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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좋아하는 시 혹은 시인에 대한 설문에서, 윤동주와 그의 시 <서시>는 항상 순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 유학 중이었던 시인은 해방을 앞두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최근까지 시인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 상 당시 일제가 행했던 생체실험의 대상자로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시를 쓰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시인에게 식민지 치하의 조국 현실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고, 결국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서시>를 비롯해 윤동주의 작품에는 유독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가 말엽으로 접어들면서 강제 징용 등의 조치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강압적으로 전쟁터에 끌려가야만 했다. 유학생의 신분으로 일본에서 생활했던 시인으로서는, 주변에서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당시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여겼던 것이리라. 하지만 윤동주가 자신의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결과가 바로 ‘부끄러움’이라는 시어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최근 일제 강점기를 찬양하면서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당당하게 소리를 높이는 일부 공직자들의 행태와 비교한다면, 당대의 현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던 시인의 인식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고 하겠다.
윤동주는 그동안 자신이 썼던 시 19편을 엮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엮으려고 했다. 그러나 일제의 검열을 우려한 주변 사람들의 만류로 출간 계획을 포기하고, 유학을 떠나면서 지인들에게 시집 원고를 맡겼다. 윤동주의 사후에 발간된 시집은 그 가운데 하나로, 시인이 후배인 정병욱에게 맡겼던 원고를 바탕으로 원래의 원고에 12편의 시를 덧붙여 1948년에 출간되었다. 전남 광양에는 당시 윤동주의 원고를 보존했던 정병욱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최근 정병욱 생가가 있는 광양의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작품에서 이름을 딴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윤동주 시인이 졸업 기념 77부 한정판 시집으로 남기고자 했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속의 유시 19편을 담은 필사노트’이다. 책의 왼쪽 면에는 윤동주의 작품이 인쇄되어 있고, 반대편은 밑줄만 그어진 페이지로 독자들이 작품을 직접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독자들은 작품을 직접 필사함으로써 윤동주 시인의 작품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나 역시 천천히 작품을 읽어가면서 윤동주의 시 세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으며, 시간이 나는 대로 정성스럽게 필사해 보기로 하겠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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