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994년생 아들을 바라본 아버지의 시선”
<10년 전 2007년 3월은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한 때이다. 시간이 흘러 지금 아들은 군을 제대하고 어였한 성인이 되어 유학길에 올랐는데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자료와 함께 힘든 암스테르담 유학생활에 격려의 한 부분이라도 되었으면 해서 지난날 "아버지의 시선"을 게재한다.>
1.
2007년2월 - 서울 안산초등학교 졸업식
아들이 초등학교 졸업을 한다. 서대문 안산초등학교 전교회장이기에 졸업생 대표로 수상을 하고 아내는 학부모회장으로 축사를 낭독한다. 동대문에서 내가 사 준 검정색 어린이 양복을 입고 아들이 단상에 올랐다. 내빈으로 참석한 나는 아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마음으로 기원했다.
2007년 3월2일(금)
비가 내리는 아침, 입학식 날이라 아들을 차에 태우고 인창중학교에 갔다. 어제 아들이 고집을 부려 화를 냈더니 마음은 편치가 않았지만 건강하게 최선을 다하는 중학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후에 비가 계속 오는데도 서대문구장에서 축구한다고 전화가 오고, 3일 아침에는 7시 20분에 통학 봉고차를 타야 하는데 늦잠을 자서 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조금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는 꼭 하라고 당부를 하지만 소귀에 경 읽기이고 오늘 오후에 6학년 급우들을 중학교 교복차림으로 만난다면서 호기심어린 목소리만 높이고 있다.
5일 월요일, 아들은 기어이 7시 20분 학교 버스를 타지 못했다고 아파트 아래에서 전화가 온다. 학교까지 차를 태우고 갔지만 이런 정신으로 앞으로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오후에 학교에서 일찍 온 아들이 잠을 자고 있는데 걱정스런 마음이 생긴다. 어제 지각해서 미안한지 6일 오늘은 일찍 일어나 여유를 부리기에 함께 식사를 하면서 당부했다. (1.선생님께 인사 잘 하기 2.친구들하고 잘 지내기 3.안산초 졸업생 대표답게 의연하게 행동하기.) 노량진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오후 4시경 하교하는 중학생들 사이로 아들이 있을까 서대문 로터리 부근에서 서성거렸다.
7일 아파트 19층 베란다에서 등교하는 모습을 보니 간신히 차를 타고, 오후 6시에는 눈이 펑펑 내리는데 축구하러 간 아들이 또 태우러 오라기에 곧장 나섰다. 8일 중학교 1학년 2반 반장 선거에서 아들이 22표로 선출되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적극적으로 생활에 임하면 좋으니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10일은 가정학습 토요일이라서 아들, 딸과 정릉까지 차를 몰고 가서 북한산을 올랐다. 중턱에 있는 영취사 사찰에서 공사를 한다기에 산 입구에서 나와 아들은 고행의 마음으로 철근 한 개씩을 들고 올랐다. 대성문 정상을 오르고 성곽을 따라 걷다가 보국문으로 내려오는데 아직도 겨울 끝이라 바람이 쌩쌩 불고 비까지 내린다. 폭우가 아니라서 다행이지만 바로 내려와 정릉 매표소에서 따뜻한 어묵을 먹었다.
3월11일 아들이 교보문고에서 영어 추리소설(CSI)을 사왔다. 저녁에 식사를 마치고 있는데 다리가 튼실한 아들이 나의 허리를 잡더니 금방이라도 넘겨 버릴 듯한 힘을 자랑한다. 엊그제 유치원을 다녔는데 세월이 빠르다
12일 월요일 또 등교시간이 늦어 허둥대고 아내는 19층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있는 풍경이 벌어진다. 오후에는 영어 문법이 약하다기에 예일학원 젊은 선생을 불러 배우게 했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분위가 냉냉하다. 아들이 자기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고 했다며 아내는 내심 서운해 한다. 아들을 불러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이야기했다.
15일 어제 학교에서 축구를 해서 다리가 아프다고 한다. 초등학교 유소년 최우수선수까지 한 놈이 인창중학교 같은 운동장이 좁은 곳에서 어인일인가 의아하다.
16일 학교에서 교탁보(덮게)를 세탁한다고 가져 왔다. 반장이라 가져 왔지만 담임도 젊은 여선생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인데 명령과 복종만 내세우는 선생과 학생간 학교의 불공평한 비민주의 단면이다. 아내가 1만원 주고 새것으로 사 왔는데 아무튼 마음이 찜찜하다. 18일 아침에 장애인시설 봉사활동 간다는 아들이 누워만 있다. 또 엄마와 다툰 것인데 모자지간의 얼굴이 같은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다. 일요일 오후라서 안산 초교에 가서 축구를 함께하니 집에서와는 달리 좋아라 하고 힘이 넘치게 볼을 찬다.
19일 중학교 1학년 학력평가 결과가 나왔다. 국어92, 영어100, 수학95점 248명중 전교 45등이다. 4월말에 실시되는 중간고사에 더욱 열심히 하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20일 요즈음 집안 분위기는 학습량과 비례하고 특히 아내는 아들이 공부를 안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오후에 뻥튀기 한 봉지를 먹으면서 들어오는 아들에게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일렀다.
22일 어제 밤에 또 아내는 아들과 다투고 아침까지 꼼짝 안 한다. 아들이 모든 걸 상관하지 마랬다며 누워있고 아침식사도 아들이 혼자 해결하기로 했단다. 살아가면서 한 순간의 갈등이라고 위로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어나게 했다. 사춘기가 되어 그럴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아들은 누구보다도 효도를 잘 할 것이다. 모자지간이란 하늘이 만든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애틋한 관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23일 새벽까지 축구 시청하고 불까지 켜 놓고 거실에서 널부러져 잔다. 초등학교 4학년 반장인 딸은 오늘 1박2일로 간부수련회 가는데 소풍가는 날처럼 이것저것 간식을 많이도 준비한다. 저녁에 아내가 어렵게 말을 하는데 아들이 친구(종석,호성)들과 교보문고에 가서 책 몇 권을 그냥 가져 왔다고 한다. 10대의 장난이라지만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밤을 보냈다. 24일 아들 교육을 잘 시키지 못한 내 책임이 커서 교보문고에 직접 먼저 전화를 했다. 사과도 하고 책값도 지불하겠다고 하니 지점장이 나오는 월요일에 보자고 한다. 25일 아침에 어제 산 책을 가져 오라고 하여 이야기를 하니 친구한테 빌리고 돈을 주고 샀다고 한다. 교보 책은 계산 한 것과 안 한 것이 빨간 도장으로 구별이 되는데 거짓말까지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반성문을 쓰라고 하고 엉덩이 10대를 때렸다. 사랑하는 마음이었지만 내 마음은 편하지가 않다.
26일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서 여러가지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한다. 등교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집에서는 텔레비전보고 컴퓨터한다고 지적받고 학교수업까지 부담이니 당연 초등학교와 같을 수는 없다. 어떤 교육을 시켜야 하나 외국으로 유학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저녁에 아들과 교보에 가서 일주일 전 가져 온 책값 주고 새로운 책 몇 권도 더 사주었다. 더 바른 아들로 자라야 할 것이다. 27일 인창중 학부모 공개수업이라 음료수 사가지고 아내와 함께 갔다. 모두 엄마들인데 아빠는 달랑 나 혼자 뿐이라서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반장을 하고 있는 아들이 있어 우쭐함도 있었다. 담임은 가정을 맡고 있는 여교사다. 29일 딸이 기분이 안 좋은지 옛날에 맡긴 2만원 달라며 울상이고 투정이다. 딸이 학원가고 생각하니 내 성격을 닮아 꼼꼼하고 욕심도 많은데 선뜻 돈이라도 내주고 달랠 걸 미안한 생각이 든다.
30일 집을 일찍 나서 고향에 가면서 계룡산 갑사를 들렀다가 1시간 30분을 걸어 756미터 천진봉에 올랐다. 남서쪽으로 환하게 트인 충청남도 산하가 시원하다. 오후에 어머니를 뵙고 함께 산소에 갔다가 신태인 장에서 생선과 고기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큰 아들을 떠나 보낸 어머니의 회한과 슬픔이 아직도 표정없는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다.
31일 남쪽의 따뜻한 기운을 싣고 청주에 들렀다가 서울로 왔다. 3월이 가고 완연한 봄과 함께 내일은 화사한 4월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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