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뚜기의 반격
장현숙
“아얏!”
메뚜기에게 물리다니! 몇 퍼센트의 확률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일까?
쌩하니 자전거 도로를 달리는데 길 위에 앉아있던 메뚜기란 놈이 어디 피할 데가 없어 내 옷소매 속으로 뛰어들었다. 지 놈도 꽤 놀랐나 보다. 자전거를 세우고 팔을 걷어붙이니 녀석이 좁은 옷소매에서 발버둥 치느라 뒷다리를 쭉 뻗고 있었다. 풀밭에 놓아주는데도 금방 폴짝 뛰지 못하는 녀석이 걱정스러웠다. 오늘 메뚜기가 내 옷소매에 들어온 것은 그동안 등한시했던 그들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신호인 것 같다.
40여 년 전 나의 초임지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산기슭과 한길 사이에 이십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자연과 사람이 어떻게 어우러져 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동네였다. 내가 살던 집은 안채는 노부부가 살고 기역자로 꺾어서 바깥채를 달아낸 구조였다. 그 바깥채가 나의 자치 방이자 첫 독립 공간이었다. 아침마다 할아버지가 대빗자루로 깔끔하게 쓸어놓은 마당에서 아기 무릎 높이만큼의 흙 단이 있었다. 흙 단 가운데 자리엔 어느 아낙네의 소원과 한이 쓰렸을 다듬잇돌이 디딤돌이 되어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디딤돌을 밟고 툇마루에 오를 때면 괜스레 두 발이 다소곳해졌다. 해가 짧은 겨울 퇴근해 오면 어둑어둑했다. 랜턴을 켜야 겨우 툇마루에 오를 수 있었다. 내가 그 집에 살면서 제일 잘 한 일은 마루 끝자리에 있는 나무 기둥에 전등을 단 것이었다. 그 적막했던 집에서는 불빛을 찾아 날아드는 날벌레마저 반가웠다. 전등 빛은 그들에게는 삶의 현장이고 생을 마감하는 곳이기도 했다. 비가 올 듯 하늘이 꾸루무리하던 어느 날, 툇마루 아래에서 ‘끄르륵끄륵’ 낯선 소리가 들리더니 그 소리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두꺼비! 책에서나 보았던 두꺼비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우둘투둘한 피부, 불만이 가득한 듯 뿌루퉁한 양 볼, 흉측스럽기 짝이 없었다. 훠이훠이 손을 내저었지만, 그 녀석은 툭 튀어나온 눈을 번들거리며 기어이 툇마루까지 슬금슬금 기어올랐다. 그렇게 몇 번 조우한 후 우린 꽤 친한 친구가 되었다. 녀석은 대단한 재주도 갖고 있었다. 풀쩍 뛰어 혀를 날름거리면 전깃불로 모여든 날벌레들이 그들의 생을 두꺼비의 아가리에서 마쳤다. 내 친구 두꺼비가 동면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 또 다른 친구가 생겼다.
흥부 집이 되었다. 제비가 처마 서까래에 둥지를 털더니 며칠 후에 제비 새끼들이 제제거렸다. 끄르륵끄륵 두꺼비와 제제거리는 제비 새끼들의 합창을 들으며 툇마루에서 한 줄 글이라도 읽으면 조선시대 사대부의 팔각정 부럽지 않았다.
"너희끼리만 그리 좋을쏘냐?"
느닷없이 도둑고양이도 나타났다. 어두운 밤 까만 털의 고양이가 휘리릭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오싹했다. 번들번들 광채가 나는 눈빛만 아니면 귀신이 지나갔나 싶을 만큼 섬뜩했다. 안채 할머니가 제사라도 지낸 날은, 고양이는 고수레 음식을 먹으려고 살금살금 기었다. ‘그래 너도 먹고살기 위해선 너의 날렵한 선천적 재간도 숨기고 겸손해지는구나.’ 싶어 애잔한 마음마저 들었다.
불빛을 찾아드는 수많은 날벌레 덕에 두꺼비는 내 주먹만큼 커졌다. 그날도 먹이를 향해 펄쩍 뛰어올랐다. 통통한 두꺼비가 혀를 날름거리는 순간 어디선가 쏜살같이 달려온 이가 있었으니 도둑고양이였다. 내 눈앞에서 순식간에 두꺼비가 사라졌다. 눈 깜박할 사이에 도둑고양이가 입가에 두꺼비의 다리를 덜렁거리며 담을 뛰어넘고 있었다. 나는 두 손을 입언저리에 대고 ‘악!’ 외마디 소리를 질러댔다. 며칠 후 마루 밑에 두꺼비가 후벼 파놓은 흙을 다독거리며 고양이를 저주했다. ‘도둑 같은 놈. 남의 생명을 훔치다니!’ 찔끔 눈물까지 흘렸다.
툇마루 아래 두꺼비 친구는 잃었지만, 처마 아래 제비 식구들이 있어서 그나마 위안하며 매일매일 그들을 지켜보았다. 갓 깨어난 어린 새끼들은 둥지 속에서 가냘픈 몸을 뉘고 있는지라 어미 새가 먹이를 가져오면 누운 채로 주둥이만 벌렸다. 어미 제비는 사선으로 날아와서 새끼들의 주둥이에 귀한 먹이를 넣어주고는 다시 창공으로 날아갔다. 두꺼비와의 이별이 차츰 잊혀지는가 싶었는데 툇마루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후 도둑고양이 녀석이 다시 발톱을 치켜세우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여름이 짙어갈 무렵 네댓 마리의 새끼 제비들도 이젠 제법 자라서 그들이 한꺼번에 움직이기라도 하면 둥지가 후들거렸다. 간혹 어설픈 날갯짓을 하는지 깃털이 푸르르 날리기도 했다. 다리에 힘이 생겨서 어미가 먹이를 가져오면 제 몸을 일으켜 세우곤 서로 먼저 먹겠다고 작은 주둥이를 둥지 밖으로 내밀었다. 어미 제비는 더 이상 사선 비행을 하지 않았다. 하향 포물선으로 비행하여 다시 오름 선을 타며 새끼들의 주둥이에 각도를 맞춰 먹이를 전달했다. 참으로 신기했다.
아! 그런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쓰라린다. 해질 녘 고운 저녁놀을 배경으로 하향 포물선을 그리던 어미 제비가 도둑고양이의 공습을 받고 말았다.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제비 깃털이 후드득 마당에 몇 개 떨어졌다. 그래도 어미가 물고 있던 먹이는 떨어지지 않은 것을 보니 새끼의 먹거리는 죽음 앞에서도 지켜야 할 그 무엇이었나 보다. 그날 밤새 둥지 둘레를 휘휘거리던 또 한 마리 제비가 있었고 나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퇴근하여 텅 빈 둥지를 보면서 제발 어설픈 날갯짓으로라도 아빠 제비를 따라 날아갔길 빌었다.
메뚜기에게 물린 팔뚝을 보면서 자연의 질서 앞에 좀 더 겸손해야겠다. 그들의 풀밭을 우리 인간의 욕심으로 자전거 도로를 내고 산을 가로질러 고속도로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도 모자라 인간의 편리를 위해 개발이니 도시화니 하면서 자연을 갉아먹지 않았는가? 오늘 내 자전거에 위협을 느낀 메뚜기가 바퀴 아래 주검으로 항변하지 않고 옷소매 속으로 뛰어든 것이 고맙다. 날벌레도 두꺼비도 제비도 심지어 도둑고양이도 자연의 섭리였으리라. 잔인할지라도 생존을 위한 그들의 몸부림보다 우리 인간이 우아하게 포장한 욕심은 더욱 진저리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길에 햇살 아래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납작하게 박제된 개구리가 있었다. 개구리의 주검을 거두어 풀밭으로 옮겨주고 조심스럽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끝
(한국서정문학 제21호 수필부문 신인문학상 당선작)
첫댓글 문장이 맛깔스러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