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겨울로 기억이 된다. 군대생활을 하는 외삼촌이 휴가를 나왔다.
육이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외삼촌은 철모와 소총까지 휴대를 하고 집에 왔다. 외삼촌이 메고 온 따불백 속에 있는 옷과 침낭을 빨아서 빨랫줄에 널어놓았다. 이蝨가 굼실굼실 기어 나오고 군복 옷 솔기에는 서캐가 하얗게 쓸어 있었다. 어머니가 일일이 이를 잡아내는 것을 보았다. 내가 훈련을 받을 때 목욕은 한 달에 한번 정도, 세탁은 비누도 없이 물에 빨아서 널었다. 내무반 소독은 한 번도 하는 걸 못 봤다. 이런 곳에서 젊은이들이 집단생활을 하므로 몸에는 이가 많았고 내무반에는 빈대와 벼룩이 많았다. 사람을 무는 곤충이 많았으므로 이를 퇴치하려는 방법으로 DDT 주머니를 옷에 달고 다녔다. 위치는 양 겨드랑이에 2개와 두 다리 사이에 2개, 작은 주머니를 달아 DDT를 넣고 생활했다. 이러면 이가 덜 생기고 빈대나 벼룩에 덜 물린다. 그러다 더 강력한 살충제인 BHC가 나왔다. 지금은 DDT나 BHC는 인체에 해롭다고 사용을 하지 않는다.
벼룩이나 빈대는 행동이 민첩하다. 어둠 속에서 활동하므로 불을 켜면 숨어버려서 잡기가 힘들다. 가장 잡기 좋은 것은 몸에서 활동하는 동작이 느린 이蝨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 저녁 점호를 마치면 이를 잡는 시간을 주었다. 건장한 사내들은 침상에 일렬로 서서 이를 잡는다. 팬티에 있는 이를 잡을 때는 거시기를 내놓고 이를 잡았다. 요즘 같으면 성희롱이라고 야단이 나지만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먼저 이를 잡고 서캐를 잡는다. 이를 양손 엄지손톱으로 누르면 ‘딱’ 소리가 나는 게 여간 재미가 있는 게 아니다.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이 잡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한 마리 한 마리 잡으면서 통쾌함과 희열에 몰입한다. 몰입을 하면 훈련의 피곤함을 잊어버릴 수가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를 잡으면서 성격이 나쁜 교관을 이로 생각하면서 분풀이를 한 적이 있었다. 이 교관은 좀 특별하다. 훈련병을 침상 밑으로 들어가게 하는 기압을 주었다. 침상 밑에는 못이 삐죽삐죽 나와 있다, 침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다가 못에 찔린다. 훈련병 시절 다른 훈련은 젊음의 패기로 견딜 수 있으나 이런 기압은 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강자에게는 마음속으로 분노를 하지만 행동으로는 침목을 하다가 자신보다 약한 쪽을 택해서 분풀이를 한다. 훈련병에게는 모두 강자만 있지 약자는 없다. 훈련병에게 만만한 약자는 이뿐이다. 이를 잡으면서 희열을 느끼면서 몰입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든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환경에서 생활하는데 사람에 따라 곤충에 잘 물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저녁에 불침번을 서면 빈대, 벼룩, 이에 물린 전우들이 잠을 자면서 가려워서 몸을 긁고 뒤척인다. 훈련이 힘들므로 여간 물어도 잠에서 깨지를 않았다. 나는 몸에 열이 많아서 빈대, 벼룩, 이에 유달리 많이 물린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살펴보면 몸이 벌겋게 물려 있었다. 특히 모처럼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잠을 자면 근처에 있는 이는 새물내를 맡고 모여든다. 속옷을 세탁해서 빨랫줄에 널어놓으면 DDT를 넣는 주머니가 대롱대롱 매달려 바람에 흔들렸다. 이 모습을 상상하면 아련한 향수가 밀려오고 세월이 흘러 얼굴과 이름을 잊어버린 전우들이 그리워진다.
그때는 군대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긴지라 내남없이 머릿니와 몸에 이를 가지고 있고 방에는 벼룩이나 빈대가 많았다.
우리 어릴 때 남자아이는 머리카락을 박박 밀어버렸고 여자아이는 단발머리다.
남자아이는 머리카락을 박박 밀어버리므로 머릿니가 없었지만 여자아이는 머리가 길어 자주 감지 않으면 머릿니가 생긴다. 어머니는 누나의 머리를 감길 때 눈에 띄는 큰 이부터 잡아준다. 그런 다음 참빗으로 빗어 서캐를 잡아내고 머리를 감긴다. 머리를 감고 나서 다시 참빗으로 빗어 남아있는 이와 서캐를 잡아낸다.
어떤 집에서는 머리에 DDT나 BHC 살충제를 허옇게 뿌려주기도 했다. 지금은 인체에 유해하므로 사용을 하지 않는 종류지만 그 때는 약의 유해성도 몰랐고 돈푼깨나 있는 집에서 사용하는 귀한 약이었다. 또래 중에서 오지랖이 넓으면서 모성애가 강한 여자아이는 양지쪽에 앉아 친구 머리를 무릎에 뉘어 놓고 수다를 떨면서 머릿니를 잡아주는 풍경도 그리 낯설지가 않았다.
긴긴 겨울밤 자식들이 곤한 잠에 빠져 있을 때 이 시간만큼은 어머니에게 자유로운 시간이다. 어머니는 자는 내 옷을 벗긴다. 옷을 안 벗으려고 승강이를 하다가 볼기짝만 한대 얻어맞고 옷을 벗어준다. 다른 형제보다 내 몸에 이가 더 많았다. 어머니는 피가 달고 몸에 열이 많아서 이가 많이 낀다고 했다. 이불을 돌돌 말고 어머니를 쳐다보면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서 이를 잡는 삼매경에 푹 빠진다.
양손 엄지손톱으로 이를 하나하나 잡아 죽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떨쳐낸 얼굴이다. 팍팍한 삶과 많은 자식 뒷바라지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내가 본 어머니 얼굴 중에서 가장 차분하면서 평안한 얼굴이다. 어머니는 먹는 것도 부실한데 이놈들이 피를 다 빨아 먹었구나 하면서 혀까지 끌끌 차시면서 아들의 피를 빨아먹은 이를 손톱으로 사정없이 눌러 죽인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림에 호롱불이 가물거린다. 어머니의 차분하고 평안한 표정도 흔들린다. 문풍지 울림에 이불 속으로 파고들면서 어머니를 쳐다본다. 그만 잡고 옷을 돌려주길 바랐지만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잡은 곳을 몇 번이고 훑어보면서 한 마라라도 빠졌는지 확인한다. 옷을 빨리 달라고 투정을 부려 보고도 싶었다. 아들의 피를 빨아먹은 천하에 못쓸 이를 응징하는 어머니의 차분하고 평안한 얼굴을 보면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이윽고 어머니의 의식이 끝나고 옷을 입으라고 주신다.
이를 잡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얼굴이 평안해지면서 몰입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만 그렇게 보고 느꼈을까?
지금 어머니를 회상해 보면 어머니는 이 의식을 통해서 가난에 대해서 가부장적이 제도에 대해서 복수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롱불 밑에서 아들의 영양분을 빨아먹은 이를 잡는 어머니의 차분하고 평안한 얼굴이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