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김대식의 로마제국 특강'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을 접했을 때, ‘로마의 영광’을 중심으로 그 역사를 논한 내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지금은, 책의 내용이 애초의 내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저자는 일관된 시각으로 ‘로마제국’을 전후한 시기의 역사와 그와 관련된 국가 운영의 제도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 결과 과거의 찬란한 영광에 매몰되면,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이라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어쩌면 지금의 세계사적 상황이 ‘팍스 로마나’라고 불렸던 로마제국의 전성기와 그 이후의 역사적 상황과 흡사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그래서 과거의 교훈으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다 할 것이다.
로마가 유럽의 중심으로 활약하던 시기는 훨씬 오래 전에 지나가 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로마의 문화’는 오늘날 서양 문화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로마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얻어야할 교훈은 무엇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자는 과거의 영광에 도취되지 말고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은 모두 4단계에 걸쳐 로마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논하면서, 그것을 ‘기원- 멸망 -복원 -유산’의 순서로 기술하고 있다.
먼저 1부에서 ‘로마의 기원’을 논하면서, ‘어떻게 로마는 세상을 정복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저자는 로마의 지정학적 위치를 설명하기 위하여, 원시시대로부터 인류의 발전과정에 대해서 약술하고 있다. 그리고 지중해에 인접한 그리스문명에 뒤이어 나타난 로마문명은 뉴턴의 말처럼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었’ 때문에 가능했다고 단언한다. 이와 함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로마는 그리스에 이어 새로운 제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발달된 문화와 잘 정비된 군대의 활약으로 전쟁에서 패배를 모르는 승리를 획득했고, 그 결과 지중해를 둘러싼 광대한 영토를 개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러한 강점이 제국의 몰락을 촉진시키는 요인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왜 위대한 로마제국은 무너졌는가’라는 ‘멸망’의 내용을 다룬 2부에서 바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증하고 있다. 오늘날 그 폐해가 심각한 것으로 판명이 난 ‘독재체제’와 ‘불평등의 심화’로 인해서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전쟁의 승리는 곧 개인의 영광이던 초기와는 달리 직업군인으로 대치된 후기에는 군인들의 급료를 줄 수 없을 정도로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고, 광대한 제국을 통해서 발달한 무역의 이익은 소수의 기득권층이 독점하여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로마 안에서 불평등이 가속화되었으며, 로마와 이탈리아 사이의 차별문제가 대두되었고, 결국 노예들의 반란으로 인해 끝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영화 <300>의 주요 내용인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광대한 제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할되고, 서로마가 훈족에게 멸망당하면서 동로마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로마는 사라졌지만,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제국이 처음 시작되었던 로마의 본래 영토를 잃고, 비잔틴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한 동로마는 이후 1천여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그 문화와 인력들이 대거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로마의 문화는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로마 문화의 ‘복원’을 다룬 3부 ‘무엇이 로마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가’에서 그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실상 유럽은 서로마가 멸망하면서 교황이 지배하는 이른바 ‘중세시대’가 도래하였고, 당시에는 모든 것을 종교와 신의 이름으로 돌리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문예부흥이라고 번역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은 역설적으로 동로마의 문화와 인력들이 대거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찬란하게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유럽에 찾아온 세 가지 행운’이라고 논했는데, 그 세 가지는 구체적으로 ‘지식의 급격한 증가, 새로운 시장의 창출, 지식 전파 기술의 발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쿠텐베르크의 인쇄술과 함께 중세적 관념에서 벗어난 예술가들의 활동이 이를 가능케 했고, 저자는 3부의 후반부에서 다양한 미술 작품들을 들어 그것을 실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화의 시대’에 접어든 지금의 시점에서, 저자는 ‘누가 로마 다음의 역사를 쓸 것인가’라고 묻는다. 4부는 ‘유산’이라는 항목 아래 로마의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존재했던 모든 정치체제는 실패로 귀결되었지만, 이른바 ‘민주주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지닌 불완전성이 역설적으로 그 체제를 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실상 교과서적으로 통하는 민주주의 내용은 대단히 관념적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세계화’를 지향했던 로마의 상황이 중산층의 몰락과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졌듯이, 오늘날의 자유무역체제 역시 끝내는 그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지기도 한다. 또한 전쟁의 폭력성을 겪었으면서도, 아마도 지구상에서 전쟁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과 결부시켜 논하기도 한다.
이 책은 로마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로마 역사 그 자체의 이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로마사의 자세한 경과를 서술하기보다 로마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구체적 사건과 그것이 끼친 영향들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논하고 있다. 아마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영광의 뒤끝에서 멸망의 길을 걸었던 로마의 역사를 짚어보면서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돌아보자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로마에서 찾은 21세기의 해답’이라는 소항목을 통해서 토로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인식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역사를 모르면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역사를 알아도 반복되는 역사를 모두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상황을 떠올리면서, 저자의 이러한 인식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