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회에서 문학은 정치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문인들이 지닌 일반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 혹은 권력자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을 일컬어 ‘어용(御用)’이러 규정하고, 어떤 대상에 어용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바람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조선시대까지의 우리 역사에서 문학은 정치와 분리되어 존재하기 어려웠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실상 조선시대까지의 문학 작품은 대부분 정치인에 의해서 창작되었고, 당시의 작가들은 대체로 정치인이자 문학 작가의 위치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흔히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아우른 표현인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한 존재로 여겼다. 그리고 그들의 목표는 과거를 통해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관직에 진출해서는 정치인으로서의 역할을 했고, 여하한 사정으로 관직에서 물러나면 여유롭게 문학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다. 물론 관직에 있을 때도 문학 작품을 창작하기도 했으니, 예컨대 정철의 가사 <관동별곡>은 강원도 관찰사로서 자신의 관할지인 금강산과 관동팔경을 답사하고 그 여정과 감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관직에서 물러났을 때 창작한 <사미인곡> 등의 작품도 결국 왕에 대한 그리움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의미를 짙게 포함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문학을 전공으로 삼을 때부터 이미 정치와 무관한 삶을 지향했’음을 밝히고 있지만, 고전문학 연구자로서 그 시대의 역사와 정치를 연구 대상으로 제외할 수는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21세기와는 다른 조선시대까지의 문학 풍토가 이미 정치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고전문학을 정치적 측면에서 고찰한 시론’으로서 이 책에 수록된 연구 성과들이 제출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고전문학 전공자로서 연구 대상이 위치한 시대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상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같은 처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이해된다.
이 책에는 고전문학과 정치와의 연관성을 논한 9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 고전문학’을 대상으로 그 정치적 성격을 다룬다고 했으나, 실제 설총의 <화왕계>를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모두 고전시가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파악된다. 연구의 성과를 개략하는 ‘한국 고전문학과 정치’라는 항목에서부터 조선 초기의 악장과 훈민가 등의 시가 작품을 논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저자가 고전시가 전공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특징이라고 하겠다.
이 책에는 향가 <풍요>와 고려시대의 고려가요 작품들과 예종의 <도이장가> 그리고 조선시대 악장과 관우사당을 위해 창작했던 정조와 고종 등 왕들의 작품들까지를 아우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문학가이자 정치인이었다는 점에서, 그 관심의 범위를 넓힌다면, '문학과 정치‘라는 관점에서 벗어나는 작품은 매우 드물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치밀한 논증을 바탕으로 한 수록 논문들의 성과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고 하겠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