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부터 이야길 시작할까?
책이 귀했던 시절이었어. '사격장의 아이들'이란 영화가 있었다. 과 친구의 오빠가 감독을 했다기에 과 친구들과 보러갔거든. 군인들이 사격 훈련을 하는 전방, 사격장 인근에 사는 가난한 마을을 배경으로 그린 영화인데 난 꽤나 충격을 받았다. 허장강이 아이들의 아버지로 나왔는 걸로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방에 들어와서 담배쌈지를 꺼낸다. 연초를 둘둘 말아서 피울 종이가 없었나보다. 책상도 없이 방바닥에 엎드려서 공책을 펼쳐놓고 연필심에 침을 묻혀가며 숙제를 하노라 애를 쓰는 딸애가 참 예뻐 보인다. 그런데 허장강이 딸애의 교과서를 찢어버리는 거 아닌가. 그리곤 찢어버린 교과서 종이에다가 연초를 꾹꾹 눌러가며 담배를 말더니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인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선가 아버지의 입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나오자 딸애가 엉엉 울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찢어버린 교과서를 들고서는..... 허장강이 하는 말이 걸작이다. "기집애가 무슨 공부가...일이나 하다가 시집이나 가면 되지" 뭐 이런 일이 당시에는 비일비지였을 거야. 놀라지 마, 이 영화는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본 거야.
학교에 다니는 것도 호강이었을까? 초등학교 6학년 때 반에서 중학교로 진학할 아이들도 2/3 정도였고 약 스무 명은 중학교조차 진학하질 못했다. 기집애들은? 우리 6학년에 3개 반이 남학생반이었고 여학생은 고작 2개 반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딸들은 열외였다고. 집에서도 아들은 그래도 상급 학교엘 보낼려고 애를 썼다면 딸애는 집안 일을 거들다가 시집이나 보내지 뭐. 내가 살던 곳이 시골이래서 그렇다고? 아무리 시골에서 살았다 해도 명색이 '시(市)'에서 산 도시 아이였다고. 그렇다면 면 단위로 가면 진학율은 형편없이 떨어졌을거야. 면 소재지엔 중학교조차 없었던 게 아니었던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홈커밍 데이(?)같이 동창들이 모교에서 졸업 후 5년만에 모여서 수박도 먹으며 옛날 이야기를 했다. 그 중에 상당수가 긴 머리 처녀와 총각들이다. 미장원 새끼마담이라는 동창 여학생하고 철공소에서 풀무질로 단련된 떡 벌어진 총각이랑 어울려 놀았는데 무언지 나 같은 학생들은 기가 팍 죽었던 게 생생하다. 5.16이 일어난 다음 학교 확성기에서는 맨날 천날 '잘 살아보세'라는 행진곡이 귀를 따갑게 했다. 그래서 다들 힘을 내고 악착같이 살려고 노력했던 게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를 이루게 된 게 아닐까. 다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 형편에 책은 무슨.... 교과서나 겨우 장만해가지고 수업을 듣는 정도인데 동화책 같은 읽을 거리는 어림도 없었지 뭐.
내가 서점집 애라는 이야긴 했던가? 우립 집은 큰 서점이라서 인근 면소재지는 물론 군소재지에서도 우리집에 와서 책을 받아가서 팔았으니 내 팔자는 은수저를 들고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과에다가 수련장까지 갖추고 공부를 했으니 다른 애들하고는 출발선이 한 삼사십 미터 앞서서 달리는 단거리 경주에 나선 선수라 할까. 세계 여러나라의 동화책에다가 철가면, 암굴왕, 장발장에다 삼총사 같은 명작은 아주 어릴 때부터 끝냈으니까. 내가 학교에 가면 가방에서 꺼내는 책이 뭔가하고 내 주위엔 친구들이 빙 둘러 섰다. 암굴왕(몬테 크리스트백작) 같은 책은 한번 꺼내 읽다가 보면 밤을 홀딱 세우고마는 불후의 명작이 아니던가. 이런 책을 빌려 볼까하고 반 친구들은 내 비위를 거슬리지 않을려고 애를 쓰더라고. '너 아주 꼴깝을 떨었구나.' '내 꼴깝 떠는 거 봤어요? 내가 얼마나 인심 좋았는데' 그때 우리 담임선생님이 아주 슬기로웠던 분이었다. 학급 문고를 만들었거든. 내가 수십 권도 넘는 책을 자연스레 내놓으니까 멋진 학급문고가 차려진 거지 뭐. 내가 좁쌀스레 유세 떨 것 없이 반 아이들이 책을 골고루 볼 수밖에.
당시 서점에 제일 많은 코너를 차지한 거는 각종 검정고시 관련 책이었다. 중,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같이 학교에 다니지 못한 아이들이 상급학교 진학할 수 있게 말이다. 요즈음도 있지만 그땐 아주 많았을 테지. 서점 제일 좋은 자리에 빽빽하게 꽂혀 있는 검정고시책이 기억 난다. 그리곤 금언이 실린 포스터(?)가 매일 다른 금언으로 걸려있었는데 제법 팔린 거로 보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마라....' 아마도 검정고시 책을 사러온 젊은 고학생들은 이런 표어를 보면서 처진 어깨를 고추 세우고 다짐했을 지 모른다. 가난 때문에 진학하지 못 하고 주경야독으로 배움을 이어가던 고학생들, 지금은 다들 일가를 이루고 잘 살고 계시리라 믿는다. 암 성공했고 말고. 그 다음은 수련장, 전과(국민학교 참고서)에다가 간추린 수학(중학교 참고서)같은 과목별 참고서가 있었다.
잡지는 어땠어? 그래, 당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잡지는 여원이있었다. 나중에 주부생활과 여성중앙이 나왔고. 아리랑, 야담과 실화 같은 야리꾸리한 성인잡지 또한 인기가 대단했다. 학생들한테는 학원이 유일했고 진학 같은 대학교 진학잡지는 한참이나 뒤에 나온 잡지였다. 여학생이란 잡지도 나중에 나왔는데 내 글도 몇 번 실렸다. 아무래도 학원이 중고등학생들한테 끼친 영향은 대단했다. 학원잡지 뒷편에 학원문단이란 코너는 학생들이 문학 수업하는 유일한 창이었다. 유명한 작가들이, 이제사 노년의 작가겠네. 학원문단 출신이란 걸 기억해 줬으면 해.
아~ 사상계가 있었지 왜. 그때도 표지는 하얗고 두꺼운 맨종이에 한자로 쓴 사상계라는 제목만 선명했다. 표지부터 우국지사라 할까, 그 기상이 꼿꼿했다. '내가 그책을 봤냐고?' 누구 떠보는거냐 뭐야. '그럼 넌 아리랑 같은 잡지나부랭이나 봤을 테지.' 잘 아시면서. 그래도 장용학 이란 소설가의 연재소설이 기억나네. 어려웠던 나라의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는 소시민을 그린 내용으로 오발탄 같은 풍의 소설이 주로 실렸다. 내 수준에 연재 소설이나 읽지 뭐 읽을 게 없었다. 나중에 씨알의 소리가 나왔지. 사상계보다 얇지만 당시 지성인이라면 사상계와 씨알의 소리를 읽어야 행세했지. 씨알의 소리는 함석헌옹이 주간이었지 싶어.
야담과 실화도 몰래 읽었지만 대중잡지의 선두는 아리랑이었다. 그때 아리랑은 연예관련 기사나 배우들 연애담 같은 기사로 인기가 대단했다. 나중에 선데이 서울이 나올 때까지 부동의 베스트셀러였거든. 엄마 몰래 아리랑 같은 대중잡지를 슬쩍보느라 영화배우 관련 소문에는 날 따라 올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고. 기억에 남는 기사는 최무룡이 김지미와 간통사건으로 감옥에 간 거 때문에 잡지가 엄청 팔렸다. 최무룡이 누구냐고? 지금 터프가이 대명사 최민수 아버지였다. 당시 최무룡은 신영균, 김진규와 트리오를 이룬 미남 배우였지. 신성일은 데뷰 전인 까마득한 후배였다. '대단해 너 똑똑한 줄 진즉 알았다니까' 친구들은 으례 내 주위에 둘러앉아서 까십 같은 배우들 사생활을 듣곤했지. 아~ 당시 최은희를 내세워서 성춘향을 연출한 신상옥 감독하고 김지미 주연의 춘향전을 감독한 홍성기 감독의 대결이 장안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결과는 홍성기 감독의 처절한 패배로 결말이 나고 김지미가 홍성기 감독하고 이혼을 하게 된다. 흥행에 실패해서 김지미까지 빚더미에 몰리게 하긴 싫어서 홍성기감독이 그랬던 걸로 기억이 난다. 바햐흐로 신상옥 시대가 열린 게 그때였어. 최무룡하고 김지미가 간통으로 감옥에 간 거까지. 내가 참 대단하다고? 그땐 그런 까십가지고 으스대던 시절이었어.
일기, 요즈음도 쓰냐고? 비록 년말에 팔리는 거지만 일기장은 서점 매출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일기는 꼭 그런 일기장에 써야 하는가? 년말이면 젊은이들은 일기장을 사려고 책방에 들른다. 요즈음은 일기를 쓰는 사람이 드물지 않을까? 장사가 되니까 출판사마다 일기장을 내놓았는데 자물쇠까지 달린 일기장도 있었다니까. 일기장 안에는 미국 배우들의 사진도 들어 있었고 리차드버튼이 엘리자벳 테일러라는 여배우하고 결혼했다는 것도 짤막한 기사로 끼어 있었는데 글 중에는 리즈 테일러가...하는 말이 있는데 이게 뭔 이야기인지 몰랐어. 알고보니 리즈란 엘리사벳의 약칭이더군. 나도 어쭙잖게 자물쇠 달린 일기장에 날마다 뭔가 쓰곤했다. 중학생이 말이야. 철이 들어서야 공책에다가 일기를 썼지만 그땐 그랬어. 구정 초에는 토정비결 보는데 필요한 책력이 인기가 있었다.
장날에는 무슨 책이 잘 팔렸는가? 장날이 뭔지 몰라? 아직 시골에는 5일장이 열린다. 우리 고향은 2일과 7일이 장날이다. 우리 부근 면단위 시골에서 사람들이 버스를 타거나 소가 끄는 구루마를 타고 장으로 모여들지. 저마다 농사 지은 콩이랑 팥 같은 농산물이거나 송아지, 꼬물꼬물거리는 새끼 강아지를 장에다 내다 팔았지. 시골장을 찾아가 구경해보라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구수한 풍경을 어찌 잊을꼬. 아직도 시골에는 장이 선다. 장꾼, 장똘뱅이로 불리운 상인들은 지게에 싣든지 소가 끄는 우마차에 온갖 팔 물건을 바리바리 지고서 날짜 따라 장 서는 마을로 옭겨가며 물건을 판다. 아! 이효석의 '메밀꽃 피는 마을' 은 바로 이 장똘뱅이를 주제로 만든 소설이 아닌가.
날이 오면 우리집은 분주하다. 장날에만 파는 특별한 책이 있거든. 우선 가게 앞에다가 가게를 여닫는 나무로 만든 커다란 문짝을 펼쳐놓겠지. 나중에 셧다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나무로 만든 문짝에다가 순서대로 一 二三 한자로 번호를 매겨놓고 가게를 닫을 때 문짝을 순서대로 닫으면 방범용 샷다가 되는 셈이다. 장날에만 파는 특별한 책은 스무남 페이지 되는 책인데 세로줄, 궁서체로 쓰여진 책은 이랬다. 콩쥐팥쥐, 임진록, 장화홍련전, 심청전, 충향전 같은 책, 지금도 있을까? 책 표지에는 멋드러지게 그림도 넣어서 어르신들이 좋아할 책이었다. 책값이야 엄청 싼 걸로 기억난다. 한 20원 정도. 내 중학교 입학금이 360원으로 기억하는데..... 임진록이란 임진왜란 후에 사명당대사가 일본에 가서 우리 포로들을 데려오며 일본 놈들을 꼼짝 못 하게 혼을 내주고 왔다는 픽션이지만 읽다가 보면 속이 후련하지 뭐. 할아버지 부탁으로 장날에 이런 책을 사가지고 간 아제(아저씨의 사투리)는 저녁을 자시고 난 다음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앉혀두고 시조 읽듯 낭랑한 소리로 책을 읽어드릴테지. 사명대사를 태워 죽이려고 왜놈들이 방에 가둬놓고 군불을 땐다. 한참이나 장작을 때던 일본놈이 이제야 죽었거늘 하고 방문을 열다가 놀란다. 절절 끓다못해 새카맣게 타죽을 줄 알았던 사명당대사가 '어이 추워. 방문 닫게' 하며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 모습으로 방 가운데 앉아있는게 아닌가. 왜놈들이 혼비백산을 하는 대목은 할아버지가 제일 좋아해서 다시 읽어 달라고 하셨을 터. 보름달이 서쪽으로 기울어도 장날 사온 임진록 읽는 재미에 밤은 깊어 간다지.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는 할머니 애독서였고.
요까지 상권 책 한권 묶고 다음 편을 기둘려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