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78)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② 특정 사람 관련 명칭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2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nhrck/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에 새 명칭 생기다
② 특정 사람 관련 명칭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일반적인 인칭 말고 특별한 상징성이나 암시성을 갖는 고유한 인칭 명사를 생각해 보자.
뭉크, 마그리트, 보들레르, 고흐, 쇼팽, 슈베르트, 모차르트, 랭보, 아인슈타인, 연암, 정약용, 이중섭 등.
이런 이름들은 그 자체로 막강한 내포성이 있기에 우리는 종종 특별한 고유명사라고 여기고
그 이름들을 끌어와 시를 쓴다.
또한 직접적인 이름은 아니지만 특별한 상태에 놓인 사람을 지칭하는 명사도
자주 활용되어서 시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애인, 이방인, 난민, 방관자, 주동자, 노마드, 아니키스트, 지하생활자 등이 바로 그런 명사에 해당한다.
이런 명칭으로 시를 쓸 때 두 가지가 우선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는 그 명칭을 끌어온 ‘나’의 특별한 정서 상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하고,
또 하나는 그 대상이 가진 상징성을 특별하게 인지하되 상징성 자체에 갇히지 않는 센스가 필요하다.
우선 왜 ‘나’가 그 명칭을 바라보고 사유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런 후 특별함을 품고 있는 명칭을 ‘나’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신선하게 맞물리게 해야 한다.
상징에 기댄 듯 기대지 않은 듯 명칭을 따와서 ‘나’의 정서적 맥락에 기여하도록 만들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상을 신선하게 적용하면 나만의 시가 탄생한다.
‘자학을 좋아하는 내 심장 속엔 고흐가 산다/ 자폐로 가득 찬 뒤틀린 방/
고흐의 잘린 귀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들레르가 어머니 무덤 옆에/ ‘악의 꽃’을 심는다’
‘처음부터 나는 나에 대한 방관자다’ ‘아나키스트처럼 떠도는 것이/
구름이나 새나 바람이 아니라/ 일요일 아침 십자가 아래에서/ 부활한 내 우울이다’와 같은 상상을 적용하면
시가 낯설게 되고 나만의 세계를 훨씬 다채롭게 펼칠 수 있게 된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은둔자
지하실이 나의 신앙인 것은 매우 적절하다
층간 소음은 생각을 제거하기에 충분하고
집주인의 도덕과 윤리는 흡착률이 좋다
본능적으로 우린 지하실에서 지하실을 잊는다
고상한 천장을 상상하며 창문을 쳐다보지 않는다
위층 여자를 나는 이불 삼아 덮는다
여자의 꿈이 내 안으로 스며들 때까지
불면 위에 불안을 포갠다
산다와 살다와 살아지다의 차이점을 알려고 할 필요 없다
그 모든 것은 악몽으로 치환되고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사물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암막 커턴을 치고 모든 소리 잠그지 않은 것에 대해
꿈속에서 후회한다
미세한 꿈틀거림만 있어도 독백은 나를 참견한다
어둠을 적당히 방치할 순 없는 건지
방치를 끝까지 사랑할 순 없는 건지
친애하는 운둔이여!
내일은 하루 종일 비가 되어 내리길
무작정 쏟아지길…
나를 완벽하게 은닉하기엔 손바닥만 한 창은 충분치 않고
나를 호출하기엔 신들은 한가롭지 않으니
쇠창살처럼 단호하게 아름답게 꽃혀주길…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의든 타의든 운둔을 경험한다.
아무리 개방적인 사람도, 활달한 사람도 혼자만의 시간에 침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필자는 그런 은둔의 극대화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누구나 흔하게 느끼는 은둔은 새로운 형상을 획득하기도 어렵고,
독자들에게 정서적 파장도 심어줄 수 없다.
그래서 은둔에 처한 화자의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택했다.
따라서 이 시의 장점은 현대인들의 자기 소외가 지극히 사적이고 예민한 방식으로 극대화될 수 있음을,
긴장감 넘치는 언술을 통해 보여준 점이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은둔자」에서 객관적 상관물은 방이다.
이 시에 나온 방은 지상에서 잘 발견되지 않는 지하에 있고 암막 커튼까지 처져 있다.
지하방은 처음부터 어두운데 거기에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있으니 방은 암실이나 다름없다.
암실은 자신을 더더욱 깊은 곳에 은닉하려는 태도를 반영하기에 충분한 공간이다.
“산다와 살다와 살아지다의 차이점을 알려고 할 필요 없”는
암울한 날들의 연속인 화자.
불면과 불안만을 품은 화자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기에 방은 최적화된 장소이다.
객관적 상관물이 지하방이니만큼 지하방에 관련된 단어와 이미지들을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건물, 손바닥만 한 창, 몇몇의 가재도구, 암막 커튼이 메모됐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의 장점이 자기 소외의 심리 상태와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상상은 많이 적용되지 않았다.
긴장감 넘치게 극적인 장면을 설정하고,
그 상황을 더욱더 부각하는 언술을 주로 배치했다.
은둔이 일상인 화자의 상황을 상상해서 거기에 맞는 시적 진술을 집요하게 나열해
공감의 폭을 넓히려고 한 것이다.
거기에 화자에겐 ‘지하실’이 신앙이나 다름없을 거야,
월세가 밀렸을 때 세입자를 위한 척하는 “집주인의 도덕과 윤리는 흡착률이 좋”았겠지,
불면을 안고 누우면 “위층 여자를” “이불 삼아 덮”는 듯한 기분이 들었겠지,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사물을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도 했을 거야,
맞아 하루 종일 비가 쏟아지면 아마 감옥 같았을 거야, 라는 추론적 상상을 덧붙였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 기재는 생략함:옮긴이)
· 김동균의 「우유를 따르는 사람」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이산율리의 「윤숙노」 (《사이펀》 2021년 여름호)
· 김제옥의 「경계인」 (《시향》 2020년 봄호)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서 제시하는 단어를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 뭉크, 마그리트, 보들레르, 고흐, 쇼팽, 슈베르트, 모차르트, 랭보, 아인슈타인, 연암,
정약용, 이중섭, 애인, 이방인, 난민, 방관자, 주동자, 노마드, 아니키스트, 지하생활자 등
(이밖에 나만의 시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면 다른 것을 바탕으로 써도 된다.
꼭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 속에 주로 활용되는 사물이나 현상을 가지고 창작을 하면 된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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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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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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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0.1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78)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② 특정 사람 관련 명칭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