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학은 모든 질병의 상당부분이 아스트랄체에서 일어난 오류들이 에테르체로 옮겨진 뒤 에테르체를 통해 우회하면서 그 자체로 완전한 물질체의 조화를 파괴함으로써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비밀힉 개요, 2024, 161)."
필자는 위 문장을 읽으면서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등등. 이런 생각을 해서 그런 듯 얼마 후에 이런 상황을 마주했다. 만약 궁금해하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상황이다. 그래서 슈타이너는 정신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 쓴 책이나 강의(법문)를 들으라고 하는 것이다. 정신을 배제하지 말고 듣고 받아들이면, 또는 이해하면, 조금씩 정신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신을 미신이나 공상이라고 배제하는 것에 있다. 다음은 위 문장을 이해하게 된 상황이다.
필자는 가끔 안마 바우처에 가서 안마를 받는데, 거기에서 어떤 여자 분을 만났다. 그 여자분이 말을 하는데, 목소리 톤은 음계로 말하면 '솔' 정도로 높고, 소리의 강도도 보통 사람보다 세 배는 쎈듯 하다. 안마사 샘과 대화하면서 저렇게 소리 톤이 높고 강하면 몸의 에너지가 다 빠져 나간다고, 그래서 몸이 약해지고 병이 온다고 하니, 안마사 샘이 암환자라고 하였다. 역시 처음부터 암이 걸리는 것이 아니고, 저렇게 조금씩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암이 걸린다. 만약 암환자 분이 자신의 상황을 파악해서 소리의 강도를 낮추거나 톤도 음계 '미'이하로 낮추어서 말을 했다면, 몸의 에너지가 덜 빠져 나갔을 것이다, 묵언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인데, 문제는 스스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늘 명상,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야하게 보아 명상, 성찰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 그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 변화를 감지하면 스스로 에너지를 모울 수가 있다.
그래서 위 문장을 그 암환자에게 대입해 보았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아스트랄체가 이미 교란되어서, 에테르체의 흐름에 문제가 생겼고, 결과 물질체의 조화가 깨어졌을 것이다. 한편 생각해 보면,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는 태어날 때 그 흐름이 일정하게 안정된 흐름을 유지한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 저절로 잠을 자고, 음식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다. 정신요소는 다만 '사랑'을 주라고 말할 뿐 특별히 하는 행동은 없다. 그렇지만 잘 자라듯이 정신과학적 요소는 그렇게 안정되게 흐름을 유지하는데, 자라면서 이 흐름이 깨진다.
어떤 경우일까를 생각해 보면, 아스트랄체는 감정체이다. 이 감정체를 정신의 속성에 반하는 감정으로 억누르거나 다루었을 때이다. 즉 자신의 감정으로 자신의 정신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한 두번이 아니라 계속해서 왜곡시키면 아스트랄체가 교란된다. 인간의 감정은 파도처럼 출렁출렁하는 것이 정상이므로 어지간해서는 왜곡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정신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강하면 정상 흐름이 깨진다. 당연히 자신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첫째,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문제는 이런 자신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 어떤 경우에도 정신의 마지노선(불가의 오계)을 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경우가 많이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지노선을 넘으면 자신의 정신이 무너지고 몸에 병까지 들게 된다. 셋째, 나에게 부당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만히 보면 그 사람 자체의 문제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하는 나는 그 사람에게 그런 일을 당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살피면 억울한 마음이 조금씩 가신다. 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떄문이다. 즉 그 사람의 문제에 내가 억울해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내 문제로 받아들이니까 문제인데, 이를 살피지 못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필자도 이런 일을 경험했는데, 처음에는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가만히 그 동창을 살펴보니 그 동창이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그 동창의 삶을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파악하고 나니 분노가 가라앉고 억울함도 풀렸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인데,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나의 삶이 그렇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생각을 조심히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내 삶이 '왜 이런가'하고 억울해 하지 말고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신이 거창한 것을 요구하거나 지켜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지금 내가 하는 어떤 생각, 어떤 행동,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그러면 자신의 정신이 언제나 자신의 현실 삶을 지지해 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 암환자로 돌아와서 필자의 느낌을 말하면 다음과 같다. 아스트랄체가 깨어지고, 구멍이 뚫려서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 옛부터 아스트랄체를 "'별'을 의미하는 아스타의 형용사형, 성기체라고도 한다(초감각적 세계인식에 이르는 길, 2016, 14)." 이 문장에 나온 '아스타'를 백과사전에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아스트랄체는 별과 관련있는 단어로 달, 태양이 아닌 우주와 관련을 갖는다고 한다(슈타이너 주장). 그래서 우리 모두가 지닌 아스트랄체는 우주와 서로 교류를 한다. 그래야 정상적인 흐름이 유지되는데, 이 흐름이 깨지면 우주와 흐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종내는 에테르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스트랄체는 인간이 잠을 잘 때 에테르체와 물질체인 육체를 떠나서 태어나기 전 정신세계(우주)로 돌아가서 힘을 받아서 돌아온다고 한다(슈타이너 주장). 아스트랄체가 힘을 받는다는 것은 현실 삶에서 받은 여러 감정을 순화해서 사라지게 하거나 이기는 힘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아스트랄체가 힘을 받지 못하면, 일상생활에서 얻은 감정이 순화되거나 사라지지 않고 계속 괴롭힌다. 이것은 감정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느낌, 그 감정에서 놓여 나지 못하므로 피로가 풀리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그러면 에테르체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에테르체는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힘이다. 이 힘으로 내가 호흡을 하고 맥박이 뛰고 피가 순환을 한다. 또 이 힘은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힘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이 힘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에테르체가 아스트랄체의 지지를 받아서 수동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가 우주와 정상적으로 교류를 해서 힘을 받아야 에테르체가 정상적으로 흐른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아스트랄체가 정상적으로 흐르지 못하면, 에테르체는 자신의 본래의 흐름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탈하게 된다. 에테르체가 가진 생명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알 수가 있다. 감정이 쌓여있으면 그 감정이 계속 괴롭힐 것이고, 이 괴롭힘은 자신의 호흡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물질체인 육체도 어느 부분 구멍이 뜷린다. 이것이 병이다. 결국은 정신이 망가져서 육체의 병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의 정신적인 요소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면 육체의 병으로 드러나기 전에 예방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정신을 파악하지 못하니 육체에 병이 난 후에 알게 되고 고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자신의 정신에 관심을 갖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문제는 이러한 정신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 "정신은 나름대로 영혼을 관찰하고 정신세계 안에서 도달해야 할 목표를 영혼에 부여한다"는 사실이다(신지학, 2020, 76)." 요컨대 이렇게 되도록 내가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영혼을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을 활용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영혼에 끌려다닌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은 자신의 영혼을 활용한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하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가 않다. 정신의 속성을 파악해서 정신의 속성대로만 하면 된다.
정신의 속성은 '모든 존재가 나와 같은 존재다'이다. 그러므로 현실 삶에서 이런 정신의 속성을 망각하지만 않으면 된다. 에컨대 몹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도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행동으로 먼저 하지 말고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행동을 하더라도 정신의 속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도 이런 상황을 겪었는데 필자는 그냥 지켜보면서 정신의 속성에 어긋나지 않게 그냥 물러났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당시는 화가 나고 속상하지만 지나고 나면, 정신이 상처받지 않았다는 사실, 정신이 오히려 편안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우리 속담에 죄를 지은 사람은 발을 오그리고 자고, 용서한 사람은 발을 펴고 잔다'는 말이 여기에 해당되는 듯하다. 우리는 살면서 모르고 엄청난 죄를 짓는데, 알면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정신이 보이지 않으나 정신이 물질을 움직이고, 나의 삶도 움직인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슈타이너의 책은 굉장히 유용하다. 누구나 읽으면서 정신의 길에 들어설 수가 있다. 만약 그 암환자가 이런 정신의 원리를 알았다면, 암에 걸리기 전에 예방할 수도 있었다.
인간의 육체가 병이 드는 것은 인간이 물질세계에서의 삶이 끝나서 다시 정신세계로 들어가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신이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육체를 풀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은 다시 정신세계로 가서 다음 생에서 살아갈 준비를 한다는 것이 슈타이너의 주장이다. 이런 사실을 가만히 보면 모든 위대한 성인들이 거의 동일한 경험을 겪었고, 동일한 말씀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인의 말씀을 깊이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