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03) 시 합평의 실제 2 - ⑮ 이세진의 ‘첫 캠핑’/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
시 합평의 실제 2
웹문서 http://the-edit.co.kr/10314/ M의 첫 캠핑
⑮ 이세진의 ‘첫 캠핑’
<원작>
첫 캠핑/ 이세진
상남동 변두리 동네 고교생 다섯은/ 틈만 나면 모여 장소와 일정을 수없이 바꾸고 텐트 버너 코펠 등 장비를 여기저기서 빌려/ 두 달 만에 생애 잊지 못할 첫 캠핑 준비를 마쳤다/ 유엔의 날 하루 전 10월 23일 오후 5시 10분 대전역에서 부산발 완행열차를 탔다/ 기차 안은 울긋불긋한 등산복과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우리도 옆에 앉은 여학생들과 기타 치며 포크송을 부르고 짜릿하게 손뼉도 마주치며 게임도 하고 과자도 나눠먹었다/ 팔공산으로 같이 가자는 여학생들과 진한 아쉬움을 나누며 목적지인 금오산으로 가기 위해 구미역에서 내렸다/ 어둠속에서 렌턴 불빛에 의지해 텐트를 치고 꽁치 통조림에 라면 무 청양고추 감자를 넣은 찌개와 먹은 저녁밥맛은 지금도 잊지 못할 최고의 맛이었고/ 맑고 깨끗한 공기 속에서 어떤 간섭도 눈치도 보지 않고 마신 술과 담배의 맛과 기분은 몽유도원이었다/ 킵 온 킵 온 킵 온 킵 온 런닝/ 야외전축 팝송에 맞춰 옆에 텐트를 친 상주학생들과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대고 목이 터져라 부르는 노랫소리가 가을밤 하늘을 뚫고 올라간다/ 같이 온 여학생들은 어디 있냐고 상주학생이 묻는다/ 같이 온 여학생들 없다고 하니 기차에서 여학생들하고 노는 것을 보았단다/ 갖은 폼을 잡으며 사진을 찍고 계곡물에 땀을 씻으며 산으로 올라갔다/ 캠핑 갖다온 후 며칠 안 되어 상주학생이 같이 찍은 사진과 함께 편지를 보내왔다/ 여학생을 소개시켜달라는 사연과 함께/ 그러나 우리는 기차안의 분위기 덕분에 재수 좋게 옆의 여학생들과 놀았을 뿐 여자 친구 하나 없는 숙맥들이었다/ 그해가 저물 때까지 모이기만 하면 첫 캥핑의 불꽃은 꺼질 줄 몰랐다.
<합평작>
첫 캠핑/ 이세진
동네 고교생 다섯은 텐트, 버너, 코펠을 빌려 첫 캠핑 준비를 마쳤다
10월 23일 오후 5시 10분 대전역에서 부산 행 완행열차를 탔다
기차 안은 울긋불긋한 등산복과 노랫소리로 가득 찼다
옆자리 여학생들과 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고 과자를 나눠먹었다
팔공산으로 가자는 여학생들과 작별한 후 구미역에서 내렸다
라면, 무, 청양고추, 감자를 넣은 꽁치통조림 찌개와
누구의 간섭도 없이 들이킨 술과 담배의 맛은 꿈만 같았다
킵 온 킵 온 킵 온 킵 온 러닝,
옆자리에 텐트를 친 상주학생들과 야외전축에 맞춰
몸을 흔들어대며 부른 노랫소리가 밤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캠핑 갔다 온 후 며칠 안 되어
상주학생이 여학생을 소개시켜 달라는 말과 함께 사진을 보내왔다
기차 안의 분위기에 실려 놀았을 뿐,
우리는 여자친구 하나 없는 숙맥이었다
그해가 저물 때까지
첫 캠핑의 불꽃은 꺼질 줄 몰랐다.
<시작노트>
교수님이 몇 년 전에 주신 「서정주 후기 시의 상상력」,
어렵고 딱딱해서 읽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덮어두었다가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교수님이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군요.
수많은 자료와 서술로 인해 분량이 많은데
지루함이 없고, 친절하고 재미있고 세세하게 쓰셔서
어떤 논문에서보다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시에 대한 기원부터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한 것 같아
아주 기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하루 빨리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
<합평노트>
시의 정황으로 볼 때 시인은 고교시절에 재미있게 논 듯하군요.
저와 동시대를 산 것 같은데 저는 한 번도 그렇게 놀아보지 못했거든요.
어두운 극장에서 하얀 칼라를 떼고 영화를 보다가 생활지도 선생님께 걸릴까봐서
중간에 나온 기억이 딱 한 번 있습니다.
추억은 언제 소환해도 입 꼬리를 올라가게 해주는 기쁨이지요.
근데, 산문시로 쓰면서 행 가름과 연 가름 표시를 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혹시 계간문예지 등에 게재된 평론의 형식을 흉내 냈는지요.
평론가들은 시를 인용할 때 지면을 절약하기 위해 서 행 가름, 연 가름 표시를 ‘/’, ‘//’로 표기하면서
이어 쓰는 경우가 있거든요.
시는 기호가 많이 도입되면 독자의 외면을 받습니다.
가뜩이나 복잡한 시대에 시 읽기까지 머리를 아프게 하면 독자가 좋아할 리 없지요.
기호놀이하기로 작정하지 않은 이상 시는 그렇게 쓸 필요가 없습니다.
산문시 형식이 너무 답답해 보여 운문시 형식으로 함축합니다.
쓰지 않아도 좋은 진부한 수식어도 삭제했습니다.
시는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참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합평 내용은 원본과 대조하며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 ‘안현심의 시창작 강의노트(안현심, 도서출판 지혜, 2021)’에서 옮겨 적음. (2022.12.29.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03) 시 합평의 실제 2 - ⑮ 이세진의 ‘첫 캠핑’/ 한남대 평생교육원 교수 안현심|작성자 화룡이