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4:4-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쓴 편지입니다. 감옥 안에서 그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기뻐하라, 감사하라, 관용을 베풀라"라는 편지를 쓰게 된 동기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감옥 안에 갇혀있고, 빌립보 교인들은 그래도 감옥보다는 나은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감사를 모르고 기쁨도, 형제 자매에게 관용을 베풀 줄도 몰랐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우리들의 모습과 같지 않을까요? 매일마다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가족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반대로 생각합니다. 먹을 것이 "이런 것" 밖에 없고, 남들은 크고 좋은 집에 사는 데 겨우 이런 집에서 살고, 가족이라고는 서로 원수같이 싸우고 미워하는 가족밖에 없고, 매일마다 쑤시고 아픈 데가 많아서 일하러 나가는 것도 힘들고...... 뭐 대강 이렇게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죽지못해 억지로 살아가는 인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회심한 뒤의 삶을 연구해보면, 그의 삶 속에서 결코 감사하고 기뻐할 만한 일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만 그를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사람들, 그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같은 사람들의 핍박 속에서 가족도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푯대를 향해 전진한 삶이었습니다. 즉 전투적인 삶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감옥에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들을 향해 감사하고 기뻐하고 관용을 베풀며 살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관용"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πιεικ??(에피에이케이스)라는 말로 gentle(온화), patient(인내), moderation(적당함, 절제, 온건), suitable(적합한) equitable, fair(공정한), kindness(친절) 등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이 용어는 어떠한 고난과 핍박 또는 손해를 보더라도 쉽게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moderation) 인내심(patient)을 갖춘 온화(gentle)하면서 공정(equitable, fair)하고 적절한(suitable) 마음가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말은 잘못한 사람에 대해 너그럽게 대하라는 뜻이 강한 말로, 디모데전서 3:3과 디도서 3:2에서는 감독과 장로 즉 목회자와 교회의 리더의 성품 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17-18절에도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즉 "관용"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사야 11장2절을 보면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지혜는 바로 성령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지혜의 신이신 성령님과 동행할 때 나오는 열매가 바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 의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열매들은 세상 사람들이 감히 따라 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서 나타나는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이와 반대로 야고보서 3장 17절 앞부분에는 "길들일 수 없는 혀"와 또 "시기와 다툼, 자랑, 거짓, 저주, 온유하지 않음" 등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라는 말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서 나타나고 있는 말과 행동의 열매가 어떤 것인지 매 순간 점검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아니면 세상적이며 정욕적이며 마귀적인 언행을 하면서 살아가는 지 말입니다.
사도바울은 삶 속에서 만족할 줄 모르는 이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언급합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말은 주께서 언제 재림하실 지 모르므로 지금이라도 죽을 지 모르는 세상 속에서 아둥바둥 살지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넓은 마음과 온유함으로 용서하며 사랑과 긍휼을 베풀며 살라는 말입니다. 또 고난 속에서 주님을 맞을 생각을 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러한 기쁨을 마음에 품으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성도의 기쁨은 감히 세상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마음의 기쁨을 인간 관계에서 찾습니다. 사람들과 관계가 좋고 만사가 잘 돌아갈 때에는 마음이 기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일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기쁨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마음 속에 성령님이 주인이 되지 못하고 "내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사도바울은 "내 자아"가 나를 주관하지 말고 "성령"께서 나를 주관하시도록 하여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세상 속에서는 참된 기쁨을 찾을 수가 없으므로, 주 안에서 영원한 기쁨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는 말을 생각하고 있을 때에 우리는 내 생각을 버릴 수 있습니다. 내 지식과 내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할 때에 심판주이신 주님이 오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판단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이들에 대해 관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심판할 권세가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에 다른 이들을 넓은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한 주께서 가까왔다는 말은 이제 심판대 앞에 설 날이 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동안 내 모든 행위가 환히 드러날텐데, 만약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면 오늘 어떤 말과 행동을 하겠습니까? 오늘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없이 TV나 인터넷 앞에서 시간을 보낼 것입니까? 오늘도 여전히 내 성질을 죽이지 않고 하고싶은 말과 행동을 하며 살 것입니까? 오늘도 가족이나 친지나 이웃이 지옥에 가건말건 권면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겠습니까? 이제껏 살면서 단 한 명도 전도하지 못하고 주님 앞에 설 작정입니까? 여태껏 사람들에게 잘못한 것을 사과하지도 않고 주님 앞에 설 자신이 있습니까? 나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면서 주님의 용서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아마 그 동안 잘못했던 것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에서 돌아갈 것입니다. 그것들을 회개하느라 시간이 모자를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동안 잘못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거나 전화해서 용서를 비느라 정신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원수같이 나를 괴롭히던 사람을 볼 때 예전같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면 원수나 미움, 핍박, 학대, 시기, 거짓, 괴로움, 근심 등의 단어들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다는 생각을 하면 이렇게 마음이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주위에 있는 이들의 비난과 악한 행위로 인해 고통스럽습니까?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라는 말씀만 생각하면 그 고통도 이겨낼 힘이 생깁니다. 주께서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심판주로 임하셔서 선악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당한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도 없으며 항상 잔치하며 산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기록한 책이 주의 보좌 앞에 펼쳐져서 우리는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따라서 주님은 우리에게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나 혼자 마음이 넓다고 생각한다고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넓은 마음을 표현하고 드러내야만 다른 이들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잠 19:22) 사람들은 너그러우며 인자하며 베푸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그런 사람 곁에 있고싶어 합니다.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 19:6) "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 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잠 20:28) "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의와 영광을 얻느니라"(잠 21:21)
관용을 베풀어 사랑하고 용서하며 살라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웃을 주신 것입니다. 가족과 이웃에게 예수께서 목숨을 바쳐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것처럼 하라는 말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이 땅에 내려와 죽으신 그 긍휼하심처럼 우리도 가족과 이웃이 죄를 지을 때에 그들의 영혼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갖고 그들이 회개하도록 전심으로 기도하며 또한 그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사람은 결코 마음이 너그러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주께서 우리에게 "관용"을 베풀라고 하신 것은 천국백성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의 마음 상태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그 마음이 과연 천국과 지옥 어디에 해당하고 있는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로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를 하라" "하나님의 평강이 네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천국백성만이 행할 수 있는 것이며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크리스천들이 주님이 재림하지 않으실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정말 오늘 밤에 주님이 오신다면 너무 놀라서 당황할 크리스천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제발 오시지 말아주세요. 조금만 더 있다가 와 주세요. 아직 전혀 준비가 안 되어있거든요"라고 할 사람들의 부류에 당신도 속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듯이 후회하고 낙심할 시간에 다시 시작하는 사람이 참된 크리스천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할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기쁨" "관용" "감사의 기도" "평강"이라는 4가지 표현 중에 앞의 3가지는 우리 인간이 해야할 일이며, 나머지 한 가지 "평강"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즉 매일 매 순간 내가 가져야할 자세는 "주 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는 일"이며,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해 가져야 할 태도는 "관용"이며, 내가 하나님을 향해 해야 할 자세는 "모든 일에 믿음을 갖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와 간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주셔서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십니다.
그 동안의 삶을 되돌아 볼 때,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지혜를 받아 성령의 열매는 맺고 살았는 지 주의 말씀 앞에 내 삶을 비추어보며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너그러운 사람" "인자하며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 "은혜를 베풀기 좋아하는 사람" "성령충만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있다면, 그 사람은 잘 살고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분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내 힘으로도 내 의지로도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충만할 때에 성령의 도우심과 내 의지가 합쳐져서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이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내려온 선한 열매들을 맺기 위하여 지금부터 성령충만을 위해 매순간 열심히 기도하셔서 먼저 성령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http://www.holybible.or.kr/B_RHV/cgi/bibleftxt.php?VR=RHV&VL=44&CN=1&CV=99>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4, 5, 8)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혼자서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고 안간힘을 써도 되지 않았던 것이, 성령님과 동행하면 저절로 열매가 맺혀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간구해도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는 만큼의 기도 분량이 차지 않았기 때문이며, 아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더 많이 그리고 더 열심히 기도하면서 겸손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요.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9-13)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작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