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의 가락
내가 시詩의 첫발을 떼게 된 것은 시조時調에서 비롯됐다. 나의 김천고교 시절 은사님이 시조시인 장정문 선생님이셨는데, 대학 합격 인사차 몇몇 친구들과 선생님 댁을 방문하였을 당시 출간된 첫 시조집 『두메꽃』을 축하 선물로 사인해서 주셨다. 저자로부터, 그것도 은사님으로부터 시집을 난생처음 받은 터라 얼마나 기뻤던지! 그날 밤 눈길을 미끄러지듯 달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시집을 읽고 또 읽고 새 벽닭 울 때까지 읽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어설픈 시조 형식의 시 한 편을 남겼다. 대학에 입학해서 경북대학보사에 투고를 했고, 그해 봄 날 등굣길에 교문 앞 신문 가판대에서 졸시 「진달래」를 반갑게 조우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 배웅하던 내 고향 봄길 언덕
꽃바람 샛바람 가슴에 가득 안고
못다 한 그리운 사연 진달래로 피었나
그래서인지 나의 시집 속에는 시조의 율격을 지닌 시가 옹이처럼 한두 편 박혀 있다. 자연 속의 소요逍遙와 묵상黙想이 낳은 두 번째 시집 『까치 낙관』 속의 졸시 「봄 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이종문 아형께서 “어, 이건 시조네! 사설시조!”라며 반색하고는 앞으로 시조 를 쓰라며 창작기금 천 원을 슬쩍 건네주기도 했다.
오늘도 서간체로 흘러가는 금호강 굽어보네
기다란 강줄기 구부렸다 폈다, 낯 붉어져 돌아와
만 년 동안 쌓인 눈 녹아 그대에게로 흐른다고
먼 마을 불빛 끌어다 물결 위에 편지를 쓰네
풀린 강물에 손등 적시자 비파소리 흘러나왔네
풀빛 밴 강둑길을 빈 수레 끌고 탈탈탈탈 걸어와
갈잎 스치는 모래톱 주저앉아 그대 기다릴 때
젖은 옷 말리는 사이, 강물 십 리나 달아났네
아니나 다를까,「봄 편지」는 각 연의 중장에 해당하는 둘째, 셋째 행의 음보가 다소 늘어났으나 너그럽게 보아 평시조의 변형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특히, 각 연의 마지막 행의 첫 음보가 불변의 자수율을 지닌 시조 종장의 첫 구 3음절과 공교롭게도 딱 일치되었던 것 이다.
어쩌면 내 몸속에 시조의 피가 무심중간에 흐르고 있다는 동류의 식은 여기서 멈춰지지 않는다. 여행과 산책을 통한 명상적 시 쓰기 로 올봄에 탄생된 네 번째 시집 『신의 잠꼬대』를 건네자마자, 이정환 아형께서는 즉석에서 「장미」 「먼지의 반란」 「섬」 「오실지」 「산문 山門」 등의 시편을 꼬집어 시조의 가락과 형식이 내장된 작품으로 거론하고는, 며칠 후 대구일보 ‘시향만리’ 코너에 낱낱이 소개해 주었 다. 개중의 시 「산문山門」 전문은 이러하다.
어제는 마음이 소란해서 산문에 들고
오늘은 춥고 배고파서 산문을 나섰다
내일은 적막 그리워 산문을 서성일까
시조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쓴 것인데도, 이토록 내 시에 곧잘 시조의 가락이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드러난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4음보 율격을 지닌 시조가 우리 민족의 정서와 가락을 담아내기에 가장 보편적 양식이라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운율의 상위 개념은 리듬rhythm으로, 리듬은 인간의 생리나 동작에서부터 모든 자연현상, 나아가 우주의 운행에 이르기까지 그 질서를 유지하는 원리로 작용하는 것이라 한다. 조선 후기에 나온,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 한 편을 보자.
창窓 내고쟈 창窓을 내고쟈 이내 가슴에 창窓을 내고쟈.
고모장지 셰살장지 들장지 열장지 암돌져귀 수돌져귀 배목걸새 크나 큰 쟝도리로 둑닥 바가 이내 가슴에 창窓을 내고쟈.
잇다감 하 답답할 제면 여다져 볼가 하노라.
화자는 작금의 코로나 사태와 같이 답답한 심사에 처해 있어 그 출구를 찾으려 한다. 여기서 ‘창’은 답답한 심정을 해소할 수 있는 매개체로서, 점층적 반복과 열거를 통하여 고달픈 세상살이를 해학적으로 가볍게 극복해 내려는 절박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렇게 화 자의 심리적 안정과 질서의 회복에는 엿가락처럼 늘어난 시조의 가 락과 주술적 반복이 한몫을 담당하고 있다. “율격은 현대 서정의 메 시아, 또는 존재의 역동하는 생명성이다”(서태수)라는 말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고도 남는다.
시조는 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오늘날까지 창작, 향유되고 있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정형시다. 물론, 시조는 시조창(음악)에서 출발하여 정 형시(문학)로 자리바꿈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조선 전기 신흥 사대부에서 조선 후기 서민에 이르기까지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의 다양한 형식을 띠면서 발전되어 왔다. 특히 “사설시조는 현대 자 유시의 모태가 됐으며, 나아가 오늘의 산문시를 낳게 한 밑그림과 같 았다”(박철희)고 한 것처럼, 평민 의식과 산문정신의 발로로 탄생되고 자리한 사설시조는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자유시와 산문시의 토양 이 되었다.
중국의 절구, 일본의 하이쿠, 서양의 소네트와 같이 나라별로 그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나 가락을 띤 대표적인 정형시가 있듯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정형시는 시조가 으뜸이다. 따라서 언젠가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우리 민족의 전통적 인 정서나 가락을 지닌 시조 장르에 돌아가야 마땅하다는 말에 기꺼 이 동의한다. 이러한 꿈과 희망은 문학인 모두가 시조 부흥 운동을 활발히 일으킬 때 학수고대하던 그날이 오지 않을까?
1997년 《시와시학》 신인상 등단. 시와시학상 동인상,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팔공산 문학의 집 〈다락헌〉 상주작가, 다락헌시인학교 운영. 시집 『비, 혹은 얼룩말』 『까치 낙관』 『총총난필 복사꽃』 『신의 잠꼬대』
첫댓글 가락이 흥겨우면 덩실 춤사위가 절로 나고
흐름이 애잔하면 마음도 따라 슬퍼진다.
우리네 민족의 전통적인 정서의 만남,
나는 그 만남이 좋다 누가 뭐래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