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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만든 순간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시사적인 문제들을 소재로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쓴 칼럼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페미니즘 이론과 현실의 문제들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이 책의 내용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2016년 이래 일간지 등 다양한 지면에 게재했던 글들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시의성이 다소 떨어지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지만 저자의 문제 의식 만큼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남성중심적 제도와 관습이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펼쳐내고 있다고 이해된다.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다시, 쓰는, 세계>라는 제목의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쉼표로 구분되지만, 또한 연결되는 세 개의 단어들로 이뤄진 책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처음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의문이 들었다. 저자는 ‘지금/여기에서 세계를 바꾸고 마는 사람들의 삶을 ‘다시’처럼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없다’고 단언한다. 그래서 ‘다시,’라는 단어가 선택된 것일 터이다. 또한 ‘다시, 쓴다’는 것을 ‘지치지 않고 반복해서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새롭게 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이런 글들을 쥐고 만나는 세계란 노력하고 싸우는 곳’이며,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시공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제목의 설명에서 저자가 그려내려고 하는 의미는 명확하게 감지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을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하고 달아난 이른바 ‘서울역 사건’이 발생했다. 과거 ‘강남역 사건’으로 알려진 화장실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모습이 그 사건에서 겹쳐져 생각했던 것은 단지 나 하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이 사건은 ‘남성/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혐오의 관념이 뿌리깊게 박혔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은 그 ‘소수자’의 자리를 차지한 가장 오래된 존재였다. 그저 여성이기에 범죄의 대상으로 선택했다는 태도에서 우리는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편견'을 마주하게 된다.
페미니즘의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불평등한 제도와 관습을 고쳐나가려는 것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어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지만, 일각에서 ‘변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페미니즘을 극력 반대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것이 이른바 ‘여혐’이라는 행태로 드러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거울효과(미러링)’의 관점에서 ‘남혐’이 제기되고, 그것이 또한 적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은 남성중심적 제도와 관습이 오랫동안 형성해온 ‘권력’과 ‘기득권’의 문제로부터 플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관점을 포기하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전제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말로는 간단하지만, 그 길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아직도 숱한 어려움이 노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 활동가인 저자에게 가장 문제는 아마도 첫 번째 항목으로 네세운 ‘자라지 않는 남자들과 남성연대’의 문제라 할 것이다. 여전히 강고한 남성중심적 사유와 인식이 곳곳에서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자를 무시하고 때로는 혐오하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두 번째 항목인 ‘해로운 말들 앞에서’에서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그것을 반지성적인 언행으로 규정하고, ‘반지성적 의미 왜곡에 대응하는 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저자는 사전적 의미에 집착하여 반응하기보다는 그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선정적인 언어적 선동에 놀아나지 않기 위해, 우리 역시 좀더 맥락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페미니즘 이론가로서 저자는 차별이 지배하는 세계에 맞서는 방법으로 불가피하게 ‘싸움’을 선택했고, 그렇게 ‘싸움이 열어준 세계’에 대해서 세 번째 항목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삶이 저절로 계속될 것이었을까’라는 네 번째 항목을 통해서, ‘혁명’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혁명-이후’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전히 강고하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세계에서, ‘혁명적 순간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사건이 촉발한 변화의 계기가 일상적 변화로 이어가는 끈질긴 분투’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보건대, ‘혁명’은 대체로 그 이후의 ‘반동’을 수반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를 이루어내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켜내야 하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에 저자의 노력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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