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85)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⑨ 음악적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2
Daum카페 https://cafe.daum.net/duribong10/ 음악과 인생
⑨ 음악적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이 세상에 음악이 없다면 생은 단조롭고 평이함만을 유지할 것이다.
음악은 리듬이고 파동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몸과 정신과 감각이 리듬을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음악’이 된다.
시에 있어서도 음악적 요소를 통한 상상이 가능하다.
기발한 생각으로 예상치 못한 것이 리듬을 타게 만드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도 리듬을 탄다’ ‘○○도 음악이다’라고 했을 때 ‘○○’ 자리에 상상이 가미된 다양한 것을 넣어보는 것이다.
슬픔, 고독, 우울, 트라우마 등과 같은 관념어를 넣어볼 수도 있지만
구체성이 있는 사물어를 넣어보는 것이 훨씬 좋다.
철봉, 운동장, 의자, 책, 문, 방, 거실, 지구, 바람, 유리, 거울, 마당, 새, 나무, 흙,
버스, 봄, 여름, 가을, 겨울, 공장, 기계, 물고기, 고래, 항구, 서쪽 등을
계속 넣어 보다 보면 예상치 못한 느낌을 주는 구절을 만나게 된다.
특별한 음악을 지칭하는 용어도 좋은 상상의 재료가 된다.
예를 들어 레퀴엠이라는 장송곡을 가지고 상상을 한다면
‘나의 귀에만 자꾸 들리는 레퀴엠’을 상상할 수도 있고,
사람이 아닌 존재의 레퀴엠을 떠올릴 수도 있다.
‘수요일을 위한 레퀴엠’ ‘바람을 위한 레퀴엠’ ‘바닥을 위한 레퀴엠’ ‘포도를 위한 레퀴엠’
‘식탁을 위한 레퀴엠’ 등 다양한 레퀴엠을 상상을 통해 만들어보자.
물론 다른 음악인 야상곡이나 간주, 변주 등도 레퀴엠의 경우처럼 변용이 가능하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설총(雪塚)
이 고장에선 재고품처럼 눈이 쌓인다
쌓이고 쌓여 설총이 되는
눈의 또 다른 이름은 우울이다
너와 나는 역사적 사명을 띤 호모소모품스
복제의 연대기 안에서 기계와 동상이몽이 된다
컴퓨터를 머리에 달고 있는 과학자들이
음악의 빠르기에 따른 생산량의 변화를 보고했다
태양이 싫어 태양이 싫어
월드 스타 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가 관절을 꺾을 때마다
돈이 비처럼 쏟아진다는데
우리의 기본급은 항상
아다지오 몰토 아다지오 몰토*
정리가 필요한 계절
회생이 그리운 계절
가불이 무좀처럼 따라다니는
계절 내내
우린 비, 정, 규, 직이다
*대단히 느리게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문학세계사, 2010.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공장에서 저임금을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가 있다.
그 노동자 앞에 겨울이 다가왔다.
그 노동자는 얼마나 불안한 심리 상태에서 겨울을 날까?
그런 불안 심리를 냉철하게 바라보면서 창작한 시가 「설총(雪塚)」이다.
비정규직이 안 되어 본 사람은 재계약 기간이 다가올 때의 불안 심리를 모른다.
미리 다음 계약 여부를 알려주면 좋으련만 고용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끝까지 성실하게, 충직스럽게 계약직을 수행하게 만들려는 속셈이다.
이 시를 통해 필자는 그런 상황에 놓인 계약직 직원의 심리를 냉철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진지함만 있으면 시적 재미가 없기 때문에 비유적 상상력을 동원해
그들의 상황이 ‘눈 무덤’ 즉 ‘설총(雪塚)’(조어) 속 삶 같다는 상상을 했다.
거기에 음악 빠르기를 나타내는 ‘아다지오 몰토’를 차용해 임금 성장의 불평등을 암시했다.
이 표현도 시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객관적 상관물과 상관 현상으로 쓰인 것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눈 무덤’이다.
기계 앞에서 우울하게 반복되는 노동행위를 하는 것이 꼭 죽어있는 상태처럼 느껴져 ‘눈 무덤’에 비유했다.
그 정황과 관련된 단어는 재고품, 설총, 호모소모품스, 복제. 기계, 빠르기, 생산량, 기본급,
아다지오 몰토, 정리, 회생, 가불, 비정규직 등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기 극적으로 하기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차이는 엄청나다.
그것보다 더 많이 차이가 나는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다.
만약 A라는 사람이 5년 차 대기업 정규직이라면 연봉이 최소 5000만 원 이상이 될 것이고
B라는 사람이 중소기업 비정규직이라면 연봉이 2500만 원 미만일 것이다.
이들의 연봉은 근무 연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어마어마하게 차이가 나게 된다.
그런 비극적인 상황에서 비정규직은 재계약이 안 될 수도 있는 불안함까지 가지고 근무한다.
그런 극한상황을 필자는 상상적 체험을 통해 떠올렸다.
그래서 우울한 삶, 죽은 삶에 해당하는 ‘눈 무덤’ 속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이 실감 나게 펼쳐지게 된 것이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의 기재는 생략함-옮긴이)
· 엄세원의 「책등의 내재율」 (202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강희안의 「나탈리 망세*의 첼로」 (『나탈리 망세의 첼로』, 천년의 시작, 2008.)
· 홍소식의 「현(絃)」 (《시와 정신》 2020년 봄호)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서 제시하는 단어나 구절을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도 리듬을 탄다’, ‘○○도 음악이다’라고 했을 때
‘○○’ 자리에 상상이 가미된 다양한 단어를 넣어 보고 시를 쓰세요.
그리고 ‘○○을 위한 레퀴엠’ ‘○○을 위한 야상곡’ ‘○○을 위한 변주곡’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의 자리에 다양한 단어를 넣어보고 시를 써 보세요
(이 밖에 나만의 시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음악과 관련된 다른 제시어를 바탕으로 써도 된다.
꼭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 속에 주로 활용되는 사물이나 형상을 가지고 창작을 하면 된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
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1. 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85)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⑨ 음악적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