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 1부 황하의 영웅 (64)
제2권 내일을 향해 달려라
제10장 제족의 선택 (3)
그해 9월, 공자 돌(突)은 정나라 군위에 올랐다.
그가 정여공이다.
제족(祭足)은 정경(正卿)에 올라 나라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했다.
여전히 병권과 내정을 휘두르는 최고 실권자의 자리를 유지했다.
그는 또 송장공이 지시한 대로 자신의 딸을 옹 대부의 아들인 옹규와 결혼시켰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제족의 딸을 옹희(雍姬)라고 불렀다.
옹규는 장인의 후광에 힘입어 대부 자리에 올랐다.
생각보다 민심은 어지럽지 않았다.
모두들 정여공과 제족의 말에 잘 따랐다.
그러나 정여공의 동생들, 즉 공자 미와 공자 의는 불안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언제 정여공이 자신들의 목숨을 빼앗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망명을 결심했다.
공자 미는 채(蔡)나라로 달아나고, 공자 의는 진(陳)나라로 달아났다.
이로써 정(鄭)나라는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역시 걸림돌이 너무 많았다.
가장 먼저 불거진 것은 제족을 협박하여 공자 돌(突)을 군위에 오르게한 주역인
송나라 임금 송장공(宋莊公)이었다.
그는 공자 돌(突)이 순조롭게 군위에 올랐다는 소식에 접하자 사신을 보내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 그대의 즉위는 오로지 나의 덕분임을 잊지 않았겠지요.
속히 성(城) 셋과 흰구슬과 황금과 곡식을 송나라로 보내주시오.
이를테면 재촉장이었다.
이때 정여공이 약속한 모든 물건을 송나라로 보내주었다면 별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여공은 목숨을 보존하기에 급급한 예전의 망명 공자가 아니었다.
이제는 어엿한 한 나라의 주인이었다.
지난날과 마음이 같을 수 없었다.
그는 정경 제족(祭足)을 불러 송장공의 재촉장을 내보이며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송나라에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저들의 요구를 승낙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소.
더욱이 송나라 요구대로 물건을 보내면 우리나라 부고는 텅 빌 지경이오.
임금자리에 오른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성(城) 셋을 내주고 부고가 비게 되면 나는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오."
제족(祭足)역시 송장공의 요구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한 계책을 내놓았다.
"주공께서는 이제 막 군위에 올랐고, 백성들의 놀란 마음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이런 중에 세 고을이나 송나라에 떼어주면 백성들이 원망하여 들고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공께서는 이런 사정을 송장공에게 고하고
우선 세 성에 바치는 세물(稅物)만 보내겠다고 하십시오.
구슬과 황금 역시 약속한 것의 3분의 1만 보내시고, 정중히 사죄의 말을 덧붙이십시오.
아울러 매년 보내기로 한 곡물은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하십시오."
계책이랄 것도 없었다. 한마디로 약속 파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욕심 많은 송장공(宋莊公)이 우리 말을 들어줄 리가 없을텐데....“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송나라 요구를 모두 들어주었다가는 우리 나라는 빈 껍데기가 됩니다.
만일 송장공이 우리 말을 들어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때 가서 따로 조처를 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소."
정여공은 제족(祭足)의 말에 따라 흰구슬 30쌍과 황금 3천 일(鎰)만 송나라 사자에게 주어 돌려보냈다.
이같은 정여공의 태도에 송장공은 불같이 화를 내었다.
"죽어가는 놈을 살리고 비천한 놈을 귀하게 해주었더니, 이 무슨 자린고비 같은 수작이냐!“
그는 다시 사자를 보내어 약속한 물품과 수량을 모두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나라의 창고가 비어서 보낼 물건이 없다고 전해주시오."
제족(祭足)도 이에 질세라 버티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다시 대책을 강구하여 정여공에게 아뢰었다.
"송장공(宋莊公)은 지난날 정장공의 은덕으로 목숨을 부지한 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임금 자리에 오르게 된 것도 오로지 우리 정(鄭)나라 덕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렇듯 야박하게 구니, 참으로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우리 군세로 송나라와 전쟁을 벌일 수도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노(魯)나라에 사신을 보내 노환공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노환공이 우리를 위해 힘써줄까?“
"선군(정장공)시절부터 노(魯)나라와 우리 나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더욱이 노나라는 정장공의 은혜를 여러 차례 받은 바 있습니다.
반드시 주공을 위해 힘써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방법밖에 없었다.
정여공은 말 잘하는 신하를 뽑아 노(魯)나라로 보냈다.
정나라 사자로부터 그간의 경위를 들은 노환공은 정여공의 처지를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난날 송장공(宋莊公)이 즉위하였을 때 우리 노나라는 고작 가마솥 하나밖에 받지 못했다.
그런데 송장공은 정나라 뇌물을 끔찍이 받아먹고도 만족하지 못해 안달인 모양이구나.
가소로운 일이다.
내가 책임지고 송장공을 설득할 터이니, 그대는 안심하고 돌아가라.“
흔쾌히 수락하고는 공자 유(柔)를 보내어 송장공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게 했다.
- 오는 7월 작(酌) 땅의 부종(扶鍾)에서 회견합시다.
가을이 되자 노환공은 정나라 일을 중재하기 위해 작(酌) 땅으로 나갔다.
송장공은 무슨 일인가 하여 그 곳으로 나왔다가
노환공이 정나라 일을 거론하자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간 정여공에게 베푼 은혜는 날계란을 품어 날개까지 돋도록 해 준것에 비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번 보답품은 제가 강요한 것이 아니고, 그쪽에서 먼저 제안한 것입니다.
그런데 군위에 오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맹세를 저버리니,
어찌 괘씸한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정여공이 어찌 귀국의 은혜를 잊을 리 있겠소?
다만 즉위한지 오래지 않고 부고에 재물이 넉넉지 못해 잠시 미루는 것이겠지요.“
온건히 권했으나 송장공(宋莊公)은 끝내 노환공의 중재안을 거절하였다.
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식에 정여공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제족(祭足)이 다시 한 계책을 내놓았다.
"지난날 송나라 태재 화독은 송상공을 살해하고 송장공을 세운 직후
각 나라에 뇌물을 보내 뒷일을 수습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노나라는 송나라로부터 '고의 대정'을 받았고,
우리 정나라는 '상이(商彛)'를 받은 바 있습니다.
이 기회에 송장공에게 상이를 돌려보내면,
송장공도 지난날의 일을 기억하고 더 이상 야박하게 굴지 못할 것입니다."
상이의 '상'은 상(商, 殷)나라를 말함이요,
'이'는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릇이다.
은나라 시절 제사 지낼 때 쓰던 예기(禮器)로서 '고의대정'과 함께 보물로서 여겨지는 물품이다.
"묘책이오.“
제족(祭足)의 말에 정여공은 기뻐했다.
다시 노나라로 사자를 보내 상이(商彛)를 내놓으며 간절하게 호소했다.
- 이것은 원래 송나라 물건입니다.
이것을 보면 송장공도 어려웠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릴 게 분명합니다.
군후께서는 우리나라를 살려주시는 셈치고 다시 한 번 송장공과 회견하여
이것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노환공(魯桓公)은 이번에도 정여공의 부탁을 승낙했다.
다시 송장공에게 회견을 신청했다.
이번에는 곡구(穀丘) 땅에서 만나기로 했다.
곡구에는 구릉이 많다.
그 구릉 중 '구두(句讀)의 언덕'이라 불리는 곳에서
노환공과 송장공은 두 번째 회담을 가졌다.
노환공은 이번에야말로 송장공을 설득하리라 마음먹었다.
송장공은 송장공대로 노환공을 통해 남은 물품을 받아내리라 결심하고 나왔다.
상호간 예(禮)를 마쳤다.
노환공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송장공이 선수를 치듯 입을 열었다.
"약속한 성 셋은 언제 준다고 합니까?“
노환공(魯桓公)은 기가 막혔다.
지독한 놈이로구나, 생각했다.
"정여공은 선군이 일군 영토를 사사로운 것에 쓸 수 없다며,
대신 성(城) 셋보다 더 귀한 보물을 보내왔더이다."
비꼬듯 이렇게 말하고는 한옆에 놓아두었던 비단 보자기로 싼 큼직한 물건을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송장공은 성 셋보다 더 귀한 보물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