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86)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⑩ 목적이나 이유를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2
네이버블로그 http://blog.naver.com/yhaesan/ [인과응보의 목적(고통의 이유 )]
⑩ 목적이나 이유를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묘한 뉘앙스를 풍기는 목적이나 이유를 상상을 바탕으로 생각해보자.
빈집의 목적, 물고기의 이유, 돌의 목적, 벽의 목적, 유리의 목적, 낮의 목적, 꽃의 목적, 결말의 목적,
이름의 목적, 유령의 목적, 미라의 목적, 고독의 목적, 우울의 목적, 날씨의 목적,
토마토의 목적, 사과의 목적, 왼손의 목적, 11월의 목적, 백지의 목적, 수요일의 목적,
이별의 목적, 파산의 목적, 트라이앵글의 목적 등을 제목으로 붙이고,
나만의 시적 맥락이나 메시지를 향해서 시를 쓴다면 독특한 시가 탄생할 수 있다.
또한 ‘목적 없는 목적’, ‘이유 없는 이유’가 있듯이 상상을 통해
‘목적을 버린 4월’ ‘목적을 버린 과일’ ‘목적을 지운 노래’ ‘목적이 없는 광장’
‘아버지를 빠져나간 목적’ 등과 같은 재미있는 제목을 달고 시를 써도 좋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세 번째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우글거리는 피비린내를 시 속에 적고 있던 나는 누군가의 공포이거나 울음이거나 하는 것들을 복잡하게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는데,
두 번째 문장에서 아까부터 물고 할퀸 것은 싱싱하지 않은 핏덩어리
바닥을 추종하는 비굴이거나 퇴화된 통각이거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맹목이거나
무서운 발톱을 뒤집어쓰고 골목과 염증 사이를 활보하면서 시가 되길 거부하는 것들을 할퀴고만 있었다
시어들의 사생활이란 코끼리가 하늘 위를 난다거나 뱀이 백지처럼 조용하다는 허풍이 아닐 텐데
겨우 표정을 간수하고 있던 몽상과 환상을 조곤조곤 답습하면서 창문 너머 응급실을 내다보는 취향을 그만 멈춰야 할까
지금껏 한 번도 불이 꺼지지 않았던 응급실, 그 지독한 실패를 천사들은 뭐라고 부르고 있을까
궁금해하다가 엉성하게 상징이나 암시를 흉내 내고 있던 동공 하나를 보고 말았다. 쓰레기통에 고개를 처박고 있다가 나에게 들킨 내 눈동자들
지금 등 뒤에서 나를 클릭하던 신들은 알고 있을까, 소스라치게 놀란 문장의 안색을, 소멸을 뒤집어쓰려다 들켜버린 어설픈 마무리를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어느 날 필자는 시를 쓰는 ‘나’의 자의식에 대해 시를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윤동주가 우물을 통해, 이상이 거울을 통해 자신의 자의식을 투영시킨 것처럼
‘나’도 그러한 형태의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차에,
내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시를 쓰고 있는 ‘나’를 상상을 통해 내가 진단하는 방식이었다.
끊임없이 어둡고 암울한 내용(죽음 의식)의 시만 쓰고 있는 ‘나’를 내가 회의하는 방식.
그러한 상상으로 암울한 내용만 반복하는 ‘나’의 쓸모없는 자의식을 극명하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누구나 솔직하게 시 쓰는 자의 고뇌를 담은 자신 만의 메타시를 한 편 쓰길 원한다.
이 시의 장점은 바로 그런 심리를 반영해 솔직 담백한 목소리가 담긴 메타시를 창작한 점이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에서 개관적 상관물은 고양이이고 상관 현상은 시 쓰는 행위이다.
시에 등장하는 고양이는 문장 속 핏덩어리를 할퀴는 상관물이다.
그 고양이가 ‘나’의 극단적인 시 쓰기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밝힌 극단적인 시의 내용은
“바닥을 추종하는 비굴이거나 퇴화된 통각이거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맹목이거나”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창작 활동은 ‘나’의 자의식이 갖는 한계를 드러낸다.
화자는 “창문 너머 응급실을 내다보는 취향”으로 죽음 의식까지 갖는다.
그런데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진지한 시인 코스프레만 하고 있다.
그런 화자를 반성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고양이와 시 쓰기에 관한 단어나 구절을 메모했다.
우글거리는 피비리내, 공포, 울음, 두 번째 문장, 고양이, 싱싱하지 않은 핏덩어리, 바닥, 추종, 비굴,
퇴화된 통각, 맹목, 발톱, 골목, 염증, 시어들의 사생활, 허풍, 몽상, 환상, 응급실, 취향,
지독한 실패, 천사, 클릭, 신, 문장의 안색 들이 거기에 해당한 단어와 구절들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는 진지한 태도로 암울한 내용이나 죽음 의식을 반복적으로 자각 없이 써내려간
‘나’의 자의식을 반성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필자는 그 상황을 더욱 극명하게 표출하기 위해 화자가 응급실이 보이는 곳에서 시를 쓰게 만들었다.
죽음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응급실 앞에서 시를 쓰지만 실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그저 반복적으로 자극적인 암울과 죽음 의시만을 쓰는) 태도를 자가 진단하고 싶었던 것이다.
매일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체험하지만 실제로는 본질과 먼 시 쓰기를 반복하고 있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등장시킨 다른 장치는 ‘나’를 관찰하고 있는 또 다른 ‘나’의 눈동자이다.
이 눈동자를 통해 또 다른 ‘나’가 솔직 담백하게,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시 쓰는 ‘나’를 관찰하게 만들었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의 기록은 생략함-옮긴이)
· 최영랑의 「큐브의 목적」 (《문예바다》 2021년 여름호)
· 한성희의 「식탁의 목적」 (『푸른숲 우체국장』, 현대시학, 2015)
· 김가령의 「그네의 목적」 (『너에게 붙여준 꽃말은 미혹이었다』, 시인동네, 2021.)
<직접 써 보세요>
* 여기서 제시하는 단어나 구절을 바탕으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시를 한 편 창작하시오.
- 제시 단어: 빈집의 목적, 물고기의 목적, 벽의 목적, 유리의 목적, 낮의 목적, 꽃의 목적, 결말의 목적,
이름의 목적, 유령의 목적, 미라의 목적, 고독의 목적, 우울의 목적, 나리의 목적, 토마토의 목적,
사과의 목적, 왼손의 목적, 11월의 목적, 백지의 목적, 수요일의 목적, 목적을 버린 4월, 목적을 버린 과일,
목적을 지운 노래, 목적이 없는 광장 등
(이 밖에 나만의 시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음악과 관련된 다른 제시어를 바탕으로 써도 된다.
꼭 이 단어를 제목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시 속에 주로 활용되는 사물이나 형상을 가지고 창작을 하면 된다.)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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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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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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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1. 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86) 시 쓰기 상상 테마 2 - ⑩ 목적이나 이유를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