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으로 돌아갑시다 (2523) ///////
200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 심수향
중심 / 심수향
11월에도 꽃이 필 수 있다는 듯이
배추가 제 삶의 한창때를 건너고 있다
꽃을 피우고 싶어하는 푸른 이마에
금줄같은 머리띠 하나 묶어주려고
이참 저참 때를 보고 있는데
누군가 배추는 중심이 설 무렵
묶어주어야 한다고 귀뜸을 한다
배추도 중심이 서야 배추가 되나보다
속잎이 노랗게 안으로 모이고
햇살 넓은 잎들도 중심을 향해 서기 시작한다
바람이 짙어지는 강물보다 더 서늘해졌다
띠를 묶어주기에는 적기인 것 같아
결 재운 볏짚을 들고 밭에 올랐더니
힘 넘치는 이파리가 툭 툭 내 종아리를 친다
널따란 잎을 그러모아 지그시 안고
배추의 이마에 짚 띠를 조심스레 둘렀더니
종 모양 부도처럼 금새 단아해졌다
부드러운 짚 몇 가닥의 힘이 참 놀랍다
이제 배추는 노란 제 속을 꽉꽉 채우며
꽃과 또 다른 길을 걸어갈 것이다
추수 끝난 들녘에 종대로 서 있는 배추들
늦가을의 중심으로 탄탄하게 들어서고 있다
[당선소감] “이제는 시적 화두 하나 품어야겠습니다”
맑은 아침에 꿈은 분명 아닌데, 반가운 소식이 배달되었습니다.
잠시 소원하고 접어둔 마음 사이로, 그 소식이 기쁨으로 스밀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로소 실감나지 않는다는 말이 생각났고, 그 다음은 모두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은 시도 불교도 잘 모르는 상태이지만,
정일근 선생님께서 시도 불교도 구도의 과정이라고 자주 하시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겨두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그럴싸한 시적 화두 하나 품고 열심히 노력해 보아야겠습니다.
진정한 주먹 고수들은 주먹을 내 보이지 않고도 충분히 고수 노릇을 한다는데…
이 기회를 통해 도구를 보이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진정한 고수가 되도록
늘 연마하는 자세를 갖도록 해 보겠습니다.
먼 길을 돌아 여기 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우여곡절과 많은 시간을 흘렸습니다만,
느림보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분명 있었습니다.
빠르게 달려간 사람들이 놓친 작고 따뜻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크고 분명한 것보다 작고 낮은 것을 더욱 소중히 아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살아가고 싶습니다.
언제나 따뜻한 손으로 길을 열어 주시는 정일근 선생님,
맨 처음 도전 정신에 불을 댕겨준 김옥곤 선생님 그리고 울산 시인학교 문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말없이 후원해준 가족들에게 이 기쁨 돌리고 싶습니다.
아직은 무명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제게 나룻배 이야기를 해 주시는
울산 불교교육대학의 많은 스님들과 교수님들과 도반들께도 함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새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신 송수권 선생님과 불교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당선작, 불교코드 시적 형상화 적절”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모두 일곱명으로서 8편이었다.
‘농아부부의 빵집’(서상규)
‘고달사지에 가다’(손성조),
‘흔적’(정경호),
‘우화’(김애연),
‘도피안사 금개구리’(권지현),
‘중심’(심수향)
‘가을밤 짧은 편지, 평창강 섶다리’(홍준경)였다.
이중 ‘농아부부의 빵집’은
따뜻한 시선에 의한 제재를 결박하는 힘이 돋보였으나 합장,
묵언수행, 불립문자 등 금기시되는 시어에 문제점이 있었고,
‘고달사지에 가다’는 선취(禪趣)에 머물러 있어 시인의 현실적 아픔이 결여된 느낌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도피안사의 금개구리’나 ‘흔적’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겠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홍준경의 ‘가을밤 짧은 편지’와
‘평창강 섶다리’,
심수향의 ‘중심’,
김애연의 ‘우화’로 압축되었지만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의 무게로 보아
심수향의 ‘중심’을 당선작으로 내세웠다.
이는 불교코드를 시로 가져올 때는 본보기가 되는 작품이란 뜻도 있다.
선취의 아류가 아니라 창작에 있어서도 고오귀속(高悟歸俗)의 입전수수 정신이 필요한 때다.
“부도처럼 금새 편안해졌다”라는 상투어도 있지만
이는 오히려 겨울배추밭을 부도밭으로 연상하는 이미지 확장에 기여하므로
은유체계 완성에 있어서 별다른 흠결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끝으로 홍준경의 수준이 고른 시조작품들과 김애연의 작품들에도 애석함을 금치 못하며
다른 지면에 선보일 것을 당부한다.
심사위원 송수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