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511)
2016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 강기화
큐브 / 강기화
면을 돌린다
네 개의 뿔을 가진 성난 눈초리
다가갈 수 없는 모서리
익숙하지 않은 경계
면을 돌린다
반듯하게 줄을 긋는
곧은 대답
전설처럼 등지고 있는 벽
위로받을 수 없는
네모의 의혹은 커지고
수상한 귀퉁이의 각은 증명한다
면을 돌린다
중앙을 공격한다
눈을 뜬다
놀이가 된 도형
일정한 방향으로
서로 맞춘다
다시 면을 돌린다
갇혔다가 풀려나는
매혹을 느끼며
활기차게 뛰어든다
비즈니스센터의
저녁 창문은
퍼즐의 공식
밀폐된 면과 면이
독기를 띠며
부활한다
[당선소감] "한 편의 시는 생명을 가진 치열한 실천"
늦은 나이로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고,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치열한 생활 속에서 다시 시를 쓰고 있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나에게 업이다.
20대는 시를 쓰는 것이 마냥 재미있었고 좋았다.
늦게 시작한 공부는 삶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30대에 삶과 글이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스스로를 꾸짖으며 방황하였다.
주위의 동기들과 문우들이 등단을 하고 책을 통해 소식을 전할 때,
안부를 전하지 못하고 전공을 숨겨야 하는 버릇이 생겼다.
삶 속에 시가 스며들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을 때, 시를 쓰지 못하였다.
한 편의 시는 생명을 가지고 활동하는 치열한 실천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팔순이 넘으신 어머니는,
혼자 시를 쓰는 철없는 막내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항상 지켜보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모두 존경하는 어머니의 덕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고향, 부산을 몇 년은 떠나 살기도 했다.
다시 찾은 고향은 시를 품으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길을 열어주신 부산일보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시가 생활 속에서 치열하게 스며들도록 노력하겠다.
쑥스러워 표현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권옥순 어머니, 당신의 딸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사랑합니다. 건강하세요.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동학의 세계로 이끌어 주셨던 교수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문우들과 동기들 고맙습니다.
흐르는 물과 같은 생명력으로 작품 속에서 보답하겠습니다.'
[심사평] '큐브'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참신한 표현 돋보여 '봄눈' 가락의 묘미, 회화성,연가류의 애틋함 조화
올해 접수된 시작품은 2천 편에 가까웠다.
지난해보다 배 가까이 많게 투고됐다.
시의 저변 확대라는 차원에서 긍정적이긴 하나 다르게 보면 올 한 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시로 표현하고 싶으리만큼
힘들고 스산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으로 바라보게 된다.
상당수의 시가 생활고에 젖은 내용이거나,
늙음과 관련된 쓸쓸한 감정을 많이 배출하고 있어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어두운 시대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 같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음을 밝힌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주름의 집',
'움파',
'물의 건축설계도',
'자연사박물관',
'큐브' 등이다.
먼저 '주름의 집'은
삶의 쓸쓸함을 거미의 집에 빗대어 탁월하게 형상화한 점은 돋보였으나
삶의 문제를 너무 탐미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제기되었다.
'움파'는
파의 움이 싹트는 자연적 현상의 의미를 잘 살려내었으나
표현의 신기성에 머물고 만 점이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다.
'물의 건축설계도'는
삶의 외로움을 풍부한 감성과 사물의 참신한 형상으로 표현해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으나 시대적 문제의식이 빈약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자연사박물관'은
뼈 이미지의 특성을 통해 삶의 쓸쓸한 이면을 독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점이
계속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붙잡았으나 너무 미학적으로 완성되어 있는 점이
신춘작품으로 뽑기에 주저케 하였다.
이에 비해 '큐브'는
작품 전체가 우리시대의 문제의식을 참신한 발상과 표현으로 드러내고 있고,
무엇보다 투고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으로서 가져야 할
전망에 대한 가능성이 풍부하다는 점이 장점으로 제기되었다.
그래서 심사위원들은 '큐브'를 당선작으로 정하였다.
당선자의 등단을 축하하며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한국시단의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란다.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듯 한 편 한 편 작품을 읽어나갔다.
소재가 새로워졌다는 점, 형식을 모르는 응모자가 거의 없다는 점,
제목이 구어체로 달려 있어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우리 생활과 가까운 노래라서 시조의 현실의식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 등이 선자를 기쁘게 했다.
그러나 특별한 개성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서정시로서 시조를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는
'벌초'
'어머니의 틀니'
'푸성귀 음표 피어나다'
'가을 한토막' 등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당선작으로 밀기엔 조금씩 약점이 있었다.
지나치게 예스럽다거나 참신성이 부족하다거나 혹은 상이 너무 평이하고
제목과 내용이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당선작으로 정한 '봄눈'은 달랐다.
응모한 4편이 두루 고를 뿐 아니라 넘치는 가락의 묘미와 회화성
그리고 연가류의 애틋함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시인의 안목과 능력은 우리 시조시단의 한 이채가 되리라 확신하며 대성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오정환·이우걸·김경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