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의 에테르적인 부분에 부합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에테르체에 접근하는 것이지요(청소년을 위한 교육예술, 2023, 186)."
우리 모두는 통상 '상상', '영감', '직관'을 사전적으로 표현된 설명을 본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발달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컨대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고, '그 설명은 '이해 (?)'하겠어.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능력을 어떻게 기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종류 대부분을 정신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따라서 생각하면 우리는 정신으로 얻는 것을 대부분 얻지 못한다. 필자는 이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렇게 정신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정신기관이 발달하는 시기에 정신을 배제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약간 비약하면 우리 모두는 '정신'으로 태어났지만, 그 정신을 배제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물론 정신외에 육체와 영혼도 있다.
여기에서 슈타이너는 상상, 영감, 직관이 인간의 정신과학적 요소가 발달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상상은 에테르체가 만든 이미지, 상이고, 영감은 아스트랄체가 만든 느낌, 정서이다. 그리고 직관은 자아가 아스트랄체를 통해서 얻는 진리로, 요컨대 직관은 자아의 활동으로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이를 얻을 수가 있고 더불어 얻어야 한다. 문제는 정신이 보이지도 않으므로, 어떻게 얻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는데 있다. 정신을 얻는 방법이 질문이다.
슈타이너는 정신에 관한 책을 읽고 이해하면 정신을 얻는다고 한다. 꼭 어떤 체험을 하지 않고, 단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정신세계와 현실의 물질세계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떄문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현실세계에서 살지만, 정신세계에서의 작업도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삶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정신세계에서의 작업이 인간의 정신 과학적 요소의 작업이다. 우리가 그 작업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들어가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다음은 에테르체를 통하여 접근하는 방법이다. 그리스인들에게 불, 흙, 공기, 물에 관하여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고 한다. '불은 따뜻하고 건조한 것이다. 공기는 따뜻하고 촉촉한 것이다. 물에는 냉기와 습기가, 흙에는 냉기와 건조함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위 책, 187-188). 이런 생각이 면면히 내려오다가 15세기 이후 과학혁명을 계기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과학은 물, 흙, 불, 공기를 원소의 결합으로 설명하고, 이제 우리는 모두 이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세계는 70여가지 원소로 이루어졌으며, 인간도 그런 원소의 집합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간 삶 역시 그렇게 나아간다. 원소의 집합으로 되었기 떄문에, 인간이 50세가 되면 몸이 경화되고 당뇨병과 같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는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향해 가는 연령대가 되면, 현대 과학이 설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 내면에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위 책, 182)."
물, 흙, 불, 공기의 이런 감각이 에테르체가 육체를 장악할 때의 질적성격이다. 만약 내가 불에 대해서 따뜻하고 건조하다고 느낀다면, 에테르체가 육체를 통해서 드러내는 그 에테르체를 내가 파악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느끼면, 나는 나의 에테르체를 만나는 것이고, 그러면 나는 나의 에테르체를 올바르게 다룰 수가 있다. 에테르체를 올바르게 다루면, 나는 영감에 다가갈 수도 있고, 정신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즉 정신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에테르체의 작업을 내가 만나는 것이다.
다음은 이것을 알게 된 계기이다. 필자는 슈타이너 책을 읽으면서 영감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했다. 상상과 직관은 다소나마 이해(?)하겠는데, 영감은 감조차 잡지 못하였다. 그래서 '영감이 뭘까'하고 늘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둘레길을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바로 눈앞에 단풍이 든 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공기의 촉촉함과 불의 따뜻함, 그리고 흙의 건조함, 물의 촉촉함을 순간 느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영감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직관이다-. 에테르체의 존재 여부, 에테르체가 육체를 통해서 드러내는 그 현시를 필자가 만난 것이다. 그때 본 단풍나무는 색깔이 선명했고 찬란히 빛났다. 여기에서 아스트랄체의 감정이 더해지면, 영감이 되고 예술작품이 된다.
통상 인간은 '상'을 통해서 물질세계를 본다. 인간이 잠에서 깨는 순간 에테르체가 거울을 만들고, 자아는 그 거울을 통해서 물질세계를 보기 떄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에테르체를 통해서 만난 물질세계는 상의 세계가 아니라 본래의 모습이었다. 이것이 성철스님의 말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이다. 같은 산과 물이지만 상을 통해서 보는 산과 물이 아니고, 본래의 모습인 산과 물이다. 그러므로 이런 에테르체의 감각을 느끼면, 누구라도 영감의 세계로 나아갈 수가 있다. 반면 에테르체의 감각을 느끼지 못하면, 영감의 세계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백과사전을 보고 '영감'의 설명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은 다만 지식인 것이다. 여기에서 더 큰 문제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것을 원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원소의 세계는 물질세계이다. 인간이 물질세계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빠져나올 생각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신의 속성, 통상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지만, 만약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면, 정신은 그 모르는 것을 알도록 하는 것이, 또한 정신의 속성이다.
에테르체에 접근하면 또 알수있는 것은 뭘까? 슈타이너에 따르면, "우리가 듣게 되는 음은 에테르요소로 존재합니다(천체의 음악 인간의 신비, 2021, 149)." 즉 에테르체의 움직임이 곧 노래이다. 노래를 부르면서 에테체의 움직임을 느끼면, 노래를 하면서 에테르체를 움직일 수가 있다. 이때 자아가 공기를 받침대로 사용해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도 알수가 있다. 자신의 에테르체를 느끼면, 자아가 중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만약 노래를 부를 때 자아가 공기를 받침대로 사용해서 부르면, 몸을 사용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므로 공기를 휘저으면서 노래를 부를 수가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질을 통해서 정신세계로 들어가기는 어렵지만, 정신을 통해서, 정신기관을 통해서 들어가면 누구나 들어갈 수가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누구나 자신의 정신기관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므로 이 정신기관을 발달시기에 맞게 발달시키면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물질을 통해서 정신으로 들어가고자 수많은 교육이론과 방법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어떤 효과도 없었다는 것이 인류 역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러므로 그렇게 하지말고 인간의 정신기관을 발달시기에 맞게 발달시켜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안되는 이유는,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어른들의 정신기관이 올바르게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슈타이너에 따르면, 12, 13세기까지는 이런 정신이 그림자로나마 살아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혼과 영혼의 눈으로는 볼 수없는 띠로 연결되어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서 교육이 이루어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졌다. 그러므로 아이들의 정신기관이 올바르게 발달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렇게 가르쳤을 경우 문제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현직에서 퇴직할 무렵 겪은 이야기이다. 수업을 공개하기 위해서 동학년에서 같은 주제를 같은 내용으로 수업을 했다. 즉 선생님만 달랐지 수업내용과 형식이 똑같은 수업을한 것이다. 당시 필자는 그것이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는 몰랐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이 슈타이너 책에 나왔다. 그렇게 하면 안되는 이유는 교사의 창의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사의 영혼에서 수업 방법이 나와야 창의적이 된다. 결과 아이들의 영혼이 그 수업을 받아들여서 아이들 역시 창의적이 된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하더라도 교사에 따라서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수업이 될려면 교사에게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자유가 주어져도 정신이 물질로 변환되면서 정신이 다시 망가지고 만다. 이또한 교사의 정신이, 정신기관이 올바르게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신기관이 발달해야한다는 것이고, 그 발달 정도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부러워하지만 말고, 우선 자신의 정신기관을 발달시켜야 한다. 흔히 생각하기에 아스트랄체를 인식하지 못해서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스트랄체는 존재하고 있고 활발하게 움직인다. 예를 들면 필자가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못하는 일이 많았는데, 슈타이너 책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아이 저변에는 아스트랄체가 엄청난 기지와 이성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7-14세를 위하 교육예술, 2022, 107)." 겉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데, 아이들이 아스트랄체가 교사를 인지하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