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정신없이 일어나기는 했지만 긴 연휴에 지친 몸은 자꾸만 편한 자리를 찾으려고만 야단이다.
안 돼! 안 돼! 오늘까지만 버티면 돼~
오늘 초사흘이잖아! 그리고 절에도 가야 돼!
스스로를 달래가며 초사흘 준비를 한다. 준비라 할 것도 없이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국 한 그릇, 나물 세 가지 그리고 과일만은 풍성하게 차려놓고 일 년에 딱 한 번 정월 초사흘만을 두 손 모아 정성 드려 기도하시던 시어머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힘들다고 하기 싫다고 하기에는 죄스러워서 지금껏 우리 집만의 문화라고 생각하며 지내오고 있지만 해가 갈수록 힘들기만 하다.
한 참을 정신없이 준비하여 차려놓고 절에 갈 차비를 하느라고 또 정신이 없다.
6시 50분 첫 차를 놓치면 가기가 힘들어져서 꼭 그 차를 타야한다. 공양미 한 되박, 불경, 염주 등을 가방에 담고 온갖 무장을 한 채 집을 나섰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한데 가로등 희미한 불빛만이 길을 안내할 뿐 새벽 찬 기운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오늘도 나 혼자 전세 내어 타고 가려나!” 같이 가는 이가 있으면 좋으련만~
생각대로 기대는 무너지고 혼자 타고 가는 나는 성에 낀 유리창을 손으로 닦아가며 하얗게 서리 내린 농촌의 들판을 바라보니 나 어린 동심의 시절로 돌아가 편안 해 짐을 느낀다.
그러나 나 혼자 탔다고 서운해 하지도 않는 버스는 어느새 절 입구에 도착하고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인사 한 마디 남긴 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 길로 들어선다. 10여년을 넘도록 다녀도 물리지 않는 이 길은 눈이 오면 오는 대로, 꽃이 피면 핀대로, 신선한 공기와 고즈넉함이 혼자 거닐려도 심심치 않는 이 길은 나의 유일한 친구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9층 석탑 7층 석탑들이 눈에 들어오고 군데군데 늘어선 이웃집 아저씨 아줌마 같은 평안한 석불을 향해 두 손도 모아 합장도 해 본다.
대웅전에 들어서서 공양미를 올리고 관세음보살상에 3배하고 지장전을 거쳐 미륵전에서 해년마다 정월 초사흘 기도를 한다. 미륵보살상 앞에 향을 피우고 한 해 동안의 참회와 또 일 년의 화두를 정하여 고하고 미륵보살님을 쳐다보면 뭘 그리도 잘못 했는지 두 입술은 달라붙은 체 법정에 끌려 나온 죄인처럼 오직 하심으로 108염주 알을 한 알 한 알 돌리며 참회의 108배를 할 뿐~
오직 내 스스로 자신의 서 있는 자리를 깨달아야함을~
기도를 마치고 점심공양을 마친 뒤 큰 스님께 세배를 드리고 만 원짜리 한 장씩 세배 돈을 받았다.
스님께서는 차와 다과를 내 놓으시며 올 한 해의 법어를 내리셨다. 우리는 그 법어에 따라 스스로 가다듬으며 살기를 원하며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윷놀이에 스님 신도 할 것 없이 한데 어울러 한바탕 떠들고 웃고 나면 그래 이렇게 사는거야! 인생 별것 없어! 서로 어울러 사는거야!
돌아오는 길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흐르는데 그러나 아직도 깨달음 없이 중생의 길을 걷고만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또 한 번 더’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나는 데카르트의 명언“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를 몇 번이고 되뇌어본다.
첫댓글 까닭 없이도 끄떡없이 산다 -이병승(1966~ )
어제는 하루 종일
까닭 없이 죽고 싶었다
까닭 없이 세상이 지겨웠고
까닭 없이 오그라들었다
긴 잠을 자고 깬 오늘
까닭 없이 살고 싶어졌다
아무라도 안아주고 싶은
부드럽게 차오르는 마음
죽겠다고 제초제를 먹고
제 손으로 구급차를 부른 형,
지금은 싱싱한 야채 트럭 몰고
전국을 떠돌고
남편 미워 못살겠다는 누이는
영국까지 날아가
애 크는 재미로 산다며
가족사진을 보내오고
늙으면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면서도
고기반찬 없으면 삐지는 할머니
살고자 하는 것들은 대체로
까닭이 없다.
이 아침 네이버를 신문 훝어보듯하다가 문득 내 가슴 밑바닥을 훝고 지나가는 화두같은 시~^
내 마음에도 휙~스치고 갑니다.까닭 없이 살고 싶고 어느 때는 진짜 가닭 없이 **싶어집니다.이 시가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내 마음이 그렇습니다.눈가에 괜스레 촉촉한 무언가도 어리구요.경희 씨 참 좋아요..내 마음도 이해해 줄 것도 같구요..잉꼬님의 글을 읽으며 깊은 신심을 엿봅니다.우리 어머니도 초사흘에 절에 가십니다.나의 남편도 신앙이 불교라 무각사,증심사서 무언가 많이 날아듭니다.초파일에 등을 다는데 "내 것도 달어?"묻다가 식구들 다 웃었습니다.남편 덕분에 예전 전국 사찰 많이 다녔지요.좋습니다.
정초!!! 절에 다니러 가시는 모습이 영상인 듯 눈에 선합니다.
왠지 조만간 시간을 내어 그곳을 꼭 다녀와야만 할 것 같네요.
다시 한번 마음으로 신심을 다져봅니다.
워매, 내가 젤 좋아하는 운주사를 그렇게 나니는 여인네가 있었다니,
그것도 시어머니 그리며 정성을 바치는 님은 정말 효부요이.
언제 같이 한번 갑시다. 내가 기사할게요.
어떻게 운주사인줄 알아 부렸어유~ 아무튼 반가워요. 기회가 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