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낮 12시, 주문진 중학교 정문 앞 버스 정류장. 5월 말이긴 하지만 벌써 초여름 날씨처럼 덥다. 4월 초에 눈이 내리고 5월 말에 낮 30도가 넘는다니 강릉 날씨 참 스펙터클하다. 골목길 사이에서 미주가 걸어 나온다. 반갑게 눈인사를 건넨다. "안녕 영민아 ^^" "안녕 미주야 ^^"
미주가 오른손에 무언가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있다. 그 검은 봉지를 나에게 건넨다. "너 재수 공부한다고 제대로 못 먹잖아. 아버지도 몸 편찮으셔서 뱃일 안 나가시고. 이거 먹고 다 먹으면 카톡 줘. 해외배송 시키면 되니까."
미주가 건네준 검은 봉지 안에는 영양제 5~6개가 담겨있다. 나우푸드 트루 포커스, 트루 캄, 레시틴, 울트라 오메가, 베타 시토스테롤.. "공부하는 데 도움 된대. 집중 잘 된대. 트루 포커스, 트루 캄은 아침에 일어나면 공복에 꼭 먹고. 알았지?"
"알았어. 근데 미주, 너 뭐 다단계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지?"
"당연하지 바보야 ㅡ.ㅡ+"
"이제 핸드폰 가챠 게임은 하지 말고. 영민이, 너 고3 때 가챠 게임하느라 돈 버리고 수능시험도 다 망쳤잖아. 그때 그 얘기 듣고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난 수능 공부하느라 신경 못썼지. 넌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니까." 사실이며 팩트다.
"게임하려면 '문명'을 해봐. 문명은 죽기 전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게임이야. 그렇다고 올해 재수생활 동안은 하지 말고."
"알았어."
"문명하셨습니다"의 중독성 쩔기로 유명한 그 '문명'? 어쨌든 해봐야겠다. 난 중독성 있는 게임이 좋으니까. 대신 미주 말대로 원하는 대학에 붙으면.
5분 정도 기다리니 300번 버스가 정거장에 정차한다. 버스에 올라타기 전, 비어있는 맨 뒷좌석 보인다. 미주와 버스에 올라타 뒤까지 길게 걸어가 비어있는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는다. 평소 승객이 많기로 유명한 노선인데 평일 정오라 그런지 버스 안이 한적하다.
미주가 왼손을 내 오른손 위로 포갠다. 내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미주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다. 미주의 눈매와 입맵시도 초승달이 되어 미소 짓는다. 미주의 얼굴에 달보드레한 초승달이 3개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