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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원작과 영화 비교·분석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문학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사랑 이야기로 남녀주인공의 사랑과 이별, 그리움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여주인공 아오이의 입장에서 서술된 'Rosso' 편과 남주인공 쥰세이의 사정을 담은 ‘Blu', 각 두 편으로 나누어진 릴레이 소설로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베스트셀러로 인기를 얻은 이 소설은 2003년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었다. 아무래도 원작을 영화화했으므로 멜로라는 전체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으나 사건이나 등장인물들의 삭제·추가·수정 등을 통하여 작은 소품이 상징하는 의미에서부터 크게는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주제까지도 영화라는 장르에 맞춰 변형되었다. 이는 원작인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의 차이를 통해 색다른 깊이와 해석의 기회를 선사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영화화되면서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변화는 바로 ‘주제’의 단순화이다.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두 가지였다. 표면적으로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되어있지만 그 내면에는 ‘성장’ 이라는 또 하나의 주제가 깔려 있다.
원작과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그들은 이별의 진통을 겪으며 과거에 머물러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영화는 두 사람의 사랑과 멜로로 주제를 압축시켰다. 그 근거로 먼저 작품의 결말의 차이를 들 수 있겠다. 쥰세이와 아오이는 서른 살이 되는 해에 피렌체 두오모에서 재회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다시 사랑을 시작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음을, 각자의 시간 속에서 서로 변화했음을 깨닫고 헤어진다. 여기까지는 같은 전개다. 그러나 그 후는 원작과 영화가 다르게 장식하고 있는데 소설에서는 쥰세이가 뒤늦게서야 아오이가 탄 국제특급기차를 쫓아가는 장면으로 막을 내리는 반면 영화에서는 쥰세이와 아오이가 기차역에서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은 그들의 ‘만남’을 온전히 허락하지 않는다. 아오이를 쫓은 쥰세이가 다시 아오이를 만나게 될지 아니면 끝내 그녀를 놓칠지 소설 속에서는 함구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지만 주인공들의 끝나지 않은 성장통을 암시한다. 만약 두 사람이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해피엔딩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갈등할 것이며 분열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거에 함몰된 그들은 어떻게든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로 나아간다. 반면 영화는 둘의 만남으로 결말을 명확히 드러냄으로써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시켰다. 서로를 보며 웃는 장면으로 막이 내리면 관객은 ‘아, 다시 사랑을 시작하겠군.’ 이라는 생각을 갖고 영화관을 나선다. 그들이 앞으로 겪을 성장통에 대한 상상, 여운보다는 한 편의 사랑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쥰세이와 아오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귀국자녀라는 점이다. 각자 뉴욕과 밀라노에서 자란 그들에게 도쿄는 사랑과 이별의 의미를 떠나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공간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불완전한 가족사를 평생을 안고 살아간다. 쥰세이는 어머니의 자살로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아버지를 미워하고 아오이는 평생을 밀라노에 정붙이지 어머니를 미워한다. (아오이의 ‘정착’ 하고 싶어 하는 심리는 아마 이러한 정체성의 모호함과 어머니의 방황을 지켜보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이는 둘 사이의 멜로를 배제하고 봤을 때 도 그들이 각자의 인생을 괴로워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성장 소설의 근거가 된다. 신기한 점은 그들의 파트너였던 마빈과 메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마빈도 쥰세이와 비슷하게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었으며 메미 또한 이탈리아 새아버지와의 관계에 놓여있다.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고민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쥰세이와 아버지의 갈등 같은. 또 ‘엄마’ 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에 대한 상징적 의미는 뒤에서 살펴보겠다. 아무튼 이렇게 소설 속에서 두 주인공의 개인적인 아픔과 성장을 다양하고 깊이 다루는 반면 영화는 쥰세이와 아버지의 갈등 수준에서 그치고 말았다. 여기서 원작 ‘냉정과 열정 사이’ 같이 내면적 · 심리적 진술이 많은 소설을 영화화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특히 표정과 몸짓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배우에게 이는 굉장한 부담이 될 것이다. 각색, 연출, 연기, 이 삼박자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해도 원작의 깊이를 제대로 살릴 수 없을 가능성이 짙다. ‘반지의 제왕’을 보자. 톨킨이 쓴 소설에서는 사건과 에피소드의 연속이다. 따라서 사건에 대한 묘사가 주류를 이룬다. 판타지 소설인 만큼 인물들의 심리를 깊이 탐색하기보다는 재미와 흥미를 주기 위해 사건 전개와 묘사에 힘을 쏟는데 이는 영상화시키기에 전자보다 훨씬 적절하다.
소설 속에서는 두 주인공을 둘러싼 다양한 주변인물들이 등장한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성장 소설이라고 불리는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인물의 등장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나아간다. 소설이 중심인물은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를 구축해놓은 반면 영화 속 주변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주변인물이 갖는 영향력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가장 큰 예로 다카시를 들 수 있다. 소설 속 다카시는 쥰세이와 아오이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캐릭터다. 두 사람의 첫 만남과 재회를 이끌 뿐더러 아오이가 숨기고 있던 비밀을 쥰세이에게 밝히는 인물이다. 반면 영화에서는 후자의 역할을 할 뿐 둘의 재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리고 앙티크의 공방에서 일하는 알베르토는 그리 어떤 에피소드, 사연을 만들어내는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에서 2~3번 정도 등장한다. 이는 알베르토의 ‘성실성’이 쥰세이를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알베르토가 원인이 되어 아오이와 마빈 사이의 1차 갈등이 일어난다. 이는 영화 속에서 연출되지 않는다. (2차 갈등은 편지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으로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하던 이야기에 이어 소설과 영화 속 주변 인물들의 성장통을 살펴보자. 먼저 ‘엄마’와도 같았던 쥰세이의 스승인 조반나는 쥰세이의 복원 실력에 질투를 갖고 그의 그림을 찢어버린다. 자신에 대한 열등의식은 결국 그녀를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다. 영화에서는 다카나시의 입을 통해 그녀가 쥰세이를 시기한 동시에 연모했을 것이라는 정보를 흘려주는데 과연 영화상에 추가된 이 대사가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다음은 영화상에서 삭제되어버린 인물들과 에피소드이다. 바로 다카나시와 안젤라다. 그들은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치부이자 약점을 가진다. 안젤로는 쥰세이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카나시가 쥰세이를 싫어했던 이유가 안젤로 때문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오이 쪽 인물을 살펴보면, 소설 속에서 안젤라는 마빈의 누나로 등장하는데 영화상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안젤라는 남편인 덕과 성격 차이로 이혼한 후 이곳저곳 여행을 다닌다. 마치 사춘기의 아이들이 방황하듯 그녀에게는 여행이 성장통을 견뎌내는 방법인 셈이다. 한 곳에 정착하여 안주하려는 아오이와 사뭇 대비된다.
에쿠니 가오리가 쓴 ‘Rosso’ 가 ‘Blu’에 비해 지루하다는 평이 많다. 목욕, 독서, 영화 관람만 반복하는 아오이의 일상이 과연 어떠한 소설적 재미를 주는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두세번 읽다 보니 ‘Blu'가 쥰세이의 그리움과 회상을 통해 사랑 이야기의 느낌을 준다면 ‘Rosso’ 는 아오이를 둘러싼 평범한 일상,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시간 속에 흘러간다. 루카와 다니엘라가 결혼하고 아기를 낳을 동안 과거 속에 멈춰 있는 아오이의 모습이 부각된다. 아오이는 미래를 향해 나가려하지만 과거와 현대가 뒤섞인 밀라노의 풍경처럼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소설 속에서는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고민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성장’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족쇄에 묶여있는 주인공들을 부각시킨다.
마지막으로 영화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 복원사로서 미래를 고민하는 쥰세이의 모습이다. 소설에서는 쥰세이의 내적 갈등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첫 번째는 아오이에 대한 그리움이고 다른 하나는 복원사로서의 자기 미래에 대한 고민이다. 과거를 ‘재생’ 시키는 직업인 복원사는 ‘성장’ 이라는 주제에 매우 적합한 직업이다. 소설 속에서는 복원사라는 직업을 ‘과거와 화해하면서 미래로 오르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소설을 보면서 등장인물의 직업까지도 의미를 가져야 한다는 박덕규 교수님의 말씀을 정말 절실히 깨달았다. 과거로부터 자신을 재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은 이 작품에서 아주 큰 의미를 갖는다. 케이크로 비유한다면 이 영화에서 다루는 ‘사랑’은 크림이고 케이크의 빵이 바로 자기 재생에 관한 고민, 성찰이다. 영화 속에서는 이 직업에 대하여 크게 다루어지지 않아 매우 아쉬웠다. 이 직업에 대한 소홀이 ‘성장’ 이라는 주제의 생략으로까지 나아가지 않았나 싶다.
영화와 소설의 시점 차이는 캐릭터의 설득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이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3인칭 시점의 영화는 쥰세이의 심리가 간혹 나레이션으로 등장할 뿐 독자들의 시선이 겉에 머무르게 한다. 따라서 모든 것이 연출가와 배우들의 힘에 따라 심리가 표현되기 때문에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게 될 공산이 크다. ‘냉정과 열정 사이’가 영화로 만들어지며 가장 안타까웠던 캐릭터 중 하나가 메미다. 소설 속에서는 그녀를 ‘아이 같다’라고 표현하고 있고, 영화에서도 그녀를 아이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쥰세이와 좀 더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소설 속 메미와 쥰세이에게 계속 거부당하는 영화 속 메미를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소설 속에서 쥰세이는 관계를 가지며 메미에게서 계속 아오이를 발견하고 아오이의 전위로서 메미를 곁에 둔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메미에 대해 동정을 갖게 한다. 후에 메미가 쥰세이를 붙잡는 데 독자는 그녀를 이해할 만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물들의 심리가 생략된 영화에서 메미의 행동은 단지 집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그 캐릭터가 사랑의 방해꾼으로 형성되어 짜증을 자아낸다. 이와 같이 시점의 차이는 캐릭터가 작품에서 설득력을 잃는 데 영향을 미친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는 상징의 요소들이 매우 많다. 제일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공간적 배경이다. 큰 인기를 얻으며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은 작품 속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쥰세이가 머무는 피렌체, 아오이가 사는 밀라노, 그리고 도쿄다. 소설 속에서는 이 배경들에 대한 서술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각 공간을 쥰세이와 아오이에 대입시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 = 준세이 | 도쿄 = 두 사람의 통증의 공간 | 밀라노 = 아오이 |
부드러운 색상 | 평탄, 폐쇄, 무거움, 답답 | 차갑다 |
사랑스럽고 따뜻하다 | 사랑을 거부 | |
과거가 숨쉬는 공간 | 차갑고 눅눅한 밀라노의 공기 | |
시간이 멈춘곳 | 과거와 현대가 섞여있다 |
쥰세이는 과거를 잊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이는 영화 속에서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데, 피렌체 두오모에서 재회한 둘의 대화 장면이다. 아오이는 그냥 들렀다며 자신을 속이지만 쥰세이는 솔직하다.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한다.
'Blu'에서 쥰세이는 시종일관 아오이에 대한 회상 뿐이다. 메미와 사랑을 나눌 때도 아오이 뿐이다. 시간이 멈춘 피렌체에 그는 흡수되어 있다. 반면 아오이는 과거를 거부하고 미래로 나아가길 원한다. 마빈과의 시간에서 쥰세이가 떠오르면 그녀는 자책한다. 기억과 과거로부터 벗어나길 원하지만 과거의 늪에 단단히 묶여 있는 아오이는 혼란의 밀라노다.
소설 속에서 밀라노에는 비가 정말 자주 내린다. 이는 아오이를 상징하는 공간인 밀라노의 음울한 색채를 형성하는 도구이자 아오이가 지속적으로 쥰세이를 회상케 하는 매개이다. 비소리는 과거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를 생각나게 하고, 이 노래를 유일하게 알던 쥰세이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동시에 도쿄가 그녀의 기억 속에 머무른다. 영화 속에서는 아오이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쥰세이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에서 비가 내린다. 소설 속에서 비가 지니는 상징성은 생략되고 아오이의 슬픔을 표현하는 표면적인 역할만 하고 있다.
소설 속에서 쥰세이는 아오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엄마한테 안겨 있는 기분이야.’ 뿐만 아니라 그는 조반나에게 엄마의 향수를 느끼고 라파엘로의 ‘대공의 성모자’를 보며 엄마의 형상을 그린다. 그리고 아오이는 평생을 밀라노에 정 붙이지 못하고 일본을 그리워한 어머니를 야속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것은 누군가에게 ‘정착’하고 싶어 하지만 정착하지 못하는 아오이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닮은 엄마를 원망할 수밖에 없다.
엄마’는 두 주인공이 가진 상처의 공통 분모다. 둘은 단순한 애정의 관계를 떠나 소울메이트라는 느낌, 무언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데 바로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엄마의 부재 탓일 것이다. 특히 쥰세이는 엄마의 부재를 아오이로부터 채워넣으려는 심리를 보인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추가된 장면은 무엇이 있을까.
대학시절 첼리스트가 성공하여 그들 앞에 나타나는 모습은 다소 뻔한 인상을 준다. 아무래도 그들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성장해왔음을 시사하고 싶어 하는 느낌을 주는데 갑작스런 그의 등장은 쌩뚱맞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말을 장식하는 둘의 만남에서 기차역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기차역은 도착하고 출발하는 장소다. 쥰세이와 아오이의 만남도 마찬가지다. 둘의 힘겨운 재회는 막 역에 도착한 기차에 비유해볼 수 있다. 이제 둘은 다시 출발할 것이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재회한 쥰세이와 아오이가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쥰세이는 아오이에게 직접적으로 만나지 말자는 말을 던지고 아오이는 쥰세이에게 냉정하다고 말하며 그를 떠난다. 소설 속에서는 마음에 담아두는 말을 영화 속에서는 서슴없이 던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주제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자 한 게 아닐까. 과거에 대한 열정을 그리워하고 이어가고 싶어하는 쥰세이와 과거를 거부하고 미래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냉정한 아오이는 영화의 말미에서 전환된다. 각자의 시간이 너무 길었음을, 모르는 사이에 많이 변한 서로를 발견한 쥰세이는 냉정한 태도를 보이지만 아오이는 재회에서 타오른 열정을 거부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첫댓글 책에서의 여운은 독자들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며 주인공들의 끝나지 않은 성장통을 암시한다는 해설을 배웁니다.영화는 해피앤딩의 결말을 확연히 보여주는 거군요.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무려 13번?의 갈등,분열을 보인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영화도 기억나요.사랑은 정말 알 수 없어..그 오묘한, 연인들의 힘들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셋째주 수요일 김치타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