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 탕·탕·탕 외1편
윤인자
어쩌다 어부에게 잡힌 신안 뻘낙지
도마 위에서 발을 뻗어 흐물거린다
어머니가 멱살을 잡고 아래로 쭉 훑어
도마 위에 탕·탕·탕 칼 총질을 하면
여덟 개의 발이 순간에 수십 개로
잘리는데도 마지막 사투를 벌인다
칼이 내리칠 때마다 도륙되는 사지
꼬물거리며 기어이 바다로 가겠노라고
무작정 도마를 기어나가는 꼴이란
오래 진화한 본능이지만
칼등이 쓱 도마 위를 긁고 지나가면
어느새 상추 잎 깔린 접시위에 올려지고
잘린 상처에 참기름을 발라주고
마늘과 고추 얹으면 쓰라림의 아우성
화염지옥 같은
초고추장에서 한 번 더 벌겋게 구르며
살아 보겠다고 빨판을 쩍쩍 붙이며
용을 쓰는 모습이
젊은 한 때의 내 모습을 닮았다.
뉴스1번지
뭐가 그리 바쁜지 머리 손질할 시간이 없다
오늘은 기어코 머리 손질하며 폼 내는 일이다
미장원 광고 등이 뱅글뱅글 돌아가자마자
먼저 온 사람들이 많은데
더러는 할 일 없어 놀러 나온 백수 단골이다
그 옛날 마을 공동우물터처럼
오늘의 뉴스 일 번지 미장원은
언제나 따끈한 소식을 물어 온 여자가 있다
선거철이라 후보들 이야기가 메인이어서
은근슬쩍 표를 모으는 선거운동도 시작되는
텔레비전보다 신문보다 빠르게 이어지는 소식은
명퇴당한 남편이야기, 백수 자식이야기
이웃동네 혼사도 청첩장보다 먼저 나돈다
말수가 적은 미장원 원장의 가위손에서
수많은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잘려나가면
먼저 온 여자의 머리엔 벌써 알록달록 꽃이 피고
수다쟁이 아주머니들 틈에서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한 남자가 지루한 듯 하품을 하다가 기지개를 켠다
철 지난 잡지를 뒤적뒤적 거리던 아가씨들도
자리를 일어서며 일 좀 보고 이따 올게요
들은 듯 못 들은 듯 앉아 있다가 소식하나 물고 나간다.
윤인자 프로필
2011(리토피아)신인상 수상
시집 『에덴의 꿈』 『스토리가 있는섬 신안島』
『시가열리는 과수원』
(공저)『해당화 문학』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