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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종과 영조의 시대를 다룬 15권의 내용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당파를 바꿔가면서 정책을 조율하던 숙종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숙종 치하에서 노론 가문이었던 왕후 민씨가 폐서인되면서, 남인의 지지를 받던 장희빈이 한때 왕후로 올랐던 것도 이러한 정국의 상황에서 초래되었던 사건이었다. 끝내 남인이 축출되면서 장희빈이 폐서인으로 사사되고 왕후 민씨가 복위되었지만, 당시 세자가 장희빈의 소생이라는 것이 이후 정국의 첨예한 문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3살에 책봉되어 30여년을 살벌한 정국의 상황을 세자의 위치에서 지켜봐야만 했고, 당시 노론이 장악했던 조정의 상황도 경종에게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재위에 오른 경종은 이후에도 아우인 연잉군(영조)에게 대리청정을 요구하는 노론의 압력을 직면했던 것이다.
경종의 재위 시기는 표면적으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라는 성격을 지니지만, 결국 후계자를 연잉군(영조)로 만들기 위한 노론들의 강압적인 압력이 지속되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론의 역모를 고발하는 이른바 ‘목호룡의 고변’으로 당시 정국의 주축이었던 노론 4대신이 사약을 받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고, 소론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리고 재위 4년 만에 경종이 세상을 뜨고, 이복 동생이었던 영조가 즉위하게 되었다. 소론 정권 하에서 노론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오른 영조는 역모로 몰려 죽은 노론 4대신의 신원을 해결하는 것이 선결해야할 과제로 남았다. 결국 노론의 의도가 관철되었으며, 형식적으로 영조는 당쟁을 지양하면서 탕평을 추구한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영조의 탕평책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으며, 저자의 지적처럼 ‘껍데기만 남은 탕평’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영조는 52년 동안 재위에 있었으며, 그의 괴팍한 성격으로 세자인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도세지의 비였던 혜경궁 홍씨가 남긴 <한중록>을 통해, 당시의 상황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경종과 영조 시대에 왕권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었던 일련의 사건을 두고, ‘권력은 부자나 형제 사이에도 나눌 수 없다’는 비정한 격언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비극을 안고서 세손의 자리에서 인고를 겪었던 정조의 즉위 이후, 규장각이나 왕실 호위부대를 통해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조의 정책이 이어졌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내용은 다음 권에서 자세히 언급될 수 있을 것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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