 속도로 형편이 나아진다면 60년 후의 778조원은 현재 123조원의 체감 크기를 갖는다. 이것은 올해 정부 예산의 29%에 해당한다. 소득세 총액보다 2.7배 크다. 이런 식으로 3년 반만 누적되면 1년 정부 예산만큼의 크기가 된다. 물가상승률 기준으로 환산한 것보다는 낫지만 지속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재앙 수준인데 이게 다가 아니다. 출산율은 2020년까지 1.24로 잡고 이후 1.38로 높아진다고 가정했는데 올해 출산율이 벌써 1 아래로 떨어졌다. 요즘 태어나는 인구는 지금의 30대와 20대가 연금을 탈 때 떠받칠 핵심 세대이니 상황은 더 나쁘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보전액도 더해진다.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도 만만치 않다. 다른 복지 수요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첩첩산중이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해마다 이만큼을 반복 부담하는 삶이 예약돼 있다. '공포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공포스럽다.
정치는 국가의 미래보다 자신의 4~5년이 더 중요한 직업이다. 이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간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니다. 당장 2년 후에 총선이 있고 4년 후에 대선이 있다. 이미 지난 20여 년간 후손들 돈을 강탈해서 유권자들의 표를 사왔다. 이제 상황은 "국가가 지급보장을 명문화하겠다" 이런 실현 불가능한 소리를 할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적립금이 고갈되는 시점은 39년 후라 했지만 아마도 더 빨리 고갈될 것이고, 30년쯤 후부터 심각한 재정적 상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지금 30대 중반이 연금을 타기 시작할 시점이다. 선택의 자유도 없이 당하는 불쌍한 세대다. 이걸 방치한다면 우리 세대는 뒤에 들어오는 회원들을 등쳐먹는 다단계 회사의 초기 회원들이나 마찬가지다. 수학 교육에 좀 더 생활수학적인 요소를 강화해야 할 것 같다.
보건복지부가 개선안을 발표했다가 일부 부정적 여론이 일자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과 삶의 질을 결정하는 일에는 국민의 동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발 물러섰다. 최대 피해자이자 우리 다음 세대인 30대와 20대가 여기서 말하는 국민에 포함되는가? 그들의 생각도 좀 들어보는 게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