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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최악의 한일 관계', 저자는 현재의 한일 관계를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재일한국인 2세로 일본에서 성장하여 비판적 지식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강상중의 진단은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과거의 침략에 대한 반성 없는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 왜곡과 망언으로 인한 한국의 반일 감정이 그 중심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박근혜 정권 시절에 체결된 한일 사이에 맞은 ‘위안부협약’에 대한 인식 차이로 인해 그 갈등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한국 대법원에서 내린 민간인에 대한 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일본 쪽의 감정적 대립은 상황을 점점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 되었다. 이처럼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누가 보더라도 한치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양국 모두 감정적 반응보다 냉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문제 해결의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역사적 배경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며, 그로부터 현상에 대한 진단과 앞으로의 과제가 부각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매우 이성적인 제안으로 저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지만, 일본에서의 '혐한'과 한국에서의 '반일'은 이성에 앞선 정서적 측면에 기대고 있는 바가 더욱 크다고 여겨진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전 정부들과 달리 트럼프의 과감한 대북한 정책이 새로운 북미 관계의 모멘텀을 만들어가는 듯 했으나, 그가 재선에 실패함으로써 북미 관계는 다시 과거로 회귀하느냐의 여부가 조만간 결정될 듯하다.
저자는 최악의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는 지금의 한일 관계에서 '위기는 기회다'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일 관계는 단지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상기시키고 있다. 먼저 남북과 북미 사이에 진행되었던 관계 개선 움직임과 적대적인 갈등이 반복되었던 1990년대 이후의 상황을 냉철하게 조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1994년 김일성이 죽으면서, 미국과 한국에서는 이른바 '북한 붕괴설'에 기대어 이전까지의 관계 개선 노력들을 무위로 돌리는 시간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2011년 김정일의 죽음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북미 관계의 개선을 바라는 북한의 의도가 어그러질 상황에 처하자, 북한의 핵개발과 핵을 탑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벼랑끝 전술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고, 철저하게 비난받는 처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저자는 만약 김일성 사후에 안이하게 '북한 붕괴설'에 기대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방치하지 않고, 이전의 관계 개선 사업이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그 이후 북한에서는 핵개발에 매달리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진단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것은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그랬다면 남북 관계도 더욱 개선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어지는 내용들에서는 최악의 한일 관계를 진단하면서, 한반도에 평화정착의 방안에 대한 나름의 대안이 제시고 있다. '더 이상 반일과 혐한에 갇혀있을 이유가 없다.'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쓰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라고 여겨진다. 남북의 분단체제를 끝내고 평화로의 가는 길, 저자는 그것을 셀리그 해리슨의 표현을 빌어 '한반도 엔드게임'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래서 지금 현실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전후 최악의 한일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자세 변화와 노력을 촉구하고 있다. 분명 저자의 주장과 대안 제시는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공하하게 느껴지는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갈수록 혐한을 내세우고 아울러 침략에 대한 과거 반성이 없는 일본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한국의 변화만을 바라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에서 저자가 여러 차례 강조하고 있는 '행동 대 행동'이라는 국제 관계의 틀에서 보았을 때, 한국 정부의 변화는 반드시 일본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로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일 양국에서 그동안 진행되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변화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된다. 그런 상태에서 특히 대 일본 관계에 있어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정치권에서 먼저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고 여겨진다. 이런 이유로 저자의 진솔한 제언이 조금은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불신의 뿌리는 박정희정권 때 일본과 맺었던 조약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그의 딸 박근혜가 일본과 맺은 ‘협정서’에까지 이르고 있다고 하겠다. 진심어린 사죄 없이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했다고 믿는 일본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여론과 어긋나게 처리했던 과거 한국 정부의 협소한 시각이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한국전쟁 이래 남북을 둘러싼 국제 관계를 조망하면서, 긴장 완화를 위한 섬세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남북 관계에 있어 물론 주변국들 모두 중요하지만, 특히 일본의 역할도 적지 않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미국에서 트럼프 정권의 퇴장, 그리고 대한 강경책을 주도했던 아베정권이 물러났지만 대동소이한 스가 정권의 탄생으로 남북을 둘러싼 국제 정세는 한동안 교착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예견된다. 현재의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상황을 개선시켜 나가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너무도 적실하다. 재일한국인 2세로서 한반도에 대한 애정과 이를 바라보는 객관적이 시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도 지적했듯이 한알관계의 개선은 어느 일방의 자세 변화가 아닌, 상호 소통하며 노력하는 가운데 이뤄질 것이라는 것도 주지할 필요가 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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