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든 마을 앞에 벼들은 자라고.
세월은 간다 소리도 없이.
염려마라, 세상이 우리더러 병신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농사꾼이 가을을 기다리는 까닭은
오직 굶주림 때문만은 아니므로.
그 누가 알거나 모르거나 우리들
벼포기 사이에서 한여름을 견디고,
혹은 풀을 뽑고 농약을 뿌린다.
빌어먹을, 어쨌든 살아남는 거야
끝까지.
(양성우, '농사꾼이 가을을 기다리는 까닭은' 전문)
점점 농사짓는 일이 어려워진다고들 말을 한다.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수입쌀과 쌀값의 하락으로 이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벼를 재배하는 논들이 점점 줄어들고 다양한 시설 재배로 눈을 돌리지만, 그 역시 수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풍년이 들면 농산물이 넘쳐 가격이 하락하니 걱정이고, 흉년이 들면 농민뿐만 아니라 소비자들도 역시 고통을 받기는 마찬가지이다.
과거에는 '농자 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을 꺼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말조차도 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러나 오늘도 여전히 농부들은 논과 밭에 나가 농사를 짓는다.
30년도 더 지난 1980년대 초반에 발표한 시이지만,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도 여전히 작품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 작품은 일월서각에서 출간된 <넋이라도 있고 없고>에 수록되어 있다.
농민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주는 정책이 시행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농사를 지어본 경험은 없지만,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