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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교육 30년지대계’ 논의를 시작하자!
이찬승 (교육을 바꾸는사람들 대표)
새해를 맞는 마음이 무겁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렇고, 이대로는 학교교육에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새해엔 한국의 학교교육에 희망을 만드는 논의를 본격 시작했으면 한다. 학교교육에 희망이 없으면 미래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이제 한국의 학교교육은 더 망가질 수 없는 상태까지 왔다. 근본적인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 도래했다고 믿는다. 이런 상황인식에 정부, 교사, 학부모, 대학 모두가 한마음이었으면 한다. 얼마 전 어떤 도의 기초학습부진을 해결하기 위한 자문회의에 갔을 때 한 장학관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얘기를 들었다.
“많은 교사들이 폭발직전입니다!”
“실질적으로는 기초학습부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학교교육의 위기를 이 장학관이 잘 말해 주고 있다. 이 두 마디는 현재의 학교교육 시스템은 이제 퍠기 처분해야 할 단계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학교교육 시스템의 종말을 알리는 조종(弔鐘)소리에 가깝다.
지난 12월 27일 KBS에서 방영한 “우리는 두 번째 학교에 간다” 프로에서 진행자가 학생들에게 의자로 싫어하는 학교 이미지를 만들도록 했다. 모두 거꾸로 뒤엉키게 쌓아놓고는 “학교가 무너진 것 같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억울한 곳”, “감옥 같은 곳”, “지옥 같은 곳”,
학교란 ? 문장완성형 질문에 위와 같은 말을 쏟아 냈다. 각자 학교에 다니는 동안 매우 부정적인 경험을 한 이후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다.
이어서 다음 4가지 질문에 답하게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누가 나를 가로막고 있는가?”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가?”
놀라운 사실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에는 공통적으로 “어른들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어른들이란 일차적으로 교사와 부모를 일컫는다고 여겨졌다.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은 현재와 같은 학교교육 시스템과 관련이 깊다.
이제 정부는 더 이상 현 제도를 부분적인 수리로 일관하지 말고 최소한 ‘30년지대계’를 세울 때다.
이를 위해 아래와 같은 과제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1. ‘학력’, ‘학습’, ‘교육’, ‘교사의 역할’을 21세기 변화된 환경에 맞게 재정의 하자.
우리 사회가 ‘학력’, ‘학습’, ‘교육’, ‘교사의 역할’에 대해 현재와 같은 정의 혹은 인식을 받아들이는 한 한국의 학교교육은 희망이 없다. 우선, 전인적 성장은 온데간데없고 객관식 위주 표준화시험 점수를 ‘학력’이라 부르는데 대해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인성을 얘기할 때는 “인성이 실력이다”란 말에 공감하면서 혁신학교를 비판할 때는 학력저하를 문제 삼는다. 오직 시험점수를 위해 잠시 기억해 두는 지식의 일시적 기억을 ‘학습’이라 부르지 말자. 또, 교과서 내용을 진도에 맞춰 학습자에게 전달하는 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르지 말자. 학생 스스로의 사고력 중심의 진정한 학습은 실종되고 교사중심의 교과서 지식 전달을 ‘교사의 역할’이라 부르지 말자. 교사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정말로 중요하다. 양성부터 연수까지, 그리고 교원평가까지 두루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교 급별로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교사의 역할은 첫째, 아이들의 삶을 돌보는 일, 둘째, 가정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일, 셋째, 가르치는 일”이란 핀란드의 종합학교 한 교장선생님 말씀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도 초·중등학교 급에서 이런 역할정의를 받아들인다면 그 결과는 지금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심각한 것이 ‘학습’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라고 생각된다. 현 교사중심의 지식전달식을 학습자 주도로 바꾸자. 교사 주도와 학습자 주도는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온다. 학습자 주도는 학습자 맞춤 학습이다. 그리고 학습자 주도 학습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주의집중력을 높인다. 최근 한 중학교 사례다. 과학 교재의 일부 내용을 ‘보편적 학습설계’로 접근했을 때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방해만 하던 아동들의 집중력이 매우 높았었다는 보고는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교사중심에서 학습자 중심으로 바뀌는 것을 교사가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교사는 다음과 같이 교단의 현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학습자 곁에서 조언하고 서로 배우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난 몰라, 너희들이 날 가르쳐 줘야 해.", "아이쿠, 그 질문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같이 찾아볼까? 혹은 "너희들이 찾아 발표해줘. 선생님도 좀 배우자. ", "아, 선생님도 오늘 많이 배웠다!! 고마워."처럼 말이다.
2. 표준화된 교육, 표준화된 교육과정, 표준화된 평가, 표준화 시험 점수로 책무성을 관리하는 것을 최소화하자.
표준화에 기반을 둔 현재와 같은 교육은 그 폐해가 매우 크다. 오죽했으면 일찍이 핀란드 교육부 산하 국제 이동 및 협력을 위한 국립센터(CIMO) 소장이자, 교육정책 및 개혁 분야 전문가인 Pasi Sahlberg 박사가 핀란드 교육의 성공에 대해서 쓴 자신의 저서(Finnish Lessons, 2012)에서 한국의 교육처럼 표준화 시험을 공개하고 이를 통해 경쟁하게 하고, 이를 근거로 인센티브를 주는 교육개혁의 방법을 “세균(GERM-Global Educational Reform Movement)”이라는 단어로 불렀을까.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개혁의 패러다임은 분명히 GERM인 것이 분명하다! 교육부는 이 악질 바이러스 같은 GERM에 대한 해독제 만들기에 착수해야 한다. 이제 표준화 시험에 의한 학업성취도 향상에 매달리고 있는 정부 주도의 악성 세균과 같은 교육개혁의 방법론인 “제2의 길(The Second Way)”을 버리자. 대신 고무적이고 도덕적으로도 건강한 교육 목적/목표(moral purpose)를 지향하며 민주적 삶의 방식을 실천적으로 배우고 지속가능한 길을 추구하며, 교사의 전문성과 신뢰에 기반하고, 대중의 참여(engagement)가 활발히 일어나는 “제4의 길(The Fourth Way)”을 지향하자.
3. 출발선의 차이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큰데도 불구하고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한 반에 모아놓고 단 하나의 교육과정, 교과서로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일을 바꾸자.
현재와 같은 학교는 준비가 덜 된 상태로 학교에 입학하는 아동들을 바보로 만들고 실패의 경험을 쌓게 하는 곳일 뿐이다. 그리고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학습할 권리를 규정하는 헌법 31조를 위배하는 일이다.
4. 현재의 고교체제를 20년에 걸쳐 전면 개편하자.
인문계, 실업계를 통합하고 캠퍼스형 고교를 지향하자. 고교간 학점 교환도 허용하자. 현재 일반고의 경우, 고2가 되면 대입 준비를 포기하는 학생이 2/3나 된다고 한다. 이런 아동들에게 자신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교실 수업에 강제로 앉아있게 하지 말자. 이는 인재의 낭비며, 문제아동을 양산하는 길이다. 공부 이외의 재능과 관심을 타고난 아동들에게도 공정하게 성장의 기회를 주자.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고교체제를 만들어 가자. 30년 대계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5. 교사가 교실에서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을 최우선시 하자.
정부는 EBS 70% 연계를 통해 교사를 문제풀이 감독관으로 만들어 놓고 교사의 열정, 사명, 전문성 부족과 같은 얘기를 할 자격이 없다. 학교를 행정기관처럼 운영하고 이에 잘 협력하는 교사들에게 가장 높은 평점을 주는 교원평가 제도를 개선하자.
교사를 먼저 믿어주자. 그리고 자율과 책임을 강하게 부여하자. 그리고 기다려 주자. 과도기적으로 불만스런 교사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 길이 가야할 길이다. 책무성 강화를 통한 학교관리는 낡고 효과가 없는 방식임은 이미 판명 났다. 이제 ‘개인별 학습계획(Individual Learning Plan, ILP)’의 도입을 통한 투명성 강화와 집단적 책임감, 집단적 유능감을 키우는 학교 개혁에 나서야 한다. 어려워도 이 길이 가장 높은 차원의 교육개혁 방법론인 제4의 길이다.
6. 사회통합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근본적인 대입전형의 변화를 모색하자.
지금과 같은 대입전형 개선 패러다임으로는 해법이 없다. 학생부, 수능, 본고사 패러다임을 벗어나 가령 신입생의 50%는 지역별, 계층별 안배를 하는 균형배정제를 실시하는 등의 파격적인 상상을 해보자. 그리고 대학 진학준비 단계인 고교를 2년으로 줄이는 것도 생각해보자.
현재의 대입선발에는 공정하지 못한 면이 적지 않다. 대입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자. 선발의 공정성 제고는 가정 배경이나 부모의 경제력의 반영을 최소화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농산어촌에서, 도시의 빈민가에서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얼마나 강한 회복력을 가지고 생존해 왔는지 등도 높게 평가해주자.
7. 고부담 표준화 시험이 학교교육을 문제풀이 훈련장으로 만드는 일을 중단하자.
학교교육에서 선발을 위한 평가를 추방하자. 학습을 위한, 학습으로서의 형성평가를 위주로 완전학습을 지향하고 총괄평가는 최소화하자. 평가의 결과를 선발에 사용하는 한 교육의 본질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교 교육을 EBS 문제집 풀이장으로 만드는 것을 스스로 강화하고 있는 교육부는 이를 즉시 시정해야 한다.
8. 중하위권을 배제시키는 중상위권 위주의 수업 진행을 중단하고 모든 아동들에게 배움이 일어날 수 있도록 개별화 지도(differentiated instruction)와 개인별 학습계획(individual learning plan) 제도를 도입하자.
중하위권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지 말자. 교육시스템의 희생자들이다. 학생의 실패는 교육부의 실패고 교사의 실패다.
9. 보편적 학습설계(Universal Design for Learning)와 보편적 평가설계(Universal Design for Assessment)를 도입하여 학습장애 아동들, 학습부진 아동들에게도 보통의 아이들과 똑같이 학습에의 접근성을 보장하자.
수업에서 배제되는 아이들이 수업의 방해꾼이 되지 않고 수업태도가 불량한 아동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두가 매 수업시간 의미 있는 배움이 일어나게 하는 길 뿐이다. 최근 한 중학교에서 과학 과목의 보편적 학습설계의 최근 실험은 매우 성공적으로 나온 바 있다.
10. 출발선 차이를 줄이기 위한 질 높은 예방과 조기개입 시스템을 도입하자.
학교, 지역사회, 지방정부, 중앙정부, 시민단체 등이 긴밀히 협력해서 아이디어와 자원을 나누고 적극 협력하는 모델이 필요하다. 학교에게 모든 짐을 지울 수 없다. 학교 혼자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관련된 세계의 성공사례들이 충분히 있다. 의지를 가지고 중장기적 비전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11. 중앙정부가 중앙집권적으로 교육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자.
위 1~10까지의 매우 도전적인 그 수많은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의 뿌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그 뿌리는 정부의 중앙집권적, 신자유주의식 통제와 깊은 관련이 깊다고 생각된다. 정부가 표준화시험을 관리하고 그 시험 점수로 학교를 평가하고 책무성을 관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역별, 계층별, 개인별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교육시스템 속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방법을 찾는 지금과 같은 접근 방식으로는 가망성이 없다. 그런 어리석은 짓을 그만두자. 교사의 양성, 채용, 전보 등의 방식도 확 바꾸자. 단계적으로 진정한 학교자치를 실현하자. 17개 시도교육청별로 17개 교육과정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자. 어떤 경우에도 현재처럼 중앙정부가 학교를 행정기관으로 만들어 버린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교육부의 힘을 줄이고 역할을 바꾸는 것을 적극 검토하자.
이상의 11가지 과제 중 어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30년지대계’를 통해 바꾸자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인 교육비전을 만들자는 의미도 된다. 지금처럼 5년 기간의 각 정권이 조금씩 땜질하는 방식은 중단되어야 한다. 교육의 모든 이해당사자들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희망이 있는 학교교육의 바람직한 미래를 최소한 ‘30년지대계’로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 이런 논의를 2015년 시작해서 2017년 대선 후보들이 제대로 된 교육비전을 공약으로 걸게 하자. 새해엔 한국의 학교교육에 희망을 만드는 논의를 본격 시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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