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파괴적인 결과를 차단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내부의 고차적인 능력, 곧 사고력을 계발하는 일뿐이었다(인간과 지구의 발달, 2021, 44)."
이런 파괴적인 결과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 파괴적인 결과에는 개인과 사회 모두 해당되겠지만, 창조적이지 않은, 지혜롭지 못한 행동, 어리석은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행동을 차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사고력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어떻게 계발하느냐이다. 여기에서 정신의 속성이 등장한다. 정신은 보이지가 않아서 내가 어리석은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내가 어리석은지를 아는 것이다. 둘째, 나아가 지혜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전체를 파악하는 일, 이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이 물질의 본질을 깨닫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은 전체가 보인다. 결과 지혜로운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각각 다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이야기이다. 파괴적인 결과를 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고력, 정신을 계발해야 하는데, 이것이 결국은 깨달음인 것이다. 문제는 누구나 원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 방법이 질문이다.
《인간과 지구의 발달》은 "슈타이너가 '아카샤 크로닉'이란 제목으로 《루시퍼-그노시스지 》14-35호(1904-1908년)에 게재한 일련의 소론을 1907-1908년에 별책으로 출판한 책이다(위 책, 267)." '아카사 크로닉'이란 사람 존재가 탄생하는 역사인데, '그 안에는 우주의 지나간 모든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세계 과정의 덧없는 형태들과는 달리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것이 아카샤 본질이다'(비밀학 개요, 2024, 149). 이 책은 정신이 발달해 온 역사, 몇 만년동안의 역사로, 정신의 신전에 기록된 내용이다. 이를 슈타이너가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한 책인데, 당시 슈타이너도 이를 감안, 우리가 읽을 수 있게 최대로 알기 쉽게 쓸려고 노력했다고는 한다. 하지만 한 두번 읽어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기 어렵다.
슈타이너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읽다보면 정신이 조금씩 나아간다는 것을 스스로 감지한다는 사실이다. 또 주제가 다른 슈타이너 책 역시 읽다보면, 어느 순간 한 방향으로 모여서 정신의 전모가 드러난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필자는 이런 사실들이 슈타이너 책을 읽으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신이 보이지 않아서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정신이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슈타이너는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했겠지만, 그것이 모두 같은 '정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슈타이너가 정신을 각기 다른 언어로 표현한 때문이겠지만, 슈타이너가, 우리가 만나는 모든 부분(전체)을 정신이란 시각으로 표현한 때문일 것이다.
'아카샤 크로닉'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슈타이너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이해하는 정도가 커진다 싶더니, 갑자기 전모가 드러나는, 뭔가 눈앞이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슈타이너의 '상상', '영감', '직관'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상상, 영감, 직관은 인간의 정신기관이 발달한 정도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정신기간 발달의 단계이다. 발달순서는 상상, 영감, 직관순이다. 상상은 아스트랄체가 강렬한 호기심을 가지면, 에테르체가 만든 상, 이미지를 보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아스트랄체가 에테르체를 자극해야 가능하다.
영감은 영혼이 더 강렬한 에너지로 에테르체의 이미지를 지워야 떠오른다. 영혼의 모든 힘이 하나로 모아지면 아스트랄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드러난 아스트랄체의 느낌이 영감이다. 영혼의 힘이 하나로 모아진다는 것은 외부 대상으로 에너지가 전혀 빠져 나가지 않는 상태, 온전하게 내부에 집중하는 상태이다. 그러면 대상의 느낌, 영혼이 느끼는 대상의 느낌을 감지하게 되고, 이것이 영감인 것이다. 슈타이너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영감을 통해 우리는 고차적 세계에 있는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단계에 도달한다(비밀학 개요, 2024, 360)." 영혼으로 고차적 세계에 있는 존재들을 만나는 것, 그리고 그 관계를 인식한다. 그러므로 영감이란 대상의 아스트랄체를 파악함으로써 대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직관은 영감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영감에서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파악했으면, 이 상태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현시켜야 한다. 가만히 자신의 아스트랄체를 바라보는 상태에서 의지를 내는 것이다. 예컨대 물을 먹고 싶다고 하면, 자아가 팔을 먼저 뻗게 해야 한다. 우리는 자아의 이 지시를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자아가 먼저 팔을 뻗게 해야 팔이 물로 향한다. 자아의 등장이 파악되면 자신의 정신기관이 어느 정도 발달했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직관은 자아가 전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혼을 그 하는 일로 보아 세 가지로 분류한다. 감각혼, 오성혼, 의식혼이다. 직관은 의식혼의 작용이다. 의식혼이 진리를 파악하면, 자아가 이를 수용해서 우리가 그 진리, 즉 직관을 파악한다. 그러므로 의식혼의 역할이 중요하다. 의식혼은 진리를 탐구하는 존재이므로, 평소 진리의 감정인 진, 선, 미에 대한 감정을 지니고 있어야 의식혼의 역할이 가능하다. 이런 감정이 의식혼의 역할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다음은 슈타이너가 말하는 직관의 단계이다. "고차적 세계에 있는 존재들의 내적 본질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 한 정신적 존재를 직관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그 존재와 온전히 하나가 되고 그 존재의 내면과 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비밀학 개요, 360)." 사실 다른 존재를 파악할려면 그 존재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는 물질적 측면이 아니라 정신적 측면이므로 그렇다. 그래서 직관이 어려운데, 하지만 인간의 정신기관이 발달하면 가능하다.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그 예이다. 직관이기 떄문에 사람들의 문제가 해결되고 상처까지 치유되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이렇게 정신기관이 발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슈타이너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필자의 정신기관이 발달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샤 크로닉'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 흥미가 생겼기 떄문이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신기관이 발달해 나아가는구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필자 역시 상상과 영감, 그리고 직관을 가진 사람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 났거나, 지닌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기관의 발달일 뿐이다. 누구나 그런 능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리석은 행동을 헤아릴 수없이 많이 한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실도 정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되는데, 정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조차도 알기 어려운 것이다. 결론은 정신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 이래 아니 역사 이전에도 그렇다. 이것이 진리이기 떄문이다.
고차적 능력이란 인간 내부의 능력, 정신기관의 발달 결과이다. 누구든 자신의 정신기관을 발달시키지 않고서는 고차적 능력을 키울 수가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어리석은 행동은 나의 정신기관이 발달하지 못한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법륜스님은 이를 '담마',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만, 필자는 인간의 발달단계에서 인간의 정신기관이 온전하게 발달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히 아이들의 발달단계가 중요하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말해도, 현재 많은 아이들, 청소년, 성인할 것없이 발생하는 문제가 여기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인간의 발달단계에 맞는 교육인데, 이것이 안되는 이유가 교육하는 사람의 정신이 올바르게 발달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하는 사람 정신이 먼저 올바르게 발달해야 하는데, 이것이 인류의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인하여 어렵다는 것이다. 15세기 이전에는 정신이 희미하게나마 살아있어서, 그 존재가 그림자처럼으로라도 인식되었지만, 이제는 그 그림자마저도 사라진지가 제법 되었다.
19세기 초 슈타이너가 이런 정신을 말하다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심지어는 암살기도도 수차례 겪었다 그 어려움이 영향을 끼친 듯, 슈타이너는 64세 -지금으로 보면- 이른 나이에 지구를 떠났다. 그러니 누가 또 이 일을 하겠는가. 슈타이너 자서전에 수록된 그를 기리는 시이다.
"그렇게 그는 우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우리는 숨이 찼다. 그의 걸음을 따르느라, 아찔한 하늘로 함께 날아오르느라, 우리이 약함은 그의 비행을 방해했고 그의 발목에 납처럼 무겁게 매달렸다(슈타이너의 자서전, 2018, 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