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어'라는 비디오를 보았다.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아내가 심심풀이로 빌려온 건데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다. 영화내용으로 보아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인 게 분명한데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
정말로 유감이다 왜 이런 좋은 영화가 평가받지 못하는지, 장기 상영되지 않는지, 외국의 유수한 영화제에 출품되지 않는지 말이다. 아깝고 아까워라! 희미한 비디오의 작은 자막을 몇 번이나 되돌려서야 나는 박종원 감독을 겨우 확인했고 그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어졌다.
영화는 승합차에 고등학교 동창 부부가 처제 한 명과 더불어 산 속에서 송어 양식을 하는 친구네 집엘 찾아갔다가 겪게되는 2박 3일의 과정이야기다.
영화가 시작되면 큰 사건이 없을 때도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감독은 관객을 긴장 속으로 몰고 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릴러물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땀을 쥐게 하는 대목의 연속이다. 스토리 전개에 무리가 없으면서도 긴장을 유발시키는 것은 효과적으로 복선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며, 사냥꾼으로 인한 총, 사냥개, 도끼, 낮선 산골외지라고 하는 위험요소를 등장시키기 때문이다.
주연급 배우라고는 강수연 밖에 알 수가 없다. 강수연의 남편 역으로 설경구가 나오지만 박하사탕 영화가 나오기 전에 누가 설경구를 알기나 했었나? 이들은 강수연의 미혼 여동생과 함께 다섯이서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볼 겸 산골을 찾아 놀러간다. 송어양식을 하는 산 속의 친구는 찾아간 남자들과 고등학교 동창이자 강수연의 옛 애인이다. 대학 때 연극반 선후배 사이로 지냈지만 강수연의 현실적인 결혼 선택으로 마음의 상처를 한 때는 가졌을 성 싶다. 강수연은 마음 구석에 옛사랑으로 남아있기에 다시 와보고 싶었던 듯 하다. 송어양식을 찾아 도시를 피해 산 속으로 들어간 남자는 세속의 도시에서는 살기 힘든 송어만큼 예민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휴가는 첫날부터 사냥꾼들과 부딪히면서 전혀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외화 "베리 베드 씽"의 그것 처럼.. 거칠고 야성적인 그리고 강한 그 사냥꾼들 앞에, 옛 애인 앞에 자신의 여자들을 노출시키고 있는 도시의 약하고 약아빠진 방문객들은 쫓기듯이 불안해한다.
무엇인가를 찾아서 자신의 강함을 과시해야겠고 여자들을 안심시키며, 자신 또한 안심해야겠는데 만만치가 않다. 송어 양식장 바로 옆에서 나이 어린 열 댓 살 소년은 개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데, 남자들의 불안은 약한 고리인 이 지점에서 무리하게 폭발한다. 과도하게 소년을 치고 때리다 소년이 양어장 물위로 떠올라버리자 상황은 돌변한다.
서로 살인책임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비열한 변명과 배신을 서슴지 않는다. 강수연은 조금 전까지 옛 애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에게 부탁한다. 우리를 위해 살인혐의를 뒤집어써줄 것을. 그걸 거절하자 이젠 동생과의 관계를 강간으로 몰아붙여 그를 협박하면서 말이다.
결국 송어 양식을 하는 친구에게 소년살해에 대한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놓고 이들은 떠나려 하지만 죽은 줄 알았던 소년이 깨어나서 총을 들고 복수극을 벌이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뒤집어진 상황만큼 두 부부는 다시 한번 비열함과 이기, 허약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결국 "사람 무시하는 네깢것들 아무것도 아니다"는 소년의 절규를 듣지만 이들은 조금도 변화하지 못한다. 이만큼 이들의 내면은 이기와 비인간성으로 완강하게 덮여있다.
특히 대졸 출신 은행원 설경구의 비열함은 고졸 출신 (정육점을 거쳐서 된) 갈비집 주인에 비해서 그 정도가 훨씬 심각함을 보여준다. 입만 벌리면 당신을 사랑한다고 서로 확인하곤 하지만 그건 상대를 바람 못 피우게 할 작정으로 말로써나 막아보자는 짖 이거나, 자기가 몰래 피우는 바람을 숨기기 위한 연막에 불과했다는 것도 추정하게 만든다.
이런 사건을 연결해내는 감독의 솜씨는 놀랍다. 우리의 일상이 본질과는 무관한 엉뚱하고도 우연한 요소에 의해 많이 지배됨을, 그런 빈틈을 용납할 만큼 우리는 도덕적으로 전혀 허술하다는 것, 연대와 사랑으로 단단하게 묶여 있는 것 같은 관계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아주 쉽게 무너지는 것을, 그럼에도 자신의 부끄러운 구석은 다급하게 감추느라 허둥대는 모습들을 무리없이 잘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의 톨게이트를 빠져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다시 서울로 빨려 들어가는 톨게이트에 줄선 차량들을 롱 테이크로 잡는 걸로 끝이 난다. 서울 바깥에서의 짧은 기간 동안의 사건 만으로, 역설적으로 도시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얼마나 이중적이고 허약하며, 계산과 이기의 판단들로 가득차 있는가를 섬득하게 돌아보게 했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내부를 한 컷도 찍지 않았는데도.....
그래서 영화의 압권은 이들이 악몽의 2박 3일 휴가를 마치고 다시 도시의 일상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짧은 과정에 있다. 방금까지 격투를 벌리고, 총알을 피해서 목숨을 구걸했고 그 가운데 부끄럽기 그지없는 자신들을 완벽하게 드러냈기에, 정신이 나간 듯이 말없이 승합차에 몸을 싣고 나오지만, 비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누군가 "목말라, 오렌지 쥬스 좀 줘"하는 신호에 맞추어 그들은 슬슬 일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일 출근 앞에서 이들은 세련되게 웃고, 모든걸 가볍게 이야기하면서도 거짓을 적당하게 잘 숨긴다. 바로 도시의 일상 속으로 자신들을 빠르게 재편입 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듯이 유쾌하고 가볍게 이야기한다. 멀리에 '서울'이라고 쓰인 톨게이트 위의 전광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게 우리들의 사는 모습 아닌가? 끊임없이 일상을, 서울을 벗어나고 싶어하고, 주말이면 기를 쓰고 교외로 나가지만 다시 돌아온다. 내일 출근만큼은 하늘이 무너져도 맞추어야 하고, 그래서 막히고 막힌 길을 뚫고 서울이라는 홈에 도착할 때 보이는 줄선 차량들 그 속에 우리는 있다. 짧은 순간 생각한다. '지겨운 저 곳에 들어가기 싫다고'. 그 이유가 피곤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곳은 이기와 경쟁, 생존을 위한 배신과 비겁만이 판을 치는, 사랑 따위는 없는 개별화된 원소들의 싸움터이기 때문이며, 그러면서도 철저하게 교양, 질서 따위로 덮여있는 이중의 세계이기 때문임을 어쩌면 우리 자신은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곧장 빨려 들어간다.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