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정변의 역사 2008.1.15.화
선우휘와 태원선우씨
선우휘(鮮于煇,1922~1986)는 언론인 겸 소설가다. 본관은 선우(鮮于)다. 평북 정주(定州) 출생인 그는 1944년 경성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했다. 1946년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 활동하다가 군에 입대, 1959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예편 후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시작으로, 1962년과 1965년 2회에 걸쳐 조선일보 논설위원, 1964년과 1967년 역시 2회에 걸쳐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1971∼1980년 주필, 1980∼1986년 조선일보 논설고문을 지냈다.
선우휘는 수많은 시사논평을 발표하였고 1957년 문학예술지에 《불꽃》으로 당선하여 작가로서 인정받았다. 작품에는 단편 《화재(火災)》《망향(望鄕)》《싸릿골 신화》, 중편《깃발 없는 기수》《추적의 피날레》, 장편《아아 산하여》《성채(城砦)》《사도행전》《노다지》 등과 평론집에《현실과 지식인》 등이 있다.
소설 < 불꽃 >은 2백자 원고지 270장으로 된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3ㆍ1운동부터 6ㆍ25전쟁까지의 30여 년간에 걸친 역사적 격동기이다.
주인공 고현은 만세 시위에 앞장섰던 젊은이의 유복자로 태어나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손에 자라난다. 이 할아버지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현실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그런 종류의 관심에 대해 오히려 비판적이다.
고현이 소년시절에 할아버지의 혹을 조롱하는 아이들과 싸워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칭찬을 기대했으나 거꾸로 심한 야단을 맞는다. 이렇게 해서 그는 소심하고 방관적이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어머니의 권유로 대학에 가고, 학병으로 끌려갔다가 결국 탈주하여 해방된 고향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그는 새로운 현실을 보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공산당의 인민재판이었다. 여기서 고현은 마침내 지금까지의 수동적 자세를 버리고‘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하자’는 행동적 의지를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를 키운 것은 할아버지와 어머니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등 모든 회근을 선친의 묘 자리 탓이나, 팔자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 한국인이다. 어머니는 삶의 의의를 아들의 성장에 걸고 일요일마다 교회를 찾는다. 찬송가 가락에서 남편의 음성을 느끼고, 기도 속에서 남편의 모습을 그리면서 살아가는 독실한 신앙인이다.
▲ 선우씨의 시조는 선우정(鮮于靖)이다. 그러나 선우씨의 선대는 기자조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의 첫째 아들 기송이 2대 장혜왕으로 즉위하면서 아우 기중을 우산국에 봉하여 조선의 '선' 과 우산국의 '우'를 합하여 성씨를 선우씨라고 한 것이다.
기자조선의 마지막 왕인 애왕(41대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금마(현 익산)군에 마한을 세웠다. 마한 말기의 원왕에게 세 형제가 있었다. 선우량은 용강 오석산으로 들어가 '황용국'이란 나라를 세우고 선우씨의 대를 이었다. 한 명은 행주기씨, 한 명은 청주한씨가 되었다.
선우량의 10세손 선우병에 이르러 고구려에 나라를 빼앗기고 서민으로 살아 왔다. 그러나 문헌이 없어 고증을 하지 못하고 고려 문종 때 중서주서를 지낸 선우정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다.
고려 신종 때 서운관정을 거쳐 죽주부윤을 지낸 석(碩)과 그의 손자 당, 증손 수(守)가 유명하다. 부윤 수의 아들 적(迪)은 공민왕 때 소부시윤을 지내고 태천에 정착한다. 선우적은 아들 형제를 두었다. 장남 경(景)은 조선 태조 때 신호위중령별장을 지내고 태천파를 이루었다. 차남 현(賢)은 보승중랑장을 역임한 후 용천에 별거하여 용천파의 파조가 되었다. 이들 형제가 태원선우씨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조선조에 와서 가세를 일으켰던 협(浹)은 시(詩),서(書),역(易),춘추(春秋) 등으로 학명을 떨쳤다. 그는 용악산에 들어가 후학을 가르치며 심성이기(心性理氣)의 묘를 터득했다. 특히 그는 수차에 걸쳐 벼슬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인조 말에 비로소 사업(司業)이 되었다. 당대에 이름난 학자로 사림(士林)의 추앙을 받아 관서부자(關西夫子)로 일컬어졌다.
조선시대에 선우석(鮮于○, 1788 戊申生) : 문과(文科) 순조26년(1826) 별시2 병과(丙科), 선우헌(鮮于○, 1830 庚寅生) : 문과(文科) 고종10년(1873) 식년시 병과(丙科), 선우업(鮮于澲, 1821 辛巳生) : 문과(文科) 헌종12년(1846) 식년시 갑과(甲科), 선우승(鮮于昇, 1823 癸未生) : 문과(文科) 철종12년(1861) 식년시 병과(丙科), 선우주(鮮于疇, 1863 癸亥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22년(1885) 식년시 삼등(三等), 선우숙(鮮于淑, 1785 乙巳生) : 사마시(司馬試) 순조28년(1828) 식년시 이등(二等), 선우억(鮮于億, 1852 壬子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31년(1894) 식년시 삼등(三等), 선우렴(鮮于○, 1804 甲子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1년(1874) 증광시 일등(一等), 선우상(鮮于○, 1842 壬寅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0년(1873) 식년시 삼등(三等), 선우연(鮮于燃, 1868 戊辰生) : 사마시(司馬試) 고종19년(1882) 식년시 삼등(三等) 등 모두 1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사마시 7명이다.
조선시대에 모두 11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문과 4명, 사마시 7명이다. 태원선우씨는 1985년에는 총 734가구 2,929명, 2000년에는 총 1,100가구 3,54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충남 공주군 정안면, 사곡면, 유구면 일원, 평북 태천군 강동면 송북동, 경북 영풍군 풍기읍, 평북 창성군 대창면 학성동, 평남 대동군 부산면 수산리가 집성촌이다. 본관 태원(太原)은 충청북도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는 충주(忠州)의 옛 지명이다.
< 정복규 논설위원, 한국의 성씨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