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389) 시 합평의 실제 2 - ① 장인무의 ‘박꽃’/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2
티스토리 http://rok9539.tistory.com/608/ 박꽃
① 장인무의 ‘박꽃’
<원작>
박꽃/ 장인무
간밤 하늘과 땅 사이에
몇 번이나 천둥이 오고 갔던가요
아무 것도 모르고 뒤척이다 잠든 새벽
빗길 속 서둘러 다녀간 손님
하얀 백지에 한 가닥씩 써 내려간 마지막 행은
한 바가지 눈물을 쏟아놓으셨네요
담장 밖에 초연히 서성이는 그대
애처로워 눈길을 뗄 수가 없네요
<합평작>
박꽃/ 장인무
간밤 하늘과 땅 사이에
몇 번이나 천둥이 오고 갔던가요
뒤척이다 잠든 새벽
빗길 속 서둘러 다녀간 손님
백지에 한 가닥씩 써 내려간 마지막 행은
한 바가지 눈물을 쏟아 놓으셨네요
담장 밖에서 서성이는 그대
눈길을 뗄 수가 없네요
<시작노트>
비가 지나간 아침,
청초하게 피어 있는 박꽃을
형상화하고 싶었어요.
잡다한 일들이
저로 하여금 시를 사랑하지 못하게 하네요.
그래도 최선을 다해 붙잡고 있습니다.
시는 제 삶의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합평노트>
제2연의 “아무것도 모르고”라는 구절을 삭제합니다.
그냥 “뒤척이다 잠든 새벽”이라고 곧바로 치고 들어갈 때 긴장감이 생성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누구를 치려고 할 때, “자, 치려고 하니까 준비해.”라고 말하지 않은 채
갑자기 주먹이 훅 들어가는 상황과 같습니다.
그랬을 때 준비되지 않은 독자는 당황하면서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제3연의 “하얀 백지”에서 “하얀”을 삭제합니다.
‘백지’ 자체가 ‘하얀 종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하얀’을 살리고 싶다면 “하얀 종이에 한 가닥씩 써 내려간”이라고 수정해도 됩니다.
마지막 연의 “초연히”와 “애처로워”라는 형용사도 삭제합니다.
“초연히” 없이 “담장 밖에서 서성이는 그대”라고만 형상화했을 때,
독자들은 ‘어떻게 서성이고 있을까’라는 상상력을 펼치게 됩니다.
“초연히”라고 한정한다면, 독자들의 상상의 폭을 제한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애처로워”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좋은 시입니다.
내가 잠든 새 비가 내렸고,
박꽃이 피어난 모습이 밀도 있는 서정의 옷을 입고 웃고 있습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1.15.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389) 시 합평의 실제 2 - ① 장인무의 ‘박꽃’/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